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劉晏)은 당나라의 대종(代宗 763~779) 때의 유명한 재상인데, 어릴 적부터 이인(異人) 만나기를 소원하여 많은 애를 써 왔습니다.
한번은 서울의 어느 술집에서 웬 이상한 사람들이 서너명이 술을 마시고 놀다가 한 사람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말하자, 다른 한 사람이 “왕십팔(王十八)이 있지 않는가!” 하고 말하는 것을 듣고 마음 깊이 간직하였습니다.
그 후 자사(刺史)가 되어 남중(南中)으로 가서 형산현(衡山縣)을 지날 때 그 현청(縣廳)에서 쉬었습니다. 때는 봄철인데 좋은 채소들을 내어오는데, 하도 이상한 것들이 많기에 물었습니다.
“어디서 이런 좋은 것들을 구하여 왔느냐?”
“여기 왕십팔(王十八)이라는 채소 가꾸는 사람이 있는데 솜씨가 참으로 묘합니다.”
그 말에 문득 이전에 이름을 들은 생각이 나서 ‘그 사람을 한번 가서 만나보자’ 하였습니다. 관인들이 그를 불러오려는 것을 말리고 자기가 직접 가서 보았습니다.
왕십팔은 떨어진 의복에 그 모양이 대단히 흉하였는데, 유안을 보더니 겁을 내며 벌벌 떨면서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안이 그를 데리고 가서 술을 권하니 겨우 조금만 먹었습니다. 무엇을 물어도 도무지 ‘모
른다’고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안이 더 기이하게 여겨 ‘같이 가자’ 하니 처음엔 사양하다가 못 이겨 같이 갔습니다. 배를 타고 가는데, 배안에서 유안은 자기 가족에게 왕십팔을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모두 예배하도록 하였습니다.
며칠을 가다가 그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 하더니 계속하여 똥을 싸서 배안의 사람들이 크게 곤란해하였습니다. 모두가 그를 원망하는데 유안만은 정성을 다해 간호하였습니다. 그러나 며칠 앓더니 그만 죽어버렸습니다. 유안은 크게 슬퍼하며 정성을 다하여 장사지내 주었습니다.
뒤에 유안이 벼슬이 바뀌어 딴 곳으로 갈 때 또 형산현에 들렀더니, 군수가 나와 반겨 맞으며 그때에 데리고 갔던 왕십팔이 얼마 후 돌아와서 ‘도로 가라’ 하기에 ‘그만 돌아왔다’고 말하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안이 크게 놀라 ‘지금도 있는가?’ 하고 확인한 뒤에 그 처소에 가보니, 빈 집뿐이었습니다. 이웃 사람 말이 ‘어제 저녁에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안이 울며 여러 번 절하고 나서 사람을 보내어 옛날에 그를 장사지낸 묘를 파보니 과연 의복뿐이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듣고 그 때에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몇 해 뒤에 유안이 큰 병이 들어 정신을 잃고 거의 죽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왕십팔이 찾아와서 유안에게 약 세 알을 먹이자 배 속에서 큰 소리가 남과 동시에 유안이 일어나 앉는데 병이 씻은듯이 나았습니다.
가족들로부터 왕십팔이 병을 낫게 하였다는 말을 듣고서 유안이 일어나 울며 절하자, 왕십팔이 말하였습니다.
“옛정을 생각하여 와서 구하였는데 앞으로 삼십 년은 더 살 것이다. 삼십 년 뒤에 만나자.”
그러고는 나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유안이 아무리 붙들어도 소용없고 많은 보물을 주어도 “허허” 크게 웃기만하고는 받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그 후 유안은 재상(宰相)이 되어 천하의 정사를 잘 다스리다가 못된 사람의 중상으로 대종(代宗) 황제의 미움을 받아 충주(忠州) 땅에 귀양을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왕십팔이 또 찾아와서는 웬 약을 주
어 받아먹으니, 삼십 년 전에 먹은 약이 그대로 다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왕십팔은 그것을 물에 씻어 지니고서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습니다.
그런 지 얼마 안 되어 유안이 죽자, 이 신기한 사실이 세상에 널리 전하여졌습니다.
性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