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육왕전(阿育王傳)제3권

아육왕전(阿育王傳)제3권

04. 구나라본연(駒那羅本緣)

아서가왕(阿恕伽王)의 부인 이름은 연화(蓮花)였다. 한 아이를 출산해서는 법증(法增)이라 이름 지었다.

한 보상(輔相)이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마땅히 기뻐하소서. 왜냐하면 왕께서는 아이를 얻으셨습니다. 모습이 단정하고 눈빛이 뛰어나십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마음속에 기쁨이 솟아나 이렇게 말하였다.

“선왕으로부터 대명칭이 있었으니, 내가 지금 능히 법(法)을 증장하여 이 아이를 얻었도다. 따라서 이름을 법증(法增)이라 할 것이다.”

유모가 아이를 데리고 왕이 있는 곳으로 왔다. 왕이 아이를 보자 두터운 애정이 생겨 게송으로 설하였다.

이 아이의 눈은 매우 빛나며
대복덕을 갖췄도다.

연꽃이 처음 필 때처럼
장엄함이 얼굴에 있네.

또한 만월(滿月)과 같이 원만하니
보는 사람마다 기뻐하네.

이 게송을 설하고 나서 보상에게 말하였다.

“사람들 눈 가운데 나의 눈이나 이 아이의 눈과 비슷한 눈을 본 적이 있는가?”

보상이 대답하였다.

“일체 사람들 가운데서 듣거나 보지 못했습니다. 오직 설산(雪山)에 있는 새인 구나라(駒那羅)의 눈과 매우 비슷합니다.”

왕은 즉시 야차(夜叉)에게 명하였다.

“가능한 빨리 저 설산에 있는 구나라라는 새를 잡아오너라. 내가 그 새를 보고 싶다.”

이 때 야차가 즉시 왕명을 받아 한 찰나(刹那)에 그 새를 잡아서 왕이 있는 곳으로 왔다. 왕은 이 새의 눈이 아이의 눈과 닮아 별 차이가 없음을 보았다. 그런 까닭에 아이의 자(字)를 구나라라 하였다. 그런데 이 이름이 널리 유포되어 모두 들어 알게 된 까닭에 부르는 이름을 쫓아 구나라로 불렀다.

나이가 들고 성장하게 되자 부인을 두게 되었는데, 이름이 진금만(眞金鬘)이었다. 왕이 그 자식과 함께 계두마사(雞頭摩寺)에 이르렀을 때 상좌(上座)가 구나라를 보고 오래지 않아 반드시 눈을 잃어버릴 것을 예견하고는 왕에게 말하였다.

“어떠한 까닭에 구나라로 하여금 항시 법(法)을 청하라 하지 않으십니까?”

왕이 그 아이에게 명하였다.

“너는 지금 마땅히 상좌의 가르침에 따르도록 하라.”

이 때 구나라는 열 손가락을 모아 손이 상좌가 있는 곳을 향하고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청하옵건대, 어떠한 가르침을 주시더라도 오직 이를 따르겠습니다.”

상좌가 일러 말하였다.

“눈[眼]이라는 것은 무상(無常)한 것이니 믿을 것이 못 된다. 마땅히 삼가 정혜(定慧)의 행을 닦도록 하라.”

이에 구나라가 가르침을 받고 물러나 궁궐 가운데 조용한 곳에 머물면서 스스로 사유(思惟)하여 ‘눈이란 괴로움이고 공(空)이며 무상하고 무아(無我)임’을 관(觀)하였다.

이 때 아육왕의 첫째 부인의 이름은 제실라차(帝失羅叉)였다. 그녀는 구나라가 홀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 눈을 좋아한 까닭에 구나라를 포옹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맹렬한 불길이 산야(山野)를 거침없이 태우듯이 음욕(婬欲)이 나를 위협하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당신은 지금 나와 함께 서로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구나라가 이 말을 듣고 나서는 손으로 귀를 가리고는 게송을 설하였다.

선(善)과 어울리지 않는 말
귀를 막으면 들리지 않지만
어찌 어머니의 도리로서
자식에게 음욕을 품을 수 있는가.

올바르지 않은 음욕을 끊지 않으면
이것은 바로 악(惡)으로 나아가는 문일세.

제실라차가 화를 내면서 말하였다.

“네가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나는 즉시 너를 죽여 버리겠다.”

구나라가 다시 게송으로 답하였다.

원하옵건대 정법(淨法)을 지키다 죽을지언정
음욕이 생겨남을 원치 않도다.

