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을 찾아서

우리 마음속의 본 태평 천진불로서 가없이 일체중생을 비추면 환몽이 곧 진이며 중생어가 곧 여래어며 중생심이 곧 부처마음이다.

치산치업과 사농공상의 생업은 모두 본 태평 천진불이 전의하는 용상이라 도무지 이 진여의 본성을 떠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중중생생이 조업한 미집으로 인하여 스스로 속아 스스로에 얽매여 미와 오,범,성 생,불,자와타,인과과,염과정,성과상 등을 소유하여 분별 하고 계박해서 해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본태평 천진불은 성성하여 요요일광 이다.

중생들이며, 항상 진신수수하라. 스스로 조업한 미집을 절파하는 신심을 개오 수수케 하여라. 신심은 보리심을 발하는 시초이며 일체제불의 근원이 됨이며 불과성취의 인연이 되느니라. 신심을 이거한 중인은 하나의 신심이 수습된 만채라 이다.

중인들이여, 오늘 우리들이 믿고 있는 것이 몽환인가 살펴보자. 우리가 진여에 계합하며 진신하고 있다면 중생을 보살피는 자비심을 더욱 현발시키고 우리가 몽환에 편잠하였다면 이를 간파하여야 한다. 중인의 대병은 몽환인데 스스로 이병에 빠져 병을 이롭게 하는 삼독치심을 가짐은 타삼악도할 보과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 산문은 산정의 납일처럼 소란하다. 이것은 공부에 마음을 두어 운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늘은 맑고 푸른데 밸을 일점이 부유하지 않는 하늘은 구저 무심할 뿐이다. 산문은 운수의 왕래와 담선이 있어야 한다. 사미행자의 율의가 장로비구의 습행이 되어야 한다. 산문의 청규는 백장의 정맥이요 승증의 생명이다. 이것이 조계산을 푸르게 하는 총림이다. 총림은 신행이 발원하고 행과가 만발하며 성취가 증득하는 곳이다.

합나행과 마나연이 없는 총림은 한림의 정골처럼 번뇌스럽기만 하다. 그러므로 총림은 계,정,혜, 삼학을 참수하고 이행을 구족하는 곳이다. 이것은 중생을 제도하는 여래심의 본처이다. 산문처처와 총림방방이 모두 보살의 보시장이 되어 방생을 자재롭게 하여야 한다. 우리들 조계산하의 승가는 일시,일법,일념,일행이 부처님이 유계한 정법에서 수습하여야 한다. 유계의 범주를 벗어남은 스스로 산문출송을 자인한 소업이리라. 사문은 고행이다.

안위한 해탈을 소작함이란 도시 몽한 속의 공화를 견취함이다. 고행은 자기극복의 시초이다. 자기를 주장하는 자만을 조복받기 위하여는 고생스러운 참회가 있어야 한다. 중노릇을 꿈같이 편하게 하려는 것은 이미 중노릇이 아닌 것이다.

중 노릇은 중생활을 대신하여 사는 삶의 처음이다. 삶의 처음은 황무한 벌판에서 길을 만들어 나아감이다. 칡덩굴 가시밭길을 탄탄대로 만드는 일이다. 중생을 앞질러 사는 중 노릇이므로 여기는 각오와 결심이 있어야 하다. 황사모래알 보다 긴 겁수로 중노릇을 하였다 하더라도 중생을 대신하고 중생을 앞질러 고행하고 제행을 일삼지 아니한 중 노릇이라면 한 찰나 희념보다 못한 죄업 속에 살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중인승가는 중 노릇의 큰 마음을 지어 염념증진하고 신신작불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중생들이여, 중생이 중생을 보살피고, 중생이 육도를 보살피고, 중생이 인타라망을 보살피고, 중생이 유정무정 일체중생 실유불성을 보살피고, 중생이 인타라망을 보살피고, 또한 중생이 보살피는 그 중생을 보살피는 새 해가 되어야 생불이 호융하여 무별무이한데 생불을 어디서 찾을 건고? 중생이여! 사행하여 사과하는 열반을 증득하자. 그러면 범속과 유정 과 정각유정을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모두가 일생성불의 우담발체를 개발할 것이다. 금시금일에 생불을 호응케 하고 중생을 보살피게 할 것이다. 이것은 초발신심을 구경불과에 오르게 한 문무의 공부다.

승가여! 조계산문이여! 안으로 계, 정, 혜를 수업하고 밖으로 방생보시하여 출가장부의 본지를 살리자. 우리의 해태심에 삼아승지겁의 과보가 됨을 자각하여 중 노릇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여 도제양성, 포교사업, 역경불사를 잘 이끌어 나갈 것이다. 이 삼대본업의 처음도 진승의 행동에 있고 회향도 진승의 노력에 있는 것이다. 능엄의 대다라니백번 외어 참회한다 손치더라도 중생을 보살피는 큰 마음보다 못하다 응무소주이생기심인데 보살되는 마음이 보살이다.

사부대중즉 비구, 비구니, 청신사, 청신녀들이여 우리는 정계를 지키며 정법을 수호하여 스스로를 보살피며 구제하는 데 힘쓸지어다. 그리하여 나라 안팍과 시방세계가 부처님의 광명받으사 평화롭고 풍요로운 열반 깃들게 하여라.

淸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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