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어집] 제4편 2장 자유(自由)로 가는 길 02. 큰 의심(疑心)

지금까지 이야기했듯이 불교의 근본은 자기개발에 있습니다.

초월적인 신은 부정합니다. 부처도 믿지 말고 조사도 믿지 말며, 석가도 필요 없고 조사도 필요없다는 말은 불교의 근본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 부처님이고 절대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곧 자기 자신이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가진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자기개발을 완전히 할 수 있는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대장경이 있으니 그 문자만 많이 독송하면 무심삼매(無心三昧)를 얻을 수 있는가? 아닙니다. “널리 배워서 아는 것이 많으면 마음이 점점 어두워진다(廣學多知 神識轉暗 ; 광학다지 신식전암)”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옛사람들도 말하기를 “도의 길은 날로 덜어가고 학문의 길은 날로 더해간다(爲道日損 學爲日益;위도일손 학위일익)”고 했습니다. 참으로 깨치는 길은 한 생각 덜어서 자꾸자꾸 덜어 나아가야 하고 학문을 하려면 자꾸자꾸 배워 나아가야 됩니다. 도(道)와 학(學) 은 정반대의 처지에 서 있습니다. 듣고 보고 하는 것은 무심삼매를 성취하는 데에서는 설비상(雪砒霜)과 같은 극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근본 목표인 대도(大道)를 성취하여 성불하는 데에서 이론과 문자는 장애물이 되지 이로움을 주지 못합니다. “모든 지식과 언설을 다 버리고 오직 마음을 한 곳에 모으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으로써 성불하였지 이론과 문자를 배워서 성불하였다는 소리는 없습니다.

부처님이 무엇을 깨달았느냐 하면 중도(中道)를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을 얻으려면 선정(禪定)을 닦아서, 곧, 참선을 해서 무심삼매를 성취해야 됩니다. 무심삼매를 거쳐 진여삼매에 들어가야 하는데, 하물며
망상이 죽 끓듯하는 데에서 어떻게 진여삼매를 성취하여 중도를 증득한 부처님의 경계를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교(敎)라는 팔만대장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약방문입니다. 약처방이란 말입니다. 그것에 의지해서 그대로 약을 지어 먹어야 병이 낫습니다. 밥 이야기를 천 날이고 만 날이고 해봐야 배부르지 않듯이, 약처방만을 천 날 만 날 외어 봐야 병은 낫지 않습니다. 약을 직접 먹는 것이 실천하는 것이므로 선정을 닦는 좌선을 해야 됩니다. 부처님께서 평생 가르친 것이 이 좌선입니다. 지금도 저렇게 좌선하시며 앉아 있지 않습니까.

1) 아난존자

옛날 스님네는 어떻게 공부해서 어떻게 무심삼매를 성취하여 도(道)를 이루었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들아가신 뒤 그 제자들이 부처님이 법문하신 것을 모아놓은 것이 경(經)입니다. 그 무렵에는 녹음기도 없고 속기(速記)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부처님을 삼십여 년 동안 모시고 다시며 시봉했던 아난
존자는 부처님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총명함은 고금을 막론하고 견줄 데가 없으니 한번 들으면 영원토록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법문을 결집(結集)하는데, 대중 모두가 아난이 주동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웃사람인 상수제자(上首弟子)인 가섭 존자가 소집 단계에 가서 그에 반대하였습니다.

“아난은 부처님 말씀은 잘 기억하고 있지만 실제 진리는 깨치지 못했으므로 참석할 자격이 없다.”

가섭 존자는 아난 존자가 아무리 부처님 말씀을 잘 기억하지만, 다시 말하여, 팔만대장경이 모두 자기 뱃속에 있지만 아직 자기 마음을 깨치지 못한 봉사이므로 이 결집에 참여할 자격이 없으니 아주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아난 존자가 애걸복걸하며 말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나의 대법(大法)을 가섭에게 전했으니 그를 의지해서 공부하라’고 하셨는데 이제 가섭 사형이 나를 쫓아내면 누구를 의지해서 공부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섭존자는 절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는 불법을 깨친 사자(獅子)만 사는 사자굴인데 깨치지 못한 여우가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하면서 쫓아내 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울며 쫓겨난 아난 존자는 비야리성(城)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 가니 국왕이며 대신 등을 비롯한 많은 신도들이 큰스님 오셨다고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고 법문을 청하므로, 이난 존자는 가섭 존자에게서 쫓겨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잘난체하며 법문을 했습니다. 이때 그 부근에 발기라고 하는 비구가 있었는데 아난이 그곳에 온 뒤로 많은 신도들이 모여 법석을 떠니 시끄러워 도저히 공부가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발기 비구가 게송을 하나 지었습니다.

