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어집] 제3편 1장 영혼(靈魂)은 있다 01. 불교의 제8식(第八識)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상주법계(常住法界)란 모든 것이 하나도 없어짐이 없이 있는 그대로가 불생불멸(不生不滅) 이라는 것입니다.

상주법계에 대한 과학적인 증명으로서 앞에서는 등가원리를 말했는데, 여기에서는 그것과는 다른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이 살아 있을 때는 정신이라 하고 죽어서는 영혼이라 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 수천 년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논란과 시비를 거듭해 왔지만, 아직도 확실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과학자나 철학자들은 영혼 따위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싸움이 수천 년 동안 계속되어 내려온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대승이나 소승이나 어느 경론이나 할 것 없이, 팔만대장경에서 부처님께서는 한결같이 생사윤회를 말씀하셨습니다. 곧 사람이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살아서 지은 업(業)에 따라 몸을 바꾸어 가며 윤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윤회는 불교의 핵심이 되는 원리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윤회를 하는 실체를 말할 때 그것을 영혼이라고 이름하지 않고 제8아라야식(Alaya 識)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의 심리 상태를 나눌 때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하는 이것은 제6의식이라 하고, 그 안의 잠재의식은 제7말라식(末那識)이라 하고, 무의식 상태의 마음은 제8아라야식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호흡이 끊어지고 혈맥이 끊어지고 목숨이 끊어져 버리면 의식은 완전히 없어지고 오로지 제8아라야식(阿梨耶識)만이 남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몰식(無沒識) 곧 죽지 않는 식, 없어지지 않는 식이라고 합니다. 또 장식(藏識)이라고도 합니다. 과거, 현재 할 것 없이 모든 기억을 마치 곳간에 물건을 간수해 놓듯 전부 기억해 두고 있다가, 어떤 기회만 되면, 녹음기에서 녹음이 재생되듯 기억이 전부 되살아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에서 말할 때는 무몰식이라 하고,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있다는 뜻에서 말할 때는 장식이라합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미래겁이 다하도록 윤회를 하는 동시에 무엇이든 한번 스쳐간 것은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근래의 불교학자들은 제8아라야식의 존재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알아봅시다. 대승불교에 대해 이론을 가장 많이 발달시킨 일본에서도 가장 권위있는 사람이 우정백수(宇井佰壽)인데, 그는 아라야식은 도저히 증거를 잡을 수 없으므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영혼 자체를 설명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윤회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윤회는 부처님께서 교화를 위해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지 실제로 윤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윤회가 있고 인과가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두려워서라고 마음 가짐과 몸가짐을 착하게 하려고 힘쓸 것으므로, 교육적인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상당히 그럴듯해 보이는 논리이지만, 그런 주장도 과학의 발달 앞에서는 꺾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과학이 물질적인 데에서뿐만이 아니라 정신과학 분야에서도 크게 발전을 이룸에 따라 영혼이 있다는 것이, 윤회가 있다는 것이, 또한 인과가 확실하다는 것이 점차로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하면 생사의 윤회를 벗어나 해탈의 길에 들어설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해탈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확실한 판단이 서야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로서의 삶을 사는 데에서, 또 신앙 생활을 하는 데에서나 불교를 포교하는 데에서, 또는 수행하여 성불하는 데에서 꼭 갖추어야 할 흔들림 없는 근본적인 토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알고 바로 믿어야만 바른 행동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性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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