8. 양기의 등잔(燈盞)은 천추(千秋)를 밝히고… 2

전에 이런 얘기를 들었네.

수십년 전 호남(湖南)의 한 갑부 노인이 생일잔치를 하는데 참석자 한 사람에게 4백전씩 나누어주겠다고 미리 알렸다네. 때는 겨울 농한기였는데 시골 사람들이 수십리씩 걸어 이 돈을 타려고 수만 명이나 모였다네.

그런데 관리자가 미리 좋은 방법을 마련하지 않아 천천히 한 사람씩 나누어주다보니 뒤에 처진 사람은 몹시 배고파 실로 온힘을 다해 앞으로 밀치고 나서다가 넘어져 깔려 죽은 사람이 2백 명이 넘고 다친 사람은 부지기수였다네.

그래서 현(縣) 당국에서 나서서 사람들에게 움직이지 못하게 명령한 뒤 사태를 수습했는데, 죽은 자에게는 1인당 24원과 관(棺) 한 구씩을 지급하고 시체를 찾아가게 했다네. 노인은 사람들이 놀라 소란스러운 모습을 보고 사태를 안 뒤 그만 한숨을 크게 쉬더니 죽어버렸네. 며칠 안 되어 중앙관료를 지내던 그의 아들도 서울에서 죽고 말았네.

그런 까닭에 무슨 일이 되었든 간에 먼저 그로 말미암을 부작용을 사전에 잘 예방하지 않으면 안 되네. 내가 어찌 우리 집안과 고향에 무심할 수 있겠는가. 다만 능력이 미치지 못하니 아예 실마리를 풀어놓지 않은 것이 유익하고 손해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일 따름이네.

영암사(靈岩寺)에는 전에 단지 열 명 남짓밖에 없었네. 모두들 요(姚) 아무개가 병들었다고 거기에 머물도록 특별히 편의를 봐 주었는데 이 일을 어찌 선례로 삼을 수 있겠는가. 그 절은 농사가 잘 된 해라도 소작료가 천원이 안 되고 작황이 나쁘면 더 줄어들며, 이밖에는 전혀 별다른 수입이 없네.

최근 3년 사이에 영암사가 정말 도를 열심히 닦는다고 평이 나서 그곳에 귀의한 신도들이 이레 염불기도를 부탁하면서 약간씩 공양을 올리는 정도네. 그래서 최근 상주인원이 이삼십 명으로 불어났지만 나는 절대로 그 곳에 요구하는 게 없네.

영암사의 여러 법사들은 부모의 신위(神位)를 염불당에 모시는 이가 많은가 보네. 덕삼(德森) 법사나 그 친구 요연(了然) 법사들은 모두 효성으로 부모의 신위를 모시는가 본데, 나는 절대로 이 일은 언급하지 않네. 만약 내가 언급했다가는 그들이 정말로 몹시 기뻐하며, 인광 스님도 그러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자기들 공치사와 사심(私心)만 챙기려 들 것이네.

하물며 평소 얼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대가 단지 편지 한 통으로 귀의해 놓고, 여기에서 종신토록 양로(養老)나 할 생각인가?

그렇다면 나에게 귀의한 어려운 사람은 모두 나에게 찾아와 양로하겠다고 나설 것일세. 내 손에서 만약 금전이나 곡식이 나올 수 있다면 이 또한 원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이러한 도력이 없네. 그러니 어떻게 그러한 대자대비를 베풀 수 있겠는가.

예전에 복건(福建)의 황혜봉(黃慧峯)이 매번 시를 지어 부쳐오면 얇은 믿음이나마 다소 있는 듯하기에 내가 여러 책을 보내주었더니 그가 귀의하겠다고 자청해왔네.

그는 나와 나이가 같았는데, 나중에는 다시 출가하겠다고 나서기에 내가 재가수행의 유익함을 적극 일러 주었네.

그가 스스로 보리심을 내어 출가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실은 그저 일 없고 조용한 곳을 찾아 자손들의 양로비를 줄이려고 꾀한 것뿐이지.

그가 하도 심한 말로 극성을 부리기에 내가 이렇게 말했네.

“나는 남의 절에 30년간 머물러 오면서 내 한 몸도 이미 많다고 느껴 왔소. 하물며 당신까지 또 와서 나에게 출가한다면 어찌 되겠소? 당신이 꼭 오겠다면 내가 하산하는 수밖에 없소. 왜냐하면 나 자신도 돌볼 겨를이 없거늘 어떻게 당신까지 돌봐줄 수 있겠소?”

그 후로 그는 편지를 뚝 끊고 말았네. 그러니 전에 큰소리친 도심(道心)은 진짜 보리심이 아니라 자손을 위해 이익을 찾은 세속 마음에 불과한 것이었지.

그런데 그대는 머리가 제법 총명하면서도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의 속마음까지 헤아려 주지 못하네. 자기한테는 어려운 줄 알면서 남에게는 쉬울 것이라고 말하는 게지. 내가 그대보다 더 고뇌가 많은 줄 모른다는 말일세. 앞으로는 그대 스스로 자기 능력을 헤아려 일하기 바라네.

