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날 서장대의 기슭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목이 탔다. 기슭 아래 자리잡고 있는 호국사를 찾아가 물을 얻어 마셨다. 한참 꿀컥꿀컥 마시고 있는데, 한 스님이 그 모습을 보고 있더니 이렇게 물었다.
(왜 사람은 물을 마셔야 하느냐?)
나는 미처 무어라고 대답할 말이 떠올라 말이 오지 않았다.
(왜 불이 뜨겁고 얼음이 찬 줄 아느냐?) (마음이 뜨겁다고 생각하고 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만약에 우리가 불이 뜨겁고 얼음이 차다는 관념을 털어버릴 수만 있다면 그것은 그저 아무 것도 아닌 저 돌멩이와 같은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듯이 우리를 주관하고 있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인 것이다. 육체가 나라고 자각할 때 사람들은 의식주를 필요로 하게 되고 그 끝에서 그는 죽음의 허무한 허울을 보게 된다. 그러나 마음에서 나를 발견할 때 우리는 생사를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불타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오욕을 벗어 버리고 마음을 찾는 일인 것이다.)
나로서는 처음 듣는 소리였다. 너무도 뜻밖에 들은 그 마음을 설법하여 주신 분은 금강산 유점사에서 수도하시고 온 박포명스님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은 뒤로부터 마음이란 말에 중치가 막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벙어리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가 토요일만 되면 다시 호국사로 그 마음을 들으러 갔었다.
갈수록 미로와 같은 세계였다. 인간의 실체란 미도 추도 아니며 고도 낙도 아니다 다만 공일 뿐이다. 그 공속에서 보는 나만이 영원한 것이다. 세존께서는 그 공을 만나려고 집과 식구들 곁을 떠나 우루베라촌으로 들어가셨다. (그러니 승려들아, 너희들도 집을 떠나 산으로 가라, 가서 여러분의 공을 만나라)그의 설법이 어떻게나 독특하고 황당무계한 것이었던지 나는 그 앞에서 언제나 올빼미같이 눈을 뜨고 그의 입만 보고 있었다. 유난히 큰 그의 입에서는 사바세계의 소년으로서는 매정스럽고 잔인한 것 같지만 소리가 거침없이 튀어나왔고 넘쳐 흘렀다. 나는 그의 말의 무서움에 오돌오돌 떨면서도 떠나라 떠나라는 말이 어쩌면 그렇게도 아름답고 쓸쓸할까 하고 생각하면서 그 떠남은 실행에 옮기려고 마음의 준비를 다져가고 있었다.
드디어 초가을의 어느날 나는 떠났다. 합천 해인사까지 이틀을 걸어갔다. 일주문을 지나 법당으로 들어갔다. 불상 앞에서 꿇어 앉았다. 우람찬 자세로 앉아 있는 불타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 같은 소리가 계곡의 돌자갈을 스치고 흐르는 여울물처럼 흐르고 있는 것 같았고, 그러한 불타의 목소리 속에서도 승려로서의 나의 내일을 기약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곳 승려들은 나를 학생이라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 나는 다시 이틀을 굶고, 진주가 20여리 쯤 남은 고개에서 지나가는 마차에 실린 자전거를 빌어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마차는 마침 쌀을 싣고 우리 정미소로 가는 것이었고, 아버지의 이름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부탁 한번으로 빌 수 있었다.
1차의 출가에서 실패한 나는 부모님들의 눈치를 조심조심 살피면서 다시 떠날 기회를 노렸다. 집을 비운 이틀 사이에 집에서는 소동이 났었던 모양이다. 유교사상이 깊이 물들어 있는 부모들로서는 거렁뱅이나 되는 중을 그의 아들이 됐다는 일을 용납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독자인 내가 대를 이을 생각을 않고 인연을 끊겠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무렵 나는 벌써 그 인연의 끈이 얼마나 가늘고 허무한 것이가를 알고 있었고 가늘고도 질긴 그 줄을 끊어버리는 일이 대오로 행진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지름길이라고 확실히 믿고 있었다. 나와 백년해로를 하겠다고 온 아내에게만이 그지없이 죄스러웠다.
그의 젊은 나이를 내가 떠난다면 그는 홀로 보낼 것이다. 그 때의 도덕률로서 남편이 떠났다고 하여 재가한다는 것은 허락될 수 없었으며, 그래서 그녀는 더욱 떠나간 남편을 생각하며 수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 추단은 사실로 맞아 떨어졌다. 딸이 하나, 그 뒤에 태어났었다고는 하지만 딸하나를 보고 그가 그 많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을 것이고, 나에의 추억과 그리고 그의 부덕이 그 많은 밤을 홀로 보낼 수 있게 했을 것이다. 그 무렵 그 여자는 내가 그의 곁을 떠날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것이 언제일까를 불안하게 떠보고 있었을 뿐이다. 그의 그런 불안, 기다림 때문에 어쩌면 나는 더 빨리 떠나려고 하였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폭풍전의 바다가 어둡고 지겹듯이 기다리는 그 시간이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서는 벅찬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이 오고 나뭇잎이 땅에 떨어져 흙에 묻힌 날 길을 재촉하였다. 사흘을 걸어가니까 백양사로 가는 전라도와 경상도 경계의 탑리고개에는 보기에도 성근 눈이 내려 덮이고 있었다. 전라도의 눈은 몹시도 크고 가볍게 내리는 것 같다. 나뭇가지에, 풀숲에 내려 앉아 있는 눈색은 마치 내가 찾아가려고 하는 서방정토의 진경인 것 같이 생각되었다. 그 눈을 밟으며 다시 더 이틀을 걸어가니 드디어 백양사의 운문암이 나타났다. 다리를 건너가 만공스님을 찾으니, 스님은 서울로 올라가시고 스님이 올때까지는 그 누구도 입문시키지 말라는 엄명이 내려져 있었다. 닷새를 걸어왔다는 하소연을 해보았으나 소용없었다.
