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동향을 보면, 과학계에서 내세우는 것이 모두 다 옳고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차츰차츰 생명의 정체를 비롯하여 자연의 법칙이 며 우주의 모습에 대해서 과학자들이 일찌기 세워놓은 가설들이 사실이 거나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에 관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몇 해 전에 런던에서 ‘세계 과학자 대회’가 열렸습니다. 19세기에 다아윈이 진화론(進化論)을 발표하자, 세상은 그것을 믿지 않았는데, 그 때에 진화론을 앞장서서 소개하였던 사람이 헉슬리 T.H. Huxley였습니다. 바로 그 사람의 손자 되는 사람이 또한 영국의 과학계를 주도하는 유명한 과학자가 되어 이 회의를 주재하게 되었습니다. 이 대회의 명칭은 ‘세계과학자 대회’이지만 다른 모든 학문 분야에 대해서도 토의를 해보자는 의도가 있어서 종교 문제까지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종교 문제를 토의하는 데에는 그 방면의 전문가가 필요하였기 때문에 신부, 목사, 신학자들도 그 대회에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과학자 대회에서 토의된 종교 문제에 대한 의견을 종합하여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과 같은 우주과학 시대에는 신(神)을 전제로 하는 종교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일반 종교에서 말하는 신은 허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떠한 종교가 앞으로 존속할수 있는가? 불교와 같이
신을 전제로 하지 않는 종교만이 존속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성직자와 신학자들을 앞에 두고 세계 과학자 대회는 이렇게 신(神)을 전제로 하지 않는 종교만이 존속될 수 있다는 중대 선언을 했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랍고도 획기적인 선언이 었습니다. 서양에서의
기독교 신의 존재는 다만 종교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으니, 이천여 년을 내려오며 그들을 지배해 온 전통이요, 사상이며, 생활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전적으로 부정한 것입니다. 일대 혁명이랄 수 있는 이 선언은 결국 믿음이라는 근본 문제를 재고해 보아야 한다는 주장과 같은 것입니다. 그 때에 가톨릭이나 기독교의 대 신학자들이 많이 참석하였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신을 전체로 하지 않은 불교와 같은 종교만이 존속할 것이라는 데에 대해서도 아무런 이의를 내놓지 못하였습니다.
정작 불교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과학자들이 이런 결론을 내렸다는 것은 반가운 일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비록 불교가 신을전제로 한 종교와는 달리 이 우주과학 시대에 존속할 수 있다고는 하였지만, 그것은 불교의 이론 체계 역시 객관성을 가질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고 공리공론(空理空論)에 그치고 만다면 불교도 존속하기 위해서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 분명합니다.
믿음에 대한 문제, 종교에 대한 문제에 관해서 현대의 과학자들이 그러한 태도를 보인 것은 그들이 종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라하여 그런 말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조차 없다고 일축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아직 과학이 규명하지 못한 신비의 세계가 많이 남아 있듯이 과학에도 한계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가장 차원 높은 세계를 추구하는 종교에 대하여 과학자들이 성명서를 냈다고 해서 그들의 말을 따라 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종교의 존엄성을 완전히 포기하는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주교나 기독교의 종교인 및 신학자들은 과연 이 문제에 대하여, 오늘날, 어떻게 생각하며 대처하고 있는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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