만약 또 다시 나에게 대신 금전을 내달라고 요청하면 목숨을 바쳐 상환해야 할 만큼 몹시 어렵게 되네.

왜냐하면 내가 그대 한 사람밖에 모르는 것이 아니며, 또 그대 한 사람만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세. 설령 그대 한 사람뿐이라고 하더라도 몇 년 동안 사오백원씩 쓴 것도 별로 요긴한 일도 아니었고, 또 이곳에 재난구휼하랴, 저곳에 자선사업하랴, 내가 어떻게 다 감당하겠는가?

좋은 책(善書)을 인쇄하여 법보시하는 일만 해도 제멋대로 부쳐줄 수가 없네. 거기에도 본디 나름대로 규칙이 있는 것은 그대도 보았을 줄 아네.

만약 사람들이 요구한다고 모두에게 그냥 부쳐주기로 한다면, 비록 수십만 가구가 나서도 다 처리할 수 없을 걸세. 하물며 모두가 조금씩 갹출하여 겨우 유지하는 형편인데 오죽하겠는가? 만약 꼭 하려는 경우 원가에 따라 배포한다면 소원을 이룰 수 있네.

그렇지 않고 사람들에게 유익하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것처럼 부쳐준다면 금방 문닫을 수밖에 없네.

보타지(普陀志)는 전에 불법(佛法)도 모르고 부처님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편집했는데, 더구나 나의 전기(傳記)까지 한 편 지어 덧붙인다기에 내가 잘못되었다고 극력 반대했네.

나중에 한두 가지 일로 말미암아 책임자가 내 의견에 따르지 않기에 나는 그 일에서 완전히 물러나 더 이상 묻지도 않았네. 그가 편집을 마쳐 다른 스님에게 부탁했다가 반년 이상 묵힌 다음 나중에사 나에게 감수(監修)해달라고 다시 요청해왔는데, 나 또한 겨를이 없어 몇 년 동안 미루어 왔네. 그래서 이 책에는 내 이름이 전혀 없네. 거기에 수록할 내 글과 이름을 모조리 빼버리고 하나도 남기지 않은 걸세.

그가 다른 사람에게 써 달라고 청탁해 인쇄를 마쳤는데, 산중에서 그 책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종이값과 인쇄비를 합한 원가에 따라 권당 6각(角)식 셈하여 모두 3천부를 인쇄했다네. 신청한 물량 1천여 부를 빼면 단지 천여 부 남는데, 나도 사람들에게 조금 보낼 생각이네. 그대도 몇 부 가져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생각이 있다면 그 마음은 아주 좋네. 다만 얼마나 어려울 지는 잘 모르겠네.

앞으로는 자기에게 생기기를 바라지 않는 일은 남에게도 베풀지 않는다(己所不欲 勿施於人)는 마음을 늘 간직하기 바라네. 만사에 자기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또 남의 마음을 미루어 내 마음을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네.

그렇게만 한다면 그대는 앞으로 틀림없이 광명(光明)이 휘황찬란하고 인간과 신명이 모두 기뻐하는 경지에 이르게 될 걸세.

이렇게 입에 쓴 약을 정말로 그렇다고 여기고 달게 받아들일 수 있을 지 모르겠네. 아무쪼록 지혜롭게 살피길 바라네.

그리고 인쇄원판은 절대로 홍화사(弘化社)에 보관하지 말게. 이 일이 일이년 안에 끝날 지 미정이고, 기금이나 일정한 수입도 없는데다가 시국도 좋지 않으며, 사람들도 서로 협조하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고 어떻게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는가. 불학서국(佛學書局)은 유통망도 넓고 영업성을 띠어 오래 계속될 수 있으니 거기에 맡기면 거기나 그대에게 모두 유익할 걸세.

수신인(受信人) 해설 : 이 편지는 민국 21년(1932 : 72세) 임신(壬申) 봄에 대사께서 혜원(慧圓)에게 답장을 내리신 것인데, 대사의 도행(道行)이 굳세고 뛰어나 제자로 하여금 경탄과 오체투지의 예배를 절로 하도록 만듭니다.

편지 안에서 지시하신 각 단락이 모두 대체(大體)를 힘써 유지하면서 홀로 외눈을 갖추신 세상의 모범이 되시기에 충분합니다.

제가 능력을 헤아리지도 않고 일을 벌이거나 남을 대함에 내 마음같이 살펴보는 용서의 아량이 부족한 점에 정문일침을 찌르신 것은 더욱이 구구절절 뜹돌 같고 보배 같은 가르치심입니다.

지금까지 9년간 은밀한 상자에 소중히 보관해 왔는데, 대사께서 서방극락정토에 왕생하신 지금도 제자가 가르치심을 제대로 힘써 실행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잘못을 벗어나지 못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친필서신에 배인 대사의 마음을 우러르니 어찌 비통함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대사의 문집 편찬에 공개발표하여 제 잘못을 드러내면서 아울러 대사께서 사람들 가르치시기에 싫어함 없이 열성껏 쏟으신 자비은혜를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합니다.

경진(庚辰 : 1940)년 섣달 초여드레 제사 군(郡) 혜원(慧圓) 삼가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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