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어집] 제3편 2장 윤회(輪廻)는 있다 01. 전생기억(前生記憶)

전생을 기억하는 경우는 대개 두 서너살 되는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데, 이들은 말을 배우게 되면서 전생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곧 “나는 전생에 어느 곳에 살던 누구인데 이러이러한 생활을 했다”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말을 따라서 조사를 해 보면 모두 사실과 맞곤 합니다. 이것이 전생기억 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부터 25년 전 터어키 남부의 아나다라는 마을에 이스마일이라는 어린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집은 정육점을 하는데 이스마일이 태어난 지 일년 반쯤 되던 어느 날 저녁에 아버지와 침대에 누워 있다가 문득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집에 갈 테야. 이 집에는 그만 살겠어요.”

“이스마일아, 그게 무슨 소리냐, 여기가 네 집이지 또 다른 네 집이 어디 있어?”

“아니야,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야! 우리 집은 저 건너 동네에서 과수원을 하고 있어. 내 이름도 이스마일이 아니고 아비스 스루무스야. 아비스 스루무스라고 부르세요. 그러지 않으면 이제부터는 대답도 안
할테야.”

이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말했습니다.

“나는 저 건너 동네 과수원집 주인인데 쉰살에 죽었어. 처음에 결혼한 여자는 아이를 못 낳아서 이혼하고 새로 장가를 갔어. 그러고는 아이 넷을 낳고 잘 살았지. 그러다가 과수원에서 일하는 인부들과 싸움을 벌여서 머리를 맞아 죽었어. 마굿간에서 그랬지. 그때 비명소리를 듣고 부인하고 애들 둘이 뛰어나오다가 그들도 맞아 죽었어. 한꺼번에 네 사람이 죽었지.그 뒤에 내가 이 집에 와서 태어난 거야. 아이들 둘이 지
금도 그 집에 있을 텐테 그 애들이 보고 싶어서 안 되겠어.”

그리고는 자꾸 전생의 자기 집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소리를 못하게 하면 울고, 그러다가 또 전생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크고 좋은 수박을 사왔는데, 이 어린 아이가 가더니 가장 큰 조각
을 쥐고는 아무도 못 먹게 하는 것입니다.

“내 딸 구루사리에게 갖다줄 테야! 그 애는 수박을 좋아하거든.”

그가 말하는 전생에 살던 집에 별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어서 그 지방 사람이 더러 이 동네에 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웬 아이스크림 장수를 보더니 그 어린 아이는 뛰어 나가서 말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겠어?”

알 턱이 있겠습니까.

“나를 몰라? 내가 아비스 스루무스야. 네가 전에는 우리 과수원의 과일도 갖다 팔고 채소도 갖다 팔았는데 언제부터 아이스크림 장사를 했지? 내가 또 네 할례(割禮)도 해주지 않았더냐?”

놀랍게도 그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과 일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소문이 자꾸 자꾸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터어키는 회교국이기 때문에 회교 교리에 따라 윤회를 부인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환생을 주장하면 결국 그 고장에서 살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비스 스루무스가 전생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자꾸 아이의 입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막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이가 세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확인도 해볼 겸 아이를 그가 말하는 과수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함께 가는 사람이 다른 길로 가려면 아이는 “아니야, 이쪽 길로 가야해” 하면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앞장서서 과수원으로 조금도 서슴치 않고 찾아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과수원에는 마침 이혼한 전생의 마누라가 앉아 있다가 웬 어린 아이와 그 뒤를 따라오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눈이 둥그렇게 되어 쳐다 보았습니다. 어린 아이는 전생 마누라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가더니 다리를 안으며 말했습니다.

“너 고생한다.”

어린 아이가 중년 부인을 보고 “너 고생한다”고 하니, 부인은 더욱 당황했습니다.

“놀라지 말아라. 나는 너의 전 남편인 아비스 스루무스이다. 저 건너 동네에서 다시 태어나 지금 이렇게 찾아왔어.”

