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수(法秀)는 당나라 때 사람입니다.
그가 현종(玄宗) 개원(開元) 26년(서력기원 738년)에 꿈에 이상한 스님을 만났는데 가사(袈裟) 오백벌만 지어 회향사(廻向寺)에 보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법수가 곧 가사를 만들어 회향사를 찾아가려 하였지만,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길에서 꿈에서 본 그 스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부탁한 가사는 어떻게 되었는가?”
스님은 대뜸 이렇게 물었습니다.
“가사는 다 되었으나 회향사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법수가 대답하자, 그 스님이 “따라오라”하기에, 며칠 동안 따라가다 종남산(終南山)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주 궁벽한 곳으로 가서 한 곳에 이르니 돌로 쌓은 단(壇)이 나왔습니다. 그곳에서 향을 피우고 스님과 함께 오래도록 예배드리자, 어느 사이엔가 층암절벽 위에 있는 많은 기와 집들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스님과 같이 올라가 보니 그곳에 과연 회향사라는 현판이 보였습니다. 건물과 경치가 모두 인간 세계에서는 보지 못하던 훌륭한 것들이었으며, 대중스님들도 많은데 다 성인들 같이 보였습니다. 그 스님은 가사를 전부 나누어주고 나서 한 빈방을 보여주며 말하기를, “이것이 당나라 임금이 불던 것이니 가져가 주라” 하였습니다. 하룻밤도 더 못자게 해서, 이튿날 산을 내려와 쳐다보니 절은 간 곳 없고 오직 바위만 보일 뿐이였습니다.
법수가 여러 차례 예배한 뒤에, 대궐로 가서 옥퉁소를 올리고 그 연유를 말하니, 현종 황제가 받아 불어보는데 정말로 많이 불던 사람같이 소리가 잘 났습니다. 그래서 현종은 천하에 둘도 없이 뛰어난 문장가인 이태백(李太白)을 불러 글을 짓게 하고, 자신은 옥퉁소를 불며 노래하고 양귀비를 시켜 춤추게하니 마치 인간을 떠난 신선놀음과 같았습니다.
이 소문이 천하에 퍼지자 기이하다고 탄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性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