坐禪莫放逸(좌선막방일) 좌선하고 방일하지 말아라
多設何所利(다설하소리) 아무리 지껄인들 무슨 소용있는가.

입 다물고 참선하라는 말입니다. 아난 존자가 그 게송을 듣고는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이제 참으로 공부해야겠다고 참회하고는 다른 곳으로 가서 불철주야로 앉아서 정진했습니다. 졸릴 듯하면 일어나 다니고
다리가 아프면 앉았다 하면서 자꾸 선정을 익혔습니다. 며칠이 되었는 지도 모르게 그렇게 여러 날 공부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어찌나 고달픈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잠깐 누워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목침(木枕)을 베려고 턱 드러눕다가 확철히 깨달았습니다. 참으로 무심삼매를 성취한 것입니다. 목침을 집어던지고 밤새도록 걸어서 가섭 존자에게 갔습니다. 가섭 존자가 몇 가지 시험을 해보니 확철히 깨친 것이 확실하므로 결집하는 사자굴에 참가할 자격을 주었습니다. 경에 보면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아난의 말입니다.

결국 부처님의 십대 제자 가운데 다문제일(多聞第一)은 아난 존자이지만, 근본 법은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전했고 가섭은 다시 아난에게 전했습니다. 곧 부처님은 시조(始祖)이시고, 초조(初祖)는 가섭 존자, 이조(二祖)는 아난 존자입니다. 아난 존자 밑으로 상나화수 존자로 이어지고…, 이렇게 해서 정법(正法)은 이십팔대(代) 달마대사가 중국에 옴으로써 동토(東土)에 전해졌습니다. 이 선종이 중국에 소개되어 육조스님 뒤로는 천하를 풍미해서 모든 불교를 지배하게 되었는데, 육조스님을 오조 홍인(弘忍)대사 밑의 제일 큰제자로서 일자무식이었습니다. 당시 홍인스님의 제자로 신수(神秀)라는,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와 도교 등에서도 아무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대지식가가 있었지만 이 신수스님은 도를 바로 깨치지 못했으므로, 법은 일자무식인 육조스님에게 가고 말았습니다.

2) 덕산스님

중국 선종사(禪宗史)에서 보면 임제종을 창설한 임제스님과, 운문종, 법안종의 종조(宗祖)되는 덕산(德山)스님, 이 두 분 스님을 조사들 가운데 영웅이라고 하여 칭송하고 있습니다.

덕산스님은 처음 서촉(西蜀)에 있으면서 교리 연구가 깊었으며 특히 <금강경>에 능통하여 세상에서, 스님의 속성이 주(周) 씨이므로, 주금강(周金剛)이라고 칭송을 받았습니다. 스님은 그 무렵 남방에서 교학을 무시하고 오직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장하는 선종의 무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분개하여 평생에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금강경소초를 짊어지 고 떠났습니다. 가다가 점심(點心)때가 되어서 배가 고픈데 마침 길가에 한 노파가 떡을 팔고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으려고 하니 그 떡을 좀 주시오”하니, 그 노파가 “내 묻는 말에 대답하시면 떡을 드리지만 그렇지 못하면 떡을 드리지 않겠습니다”고 하여 덕산스님이 “그러자”고 하였습니다.

노파가 물었습니다.

“지금 스님의 걸망 속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금강경소초가 들어 있소.”

“그러면 금강경에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하는 말씀이 있는데 스님은 지금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려고 하십니까?”

‘점심(點心) 먹겠다’고 하는 말을 빌어 이렇게 교묘하게 질문한 것입니다. 이 돌연한 질문에 덕산스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그렇게도 금강경을 거꾸로 외고 모로 외고 모르는 것이 없
다고 생각했는데 이떡장수 노파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다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노파에게 물었습니다.

“이 근방에 큰 스님이 어디 계십니까?”

“이리로 가면 용담원(龍潭院)에 숭신(崇信) 선사가 계십니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곧 용담으로 숭신 선사를 찾아 갔습니다.