또 아이들을 보더니, “사귀, 구루사리, 참 보고 싶었다” 하면서 마치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사람들을 자기가 맞아 죽은 마굿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전에는 좋은 갈색 말이 한 필 있었는
데 그 말이 안 보이니 어떻게 되었는지 묻고서, 팔았다고 하니 무척 아까와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일하던 여러 인부들을 보지도 않고서 누구, 누구 하며 한 사람씩 이름을 대면서 나이는 몇 살이고 어느 동네에 산다고 말하는데 그 말들이 모두 맞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전생의 과수원 주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결국 세계적인 화제거리가 되어 이스마일이 여섯 살이 되던 1962년에 학자들이 전문적이고 과학적으로 조사하기 해 조사단을 조직하였습니다. 이 때 일본에서도 다수의 학자들이 참여했습니다. 그 조사보고서에 보면 확실하고 의심할수 없는 전생기억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 과수원 주인이 생전에 돈을 빌려 준 것이 었었는데 돈을 빌려간 사람은 아비스 스루무스가 죽어버리자 그 돈을 갚지 않았습니 다. 이스마일은 그 돈을 빌려간 사람을 불렀습니다.

“네가 어느 날 돈 얼마를 빌려가지 않았느냐. 내가 죽었어도 내 가족들에게 갚아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런데 왜 돈을 떼어먹고 여태 갚지 않았어?”

돈 빌려 간 날짜도 틀림없고 액수도 틀림없었습니다. 안 갚을 수 있겠습니까! 이리하여 전생 빚을 받아내었습니다. 이 사실은 죽은 아비스 스루무스와 돈 빌려 쓴 사람,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었습니다. 그런 것을 어린 아이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 것이며 또 누가 말하여 주었겠습니까? 그리하여 조사단은 이스마일이 바로 아비스 스루무스의 환생이라는 사실에 대해 확정을 짓는 보고서를 내었습니다.

전생을 기억하는 사례 중에서 또 유명한 것으로 인도의 산티데비San ti Deui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산타 데비는 1926년 인도의 델리에서 태어났는데 세살 때부터 자꾸 전생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전생에 무트라 Muttra 지방에 사는 케다르 Kedar라는 사람의 아내였는데 자기를 그곳으로 보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산티 데비는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여러가지 전생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산티 데비의 부모는 처음에는 아이가 정신이 좀 이상한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전생 이야기를 너무나 생생하게 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무슨 곡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이가 말하는 무트라 지방에 가서 케다르라는 사람을 찾아 보았더니 과연 그런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아이가 말한 대로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티 데비의 부모는 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자기 집에 일곱살 되는 계집아이가 있는데 자꾸 전생 이야기를 하면서 당신의 아내 였다고 하니 그것이 정말인지 확인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날 몇 시에 자기 집으로 와서 확인해 보자고 제의했습니다.

산티 데비의 부모는 이렇게 비밀리에 약속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약 속을 한 그날에 케다르 씨는 산티 데비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가 문에 들어서자 이를 본 산티 데비는 깜짝 놀라며 반색을 하고 뛰어나가 그를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을 항상 생각하며 당신에게 가려고 해도 이 집에서 보내주지 않아서 못 갔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전생의 남편인 케다르를 따라가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산티 데비는 옆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계속하던 중에 자기가 죽으면 재혼하지 않겠다고 해 놓고 왜 장가를 갔느냐고 다그치기도 하였습니다. 또 자기 어머니에게 케다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면서
그것을 준비해 달라고도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자신에 대해 상세히 말을 하자 케다르 씨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비록 어린아이지만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등을 볼 때 전생의 자기 아내임이 틀림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산티 데비의 전생 이야기가 알려지게 되자 인도 정부에서는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단을 조직하였습니다. 조사단은 산티 데비를 데리고 무트라 마을에 가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우선 집을 찾도록 했습니다. 산티 데비는 너무나 오랫동안 산 곳이라 눈을 감고도 척척 찾는 것이었습니다. 얼마쯤 가면 느티나무가 있는데 거기서부터 길이 좁아지니 거기서 차를 멈추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윽고 산티 데비는 앞장서서 옛날에 자기가 살던 집으로 들어가서 머리가 허연 노인에게 “아버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전생의 시아버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불러서 한 사람씩 이름을 말하는데 모두 사실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산티 데비는 살림을 돌아보고 나서 살림이 궁색해졌다고 하며 지하실에 묻어 둔 금을 파서 살림에 보태 쓰자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데리고 지하실로 가서 가리킨 곳을 파 보았으나 빈 궤짝만 나오고 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물어보니 남편이 그 금을 파 내어 썼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이야기로 전생에 산티 데비가 지하실에 금을 묻어둔 것은 사실임이 판명되었습니다. 그래도 조사단은 계속해서 의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이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델리와 무트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말이 서로 달랐습니다. 산티 데비는 델리에서만 살았고, 아직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무트라 지방의 말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트라 지방의 말을 하
는 것이었습니다. 평범한 어린아이라면 무트라라는 지방이 있다는 것도 잘 모를 텐테 억양도 말씨도 틀림없는 그 지방의 말을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조사단은 더 이상 의심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 외에도 여러가지를 검증해 본 결과 조사단은 산티 데비가 전생의 케다르 씨의 아내가 환생한 것임이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인도 정부에 다음과 같은 공식 성명서를 냈습니다.

