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중용(中庸)>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불교의 중도와는 근본적으로 틀립니다.
유교사상에서의 중용이란 너무 지나치지 도 않고 너무 부족하지도 않음을 말합니다. 이를 테면 너무 많이 아는 사람은 지나쳐 버리기 쉽고 모르는 사람은 너무 미치지 못하므로, 과(過)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중(中)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 ‘중(中)’은 단순한 중간의 의미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아가서는 서구 세계에서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인들이 일찌기 중용사상을 펼쳤는데, 그들도 중간 사상을 가지고 중용사상이라 하였을 따름입니다. 그들의 이른바 중용사상은 양변을 완전히 버리고 동시에 양변이 완전히 융합하는 사상을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양변을 여의고 양변을 융합한다는 것은 추호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중도사상과 중용은 결코 혼동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서양의 철학계에서도 근대에 이르러 언뜻 보기에 불교의 중도사상과 비슷해보이는 이론이 나왔습니다. 바로 헤겔의 변증법(辯證法) 사상입니다. 정(正), 반(反), 합(合), 이 세 가지가 변증법의 기본 공식으로
정에서 반이 나오면 그것을 융합시켜서 합을 만든다는 논리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이 논리는 중도와 비슷한 듯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시간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보기를 들어 정(正)이라는 사상이 나와서 이것에 모순이 생기면, 다시 반(反)이라는 사상이 나오고 시간이 지나면 정도 아니고 반도 아닌 것이 서로서로 종합이 되어서 합(合)이라는 사상이 나온다는 이론입니다. 이와 같이 시간을 전제로 하는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말하는 헤겔의 정, 반, 합 이론도, 정과 반을 완전히 버리고 정과 반이 완전히 융합하는 것이 아니므로, 중도 사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변증법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한번은 괴테와 헤겔이 만났는데, 괴테가 헤겔에게 그 변증법의 내용이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헤겔은 그것은 모순의 논리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곧 정과반의 모순, 시와 비의 모순, 선과 악의 모순을 말하니, 이것은 양 변이 서로 모순이므로 서로 통할 수가 없으니 이 이론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불교의 근본 사상은 중도사상이니, 팔만대장경 전체가 여기에 입각해 있으며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법하신 모든 말씀이 바로 중도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중도사상을 떠나서 불교를 설명하는 것은 바로 부처님에 대한 반역(反逆)인 것입니다. 불교를 설명한 많은 것들의 그 진위(眞僞)를 가리려면 중도논리(中道論理), 중도정의(中道定義)에 위배되는지 아닌지를 가늠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에 위배되는 사상은 결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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