“오래 전부터 용담(龍潭)이라는 말을 들었더니 지금 와서 보니 용(龍)도 없고 못(潭)도 없구만요.”

“참으로 자네가 용담에 왔구만.”

주금강은 또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용담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하루는 밤이 깊도록 용담스님 방에서 공부한 뒤에 자기방으로 돌아가려고 방문을 나섰다가 밖이 너무 어두워 방안으로 다시
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용담스님이 초에 불을 켜서 주는데 덕산스님이 받으려고 하자마자 곧 용담스님이 촛불을 확 불어 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 때 덕산스님은 활연히 깨쳤습니다. 그러고는 용담스님께 절을 올리니 용담스님이 물었습니다.

“너는 어째서 나에게 절을 하느냐?”

“이제부터는 다시 천하 노화상들의 말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그 다음날 덕산스님이 <금강경소초>를 법당 앞에서 불살라 버리며 말하였습니다.

모든 현변(玄辯)을 다하여도
마치 터럭 하나를 허공에 둔 것 같고,
세상의 추기(樞機)를 다한다 하여도
한 방울 물을 큰 바다에 던진 것과 같다.

모든 변론과 언설이 하도 뛰어나서 온 천하의 사람이 당할수 없다고 해도, 깨달은 경지에서 볼 때는 큰 허공 가운데 있는 조그만 터럭과 같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실제로 깨친 것은 저 허공과 같이 광대무변한
것으로, 이 대도라는 것에 비하면 세상의 모든 수단을 다하는 재주가 있다 하여도 그것은 큰 골짜기에 작은 물방울 하나 던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지식이 장한 줄 알았다가 바로 깨쳐 놓고 보니 자기야말로 진짜 마군이의 제자가 되어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덕산스님은 이렇게 깨치고 나서, 사람을 가르치는 데 누구든 어른거리면 무조건 몽둥이로 때렸습니다. 부처님이 와도 때리고 조사가 와도 때리고 도둑이 와도 때리는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한 한 주일마다 온 절안을 뒤져서 무슨 책이든 눈에 뛰기만 하면 모두 불에 넣어 버렸습니다. 이 덕산스님의 몽둥이 밑에서 무수한 도인이 나왔습니다. 천하에 유명한 설봉스님, 암두스님이 나왔으며, 운문스님의 운문종과 법안 스님의 법안종이 또한 이 몽둥이 밑에서 나왔습니다. 이렇듯 자기개발이란 오직 마음을 닦아서 삼매를 성취해야 하는 것이지 언어 문자에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3) 임제스님

중국에서 선종이 천하를 풍미할 때 선종은 임제종, 조동종, 위앙종, 운문종, 그리고 법안종의 다섯 종파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 서도 임제종이 가장 융성했습니다.

임제종의 종주는 황벽스님의 제자인 임제스님으로, 일찌기 교학을 많이 배운 스님입니다. 스님은 교(敎)만으로는 부족하고 꼭 선(禪)을 해서 깨달아야겠다고 특별한 가르침을 배운 적도 없이, 나면서부터 아는
생이지지(生而之知)로서, 당시의 천자인 선종(宣宗)을 두드려 팬 일이 있는 걸출한 선승이었습니다.

이 스님 밑에서 한 삼년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 때에 황벽스님 회상에는 수자로 목주스님이 있었는데 임제스님을 격려하기 위해 물었습니다.

“상좌(上座)는 여기 온 지가 몇 년이나 되었는가?”

“삼 년입니다.”

“그러면 황벽스님께 가서 법을 물어본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황벽스님에게 가서 ‘어떤 것이 불법(佛法)의 긴요한 뜻입니까’ 하고 물어보지 아니하였는가?”

그 말을 듣고 임제스님은 황벽스님에게 가서 똑같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묻는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황벽스님이 갑자기 몽둥이로 스무 대나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임제스님이 몸둥이만 맞고 내려오니 목주스님이 물었습니다.

“여쭈러 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제가 여쭙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실 스님이 갑자기 때리시니 그 뜻을 제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다시 가서 여쭈어라.”

그 말을 듣고 임제스님이 다시 가서 여쭙자 황벽스님은 또 몽둥이로 때렸습니다. 이와 같이 세번 가서 여쭙고 세번 다 몽둥이만 맞고 말았습니다. 임제스님이 돌아와서 목주스님께 말했습니다.