“산티 데비의 환생 문제는, 더러 반대하는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으나, 전국적으로 권위있는 사람들이 직접 상세히 조사해 본 결과 이것이 조금도 거짓말이 아닌 틀림없는 사실임을 확인하였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전 세계에 알려져 전생기억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습니다. 그 후 산티 데비는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에서 공무원으로 살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나이가 많아 생존 여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이스마일이나 산티 데비의 예와 같은 전생기억의 사례는 학계에 보고된 것만 해도 무수히 많습니다. 그중에 한두 가지만 더 이야기 하겠습니다.

몇 해 전 스리랑카에서의 일입니다. 태어난 지 3년 7개월 된 쌍동이가 있는데 자꾸 전생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사단이 그 아이를 전생에 살았다는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리고는 근처의 주민
들을 수 백명 모으고 그 가운데에 그 아이가 말하는 전생의 부모형제들을 섞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그 아이더러 전생의 부모와 형제를 찾아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이 사람은 아버지, 이 사람은 어
머니, 이 사람은 누나, 이 사람은 형님…” 하면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아이의 전생기억을 틀린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세살 된 어느 아이도 전생 이야기를 하는데 그는 다이빙 선수였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지금도 다이빙할 수 있겠니?”

“그럼요. 할 수 있고 말고요. 전에 많이 했는데요.”

이리하여 세살 되는 어린 아이를 높은다이빙대 위에 올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어린 아이는 다이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조금도 서툴지 않게 서슴없이 다이빙을 했습니다.

전생기억이란 이런 식입니다. 또 흔히 천재니, 신동이니, 생이지지(生而知之)니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태어난 뒤로 한번도 글을 배운 적이 없는데 글자를 다 아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책을 보여도 모두 읽을 줄 아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이지지라고 합니다. 곧 나면서부터 다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생이지지는 바로 전생기억에 의한 것입니다. 전생에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금생에로 그대로 가지고 넘어온 것입니다. 또 처음 가보는 곳인데 낯이 설지 않고,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친근감이 가는 경우는 전생의 기억이 희미하게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전생기억에 대해 누구보다도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미국의 버지니아대학의 이안 스티븐슨 Ian Steuenson 교수입니다. 그는 세계 각국에 연락기구를 조직하여 전생기억을 가진 아이나 어른이 있으면 학자들을 보내어 사실을 조사하여 확인했습니다. 이리하여 그는 수년 동안에 600여명의 자료를 수집하였으며 그 중 대표적인 사례를 뽑아서 책으로 출판하였습니다. 바로 <윤회를 나타내는 스무 가지 사례 Twenty Cases Suggestiue of Reincarnation>라는 책입니다. 전생기억에 대한 보고서로서는 가장 확신이 있고 어떤 사람이든 반대의견을 제시하기 어려운 유명한 책입니다. 그리고 1973년까지 약 2,000건의 전생기억을 가진 사례를 조사하여 보고했습니다. 자료가 이만큼이나 되는 것을 비추어 볼 때 사람이 죽으면 그 만이 아니고 윤회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안 스티븐슨은 정신과 교수로서 전통적인 의학에 대한 연구 경력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연구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정신의학과 심리학의 전통적인 이론은 인간의 성격을 유전과 환경과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이들 복합적인 요인만으로는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는 사례들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규명해 보고자 했다.”

그는 윤회를 한다고 정식으로 공포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사실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지식이나 경험에 의해 무의식적인 영향을 받는 어른들보다 자신의 기억을 해석하려고 들지 않는 어린이의 사례 조사에서 90퍼센트 이상의 정확성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안 스티븐슨 교수는 전생기억에 나타난 사례들에서 몇 가지 특징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전생기억과 연령과의 관계입니다. 대개는 태어난 지 두서너살이 되면 전생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좀더 나이가 들어서나 아니면 말을 시작하자마자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체로 말을 잘 할 수 없는 시기의 전생기억이 좀더 정확한 수가 많습니다. 어린 아이가 전생에 대해 말하는 첫 말은 대개 자신이 알았던 사람의 이름이나 지명입니다. 그러다가 다섯살에서 여덟살 사이쯤 되면 어린이들은 전생기억을 잊어버립니다. 왜냐하면 이 때가 되면 가정의 제한된 테두리를 벗어나 이웃과 학교에서 여러가지를 경험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점점 사라지는 전생기억 위에 새로운 경험이 축적되면서 전생기억은 아주 사라지는 것입니다.