(보리와 나는 인연이 없는 모양인가)하고 탄식하면서 그날밤 나는 노스님의 방에서 아픈 다리를 쉬었다. 스님은 중병에 걸려 있었다. 끄르륵 끄르륵 목에서 가래 끊는 소리가 밤새도록 들렸다. 새벽2시쯤이었다고 생각된다. 노스님은 부스럭부르럭 일어나 나를 깨워서 말했다. 자기의 고향은 함경도 함흥이며 백만장자의 아들이었는데 부의 누추함이 싫어서 떠나왔다는 것,자기는 내일 모래쯤은 죽을 것이며 산간세계에서는 그 죽음이 몹시도 냉랭하게 다루어진다는 것, 그러니 숨이 끊어지기 전에 자기의 행적을 깨끗이 청소하겠으니 자기를 좀 일으켜 달라는 것, 나는 스님을 부축해 일으켰다. 그는 벽장을 열고 그 속에서 보자기를 꺼냈다. 그속에서 귀한 듯한 몇권의 책과 노트를 꺼내어 옆으로 치우고는 나머지를 역시 나의 도움을 받아 부엌으로 가지고 가 태웠다. 모두 태우고 나서 그는 (다 탔구나)하고 중얼거렸다.
밤이 샜다. 염불소리와 빗자루 지나가는 소리에서 아침이 오고 부조장이 문을 열고 공양을 가지고 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부저장은 인사 겸(스님 어떻습니까)하고 물은 다음, (그만 단념하기오, 스님 인자 더 못삽니더)하는 것이었다.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놀랍기 그지 없는 그 소리를, 그러나 스님은 아무런 동요없이 듣고 가야지 하는 것이었다. 그 가야지라는 말꼬리를 따라 산바람이 솔잎과 대나무숲을 몹시도 시끄럽게 흔들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백양사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사이에 아마도 그 노스님은 입적하셨을 것이다. 그는 좌선한 채로 그의 죽음을 맞아들였을 것이고, 그의 동료들이 나무아미타불을 뇌며 사르는 불길에 타재가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그의 동료들은 무섭고 끔찍스런 일을 해날 수 있을까, 죽음이라는 것을 초개같이 여길 수 있어서일까. 그래서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우리집의 사립문을 밀고 우르르 달려나 오신 어머님과 마주하였을 그때까지 끔찍스런 그 죽음의 상념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다음 어머님의 수다스러움 속으로 묻혀 들어갔다.
(어디를 갔다가 왔느냐. 아버지가 몹시 노여워하고 계시니 조용히 들어가거라)(어이쿠 어이쿠 이 무슨 팔자고)소리를 여러번 말씀하셨다.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랫목에 깔아놓은 이불 속에 발을 넣었다. 그러는새에 짧은 저녁해가 지고 밤이 왔고, 나는 어버님의 기침소리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안방으로부터 새나오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런 긴장을 움직임없이 이겨내기란 어려운 법이다. 긴장을 이긴다는 것은 이미 세속감정을 털어버린 사람들이나 지닐 수 있는 태도인 것이다.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을 수 있는 것이 견성한 분들의 정숙인 것이다.
드디어 그 긴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왔다. 그 새 아버지의 얼굴은 숯덩이처럼 검게 타 있었다. 인사를 드리려고 들어온 나를 보고 갑자기 (이 나이가 되어서 무슨 꼴이냐, 아들로부터 이런 불효를 받다니.)하고 부르짖더니 대성통곡을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밤에 우리는 싸우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육체와 정신이 , 세속적인 의리와 그 반대의 것이 서로지지 않으려고 밤새도록 버티다가, 통곡으로 아버니가 손을 들었고, 그 분에 못이겨 그 분은 끝내 그의 단명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 같다.
어버지가 별세하시기 전날, 한 마을에 살고 계시던 할어버지와 백부님이 오셔서 가족회의를 열었다. 그 분들은 어떻게 하든지 나로부터 중이 되지 않겠다는 말을 들으려고 하였건만 끝내 실패를 하였다. 할아버지는 (네 아비가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도록 입에 바른말이라도 않겠다고 하여라)하고 간청하였건만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하고 나는 거절하였다. 그때 병중에서도 휙 몸을 돌리시고 쏘아보시던 아버지의 눈길을 지금도 나는 기억한다. 너무나 무서운 원망과 저주에 가득 찬 눈이었다. 그와 동시에 할어버지와 백부님께서도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노여움에 찬 어조로 몇번이고 뱉으시면서 문을 차고 나가시었고, 나는 그분들의 뒤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서 엉거주춤 서 있어야 했었다.
그 다음날 아버님은 별세하셨다. 그리고 갓난아이였던 나의 동생이 따라서 저승으로 갔다. 세속세계를 떠나려고 하는 나의 마음은 그 세속세계로부터 너무나도 심한 보복을 받은 것이다. 언제나 다행스럽게 생각한 것은 그런 보복을 받으면서도 불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버리지 않고 그 다음해 겨울, 드디어 출가의 길에 나설 수 있었다는 점이다.
淸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