“다행히 자비를 입어서 저로 하여금 황벽스님께 가서 문답케하셨으나 세번 여쭈어서 세번 다 몽둥이만 실컷 맞았습니다. 인연이 닿지 않아 깊은 뜻을 깨칠 수 없음을 스스로 한탄하고 지금 떠날까 합니다.”

“네가 만약 갈 때는 황벽스님께 꼭 인사를 드리고 떠나라.”

임제스님이 절하고 물러가자 목주스님은 황벽스님을 찾아가서 여쭈었습니다.

“스님께 법을 물으러 왔던 저 후배는 매우 법답게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하직 인사를 드린다고 오면 방편으로 그를 제법하여 이후로 열심히 공부케 하면, 한 그루 큰 나무가 되어 천하 사람들을 위해 시원한 그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임제스님이 와서 하직 인사를 드리니 황벽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너는 고안(高安) 개울가의 대우(大愚) 스님에게 가거라. 반드시 너를 위해 말씀해 주실 것이니라.”

임제스님이 대우스님을 찾아 뵈오니 대우스님이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는고?”

“황벽스님께 있다가 옵니다.”

“황벽이 어떤 말을 가르치든가?”

“제가 세번이나 불법의 긴요한 뜻이 무엇인가 하고 여쭈었는데 세번 다 몽둥이만 맞고 말았습니다. 저에게 무슨 허물이 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황벽이 이렇게 노파심절(老婆心切)로 너를 위해 철저하게 가르쳤는 데 여기 와서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 것이냐?”

임제스님이 그 말 끝에 크게 깨치고 말했습니다.

“원래 황벽의 불법(佛法)이 별것 아니구나!”

대우스님이 임제의 멱살을 잡고 말했습니다.

“이 오줌싸개 놈아! 아까는 와서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더니 지금은 또 황벽의 불법이 별 것 아니라고 하니 너는 어떤 도리를 알았느냐, 빨리 말해보라, 빨리 말해보라!”

임제스님은 대우스님의 옆구리를 세번 쥐어 박았습니다. 그러자 대우 스님이 멱살 잡은 손을 놓으면서 말했습니다.

“너의 스승은 황벽이지 내가 간여할 일이 아니니라.”

임제스님이 대우스님께 하직하고 황벽스님에게 돌아오니, 황벽스님은 임제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이놈이 왔다 갔다만 하는구나. 어떤 수행의 성취가 있었느냐?”

“다만 스님의 노파심절 때문입니다.”

“어느 곳에서 오느냐?”

“먼젓번에 일러주신 대로 대우스님께 갔다 옵니다.”

“대우가 어떤 말을 하던가?”

임제스님이 그 사이의 일을 말씀드리자 황벽스님이 말씀했습니다.

“뭣이라고! 이 놈이 오면 기다렸다가 몽둥이로 때려주리라.”

그러자 임제스님이 말했습니다.

“기다릴 것 무엇 있습니까, 지금 곧 맞아 보십시오.”하면서 황벽스님의 뺨을 후려치니 황벽스님이 말했습니다.

“이 미친 놈이 여기 와서 호랑이 수염을 만지는구나!”

그러자 임제스님이 갑자기 고함을 치니 황벽스님이 말했습니다.

“시자야 이 미친 놈을 끌어내라.”

그 뒤 임제스님이 화북(華北) 지방으로 가서 후배들을 제법하면서 누구든지 앞에 어른거리면 고함을 쳤습니다. 그래서 임제스님이 법 쓰는 것을 비유하여 ‘우뢰같이 고함친다(喝)’고 평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임제종이 시작되었습니다.

임제스님이 소리지르는 것(喝), 덕산스님과 황벽스님이 사람 때리는 것(棒), 이 이치를 바로 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 전에는 팔만대장경을 거꾸로 외고 모로 외워도 소용없습니다. 지식으로는 박사의
박사를 더한다 해도 소용없으니, 오로지 불법은 깨쳐야 알지 깨치기 전에는 절대 모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능력을 다 개발하면 영원토록 대자유, 대자재한 절대적인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데,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 가능한가? 반드시 무심삼매를 성취해야 되고, 이 무심삼매를 성취하려면 오직 마음을 닦아야지 지식과 언설로써는 절대로 안 됩니다.

性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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