둘째로,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어른스러운 태도를 보이거나 위엄과 지혜를 갖는 등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그 행동이 다릅니다. 이러한 행동은 가족이나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보이지만, 본인에게는 당연한 행동이며 그것은 전생의 자기 모습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또 증언자들이 말하는 죽은 사람의 행동과도 일치합니다.

세째로,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자기 육체의 생소함을 말하곤 합니다. 그들은 대개 자신이 작은 육체에 갇혀서 답답하다고 불평을 늘어 놓곤 합니다.

네째로,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이 가장 생생하고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전생에서 죽음과 관련된 것이며, 바로 죽음의 순간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리고 특히 죽음에 대한 전생기억 중에서 교통사고나 살인, 전쟁과 같이 격렬하게 죽은 기억이 더욱 생생하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런 죽음을 당한 사람만이 환생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그런 경우일 수록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격렬한 죽음의 경우, 전생기억을 하는 아이는 대개 죽음을 가져다 준 물건이나 환경에 대해 강한 공포심을 나타냅니다. 한 보기로서 어떤 어린이는 전생에 다리 위에서 버스를 지나가게 하느라고 비켜 서다가 물에 빠져 익사하였다고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다리, 버스, 물에 대해서 상당한 두려움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목욕시키려면 네 명의 어른이 강제로 붙잡아야 할 정도로 물에 대한 공포에 떤다고 합니다.

다섯째로, 사람과 환경의 변화를 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처음 가는 집이라면 그 집이 어떻게 변하였고, 거기 사는 사람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보통의 사람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전생을 기억하는 경우에
는, 처음 전생 집을 찾아갈 때, 구조가 어떻게 변경되었다는둥 가족 중에 누가 안 보인다는둥 그 집의 변화를 말한다고 합니다.

여섯째로, 환생을 예견하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아이를 출산하기 전에 어느 가정에 태어나기 위해 온다는 것을 꿈에 예고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꿈이 동, 서양에서 종종 화제가 되곤 합니다.

일곱째로, 임신 중의 비정상적인 식성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기에는 임신을 하게 되면 평소에 잘 안 먹던 음식이나 제 철이 아닌 음식에 대해 그 사람은 비상한 식욕을 느낍니다. 그것을
임신부의 변덕이라고 하여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생기억을 하는 어린 아이의 경우, 전생에 좋아했던 음식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그 음식이 바로 어머니가 임신 중에 먹고 싶어 했던 음식과 일치한다고 합니다.

여덟째로, 배우지 않은 기술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생기억을 하는 어린이 중에는 배우지도 않은 기술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전생에 가졌던 기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보기를 하나 들자면 벨기에에 로버트라는 소년이 있었는데, 이 소년은 어느 날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5년에 죽은 자기 삼촌인 알버트의 초상화를 보더니 그것이 자기라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세살이 조금 지나서 로버트는 부모와 같이 처음으로 수영장에 갔는데 멋진 동작으로 다이빙을 하여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의 삼촌인 알버트는 훌륭한 수영선수였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수영은 세살 정도의 어린아이도 할 수 있지만 다이빙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영장에 처음 온 아이가 다이빙을 멋지게 해내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 아이가 전생의 알버트였음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배우지도 않은 기술이 나타나는 가장 놀라운 사례는 외국어를 말하는 경우입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생리학자이며 심리학자인 동시에 노벨수상자이기도 한 샤를르 리히Charles Richet는 그러한 현상을 지노글로시Xenoglossy라고 붙였습니다.

이안 스티븐슨은 이 지노글로시에는 두 가지 형태가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독백과 같은 것인데, 당사자는 이상한 언어의 조각들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자꾸 반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잠재된 기억 속에서 언어가 무의식적으로 도출되는 경우인데 본인은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두번째는 반응적인 경우인데, 이것은 직접 상대방과 그 외국어로써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스티븐슨은 두번째 경우인 반응적인 지노글로시의 사례는 죽음 이후의 인간의 윤회에 대해 중요한 증거가 된다고 말합니다. 곧 전생에 그 언어를 배웠거나 사용한 사람이 아니면 그처럼 유창하게 외국어를 구사한다는 것이 언어를 배우지도 못한 어린이에게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 가운데 최초의 지노글로시는 19세기에 있었던 일인데 최면에 의해서입니다. 1862년 독일의 왕자 갈리첸Galitzen은 어떤 여인을 대상으로 최면 실험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인은 18세기의 훌륭한 프랑스어로 브리타니에 살았던 전생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갈리첸 왕자는 그녀가 프랑스어를 배웠는지 조사해 보았지만 그녀는 일반 교육도 전혀 받은 적이 없는 무학(無學)이었고, 다만 자기 지방의 독일어 방언 밖에는 말할 줄 모른다는 것이 판명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여자는 전생에 프랑스에서 살다가 다시 독일에 태어난, 윤회의 실증임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아홉째로, 출생 자국을 들 수 있습니다. 아이가 출생할 때부터 흉터가 있거나 불구가 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선천적 기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원인은 대부분 유전이나 임신 중의 약물 복용에 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것이 전생의 업보에 의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윤회를 입증하는 전생기억에 관한 사례는 현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삼국지(三國誌)>는 책을 보면, 삼국시대에는 아무도 중국을 통일하지 못했습니다. 조조도 못하고 유비도 못하고 손권도 못하였습니다. 정작 중국이 통일된 것은 세월이 흐른 뒤 진(晋)나라 때입니다. 그 때 진나라의 재상이며 군인이고 또 덕인(德人)이었던 양호(羊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서너살이 되어서, 한번은 유모를 보고 가지고 놀던 금고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모는 아기에게 금고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양호는 유모를 데리고 이웃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집 마당의 큰 고목나무 밑으로 가서 썩은 나무 밑둥치의 구멍 속으로 손을 쑥 넣더니 금고리를 끄집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금고리를 본 그 집 주인이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집의 죽은 아이가 가지고 놀던 것인데 그 아이가 죽은 후에는 아무도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웃 아이가 와서 그것을 찾아냈으니 놀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두들 그 이웃집의 아이가 죽어서 양호가 되어 환생한 것이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증거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이 금고리입니다.

1930년에 죽은 양계초(梁啓超)의 선생님인 강유위(康有爲)라는 대학자는 바로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 전생이 있다고 주장 했습니다. 그는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입니다. 유교에서는 윤회를 부정합니다. 그런데도 유교학자인 강유위는 윤회를 절대적으로 주장하였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양호의 금고리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자가 양호의 금고리 사실 하나만으로 전생이 있고, 윤회가 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없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하면 이안 스티븐슨 교수가 수집한 2,000여 건의 사례는 큰 의미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잠깐 신라 통일시대의 김대성의 이야기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김대성이 처음 태어난 집은 아주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품을 팔아 근근히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주인집에서 밭을 조금 떼어 주어서 그것으로 생활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옆집에서 시주를 하자 스님께서 ‘시일득만배(施一得萬倍)’라고 축원하는 것을 김대성이 듣게 되었습니다. 김 대성은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간청하여 자기네의 조그만 밭을 스님에게 시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역시 ‘시일득만배(施一得萬倍)’라고 축원을 하였습니다.

그 후 얼마 안되어 김 대성은 죽었습니다. 그날 밤, 대신(大臣)인 김문량(金文亮)의 꿈에 ‘모량리(牟梁理)의 대성(大城)이가 너의 집에 태어난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모량리에 가서 알아보니 과
연 김대성이 죽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김문량의 부인은 그로부터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날 때 손을 꽉 쥐고 있다가 이레 만에 손을 폈는 데 손바닥을 보니 ‘대성’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문량의 집에서는 이 아이가 모량리의 김대성이 다시 환생한 것이 분명하다고 하여 이름을 그대로 대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생의 어머니를 모셔다가 함께 있게 하였습니다.

김대성은 성장하면서 사냥을 좋아하였습니다. 하루는 토함산에 가서 곰 한 마리를 사냥해 오다가 산 아래 마을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의 꿈에 곰의 혼이 나타나 자기를 죽였으니 그냥 두지 않겠다고 하며 달려드는 것이었습니다. 김대성이 너무 무서워 잘못했다고 빌었더니 곰의 혼은 자기를 위해 절을 지어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김대성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잠에서 깨어보니 그것은 너무도 생생한 꿈이 었습니다.

그 뒤로 김 대성은 사냥을 끊었으며, 꿈에서 약속한 대로, 그 곰을 잡은 땅에다 장수사(長壽寺)라는 절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원(願)을 세워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佛國寺)를 짓고, 전
세(前世)의 부모를 위해서는 지금의 석굴암을 창건했다고 합니다.

性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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