음욕이 생겨난다면
인천(人天)의 도가 파괴되므로
현명한 지혜를 가진 이가 책망할 일이로다.

제실라차가 이 말을 들은 이후 항상 그의 단점만을 찾고자 하였다. 이 때 북쪽에 건타라(乾陀羅)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득차시라(得叉尸羅)라는 성이 있었다. 그 성안의 백성들이 반역하여 따르지 않자, 왕은 몸소 그 성을 토벌하고자 하였다. 보상이 아뢰었다.

“왕께서 몸소 가지 마십시오. 가능하다면 자식을 보내 정벌하고 타이르도록 하십시오.”

왕이 다시 구나라에게 물었다.

“너는 능히 그들을 물리치고 득차시라국을 얻을 수 있겠느냐?” “능히 정벌할 수 있습니다.”

왕은 자식의 뜻을 알고는 기뻐하면서 가도록 하였다. 도로를 장엄하고 늙고 병들고 죽은 사람들,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 그리고 걸인이나 흉악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나라의 경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도록 명령하였다.

아서가왕은 친히 아들과 함께 우보거(羽寶車)에 타고 직접 이들을 전송하였다. 이별의 시간이 가까이 오자 머리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아들을 보며 말하였다.

“그들은 복덕을 갖춰 너의 눈을 볼 것이다.”

이 때 관상을 보는 바라문(婆羅門)이 점괘를 말하였다.

“왕께서는 자식의 눈을 좋아하신다. 그 아들의 눈은 오래지 않아 반드시 파괴될 것이다. 지금 아이의 눈을 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만약 그 눈이 파괴되면 일체의 근심과 괴로움이 생겨날 것이다.”

구나라는 점점 나아가 득차시라성에 이르게 되었다. 성안의 백성들은 구나라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도로와 항구를 깨끗하게 치우고 향수를 담은 병을 지니고 엎드린 모습으로 반(半) 유순(由旬)이나 영립하러 나왔다. 그리고는 구나라를 보자 합장하고 말하였다.

“우리 백성들은 왕을 배반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왕자를 배반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왕 주위에 있는 모든 못된 신하들을 배반한 것입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공양물을 갖추어서 공경하고 주위를 에워싸서 성안으로 들어왔다.

그 때 아서가왕이 큰 병이 나서 입 안에서는 분뇨 냄새가 나고, 몸의 모든 털구멍에서는 분뇨 액체가 흘러나왔다. 능히 치료할 사람이 아무도 없자, 왕은 대신(大臣)들에게 명하였다.

“속히 구나라를 불러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라. 나는 오래지 않아 죽을 것이다. 너무나 많은 악을 지은 탓이다.”

왕의 첫 번째 부인인 제실라차(帝失羅叉)가 이 말을 듣고는 스스로 생각하였다.

‘만약 구나라가 왕이 된다면 내가 살아남을 도리가 없다.’

즉시 방편을 생각해 내고 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청하옵건대 의사를 오지 못하게 하소서. 제가 능히 왕을 치료하겠습니다.”

왕은 그 말을 받아들여 의사를 오지 못하게 하였다. 제실라차는 모든 남자와 여자 가운데 왕과 같은 심한 병을 앓고 있는 자가 있으면 삼가 이를 치료하지 말고 모두 데리고 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 때 어떤 남자가 이와 같은 병에 걸렸는데, 그 부인이 의사에게 와서 말하였다.

“저의 남편이 이와 같은 병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대답하였다.

“속히 가서 데리고 오시오. 당신을 위해 치료해 드리겠소.”

이윽고 의사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왔다. 의사는 다시 제실라차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제실라차가 이를 보자 곧바로 죽이고는 배를 갈라 그 속을 살펴보았다. 그 뱃속에 큰 벌레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보았다. 벌레가 위로 가면 분뇨도 따라서 가고 벌레가 아래로 가면 분뇨 역시 따라서 갔다. 벌레에게 말초(末椒)를 주었으나 또한 죽지 않았고, 갖가지 매운 물건들을 주었으나 죽지 않았다. 이윽고 파를 주었더니 벌레가 즉시 죽었으며 따라서 분뇨의 길도 없어졌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왕에게 파를 먹을 것을 권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나는 찰리(刹利)의 신분인데 어찌 파를 먹을 수 있단 말이오?”

제실라차가 거듭 왕에게 아뢰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므로 반드시 이를 복용하셔야 합니다.”

이에 파를 먹었더니 벌레가 즉시 죽었으며, 따라서 분뇨가 나오던 길이 없어지게 되었다.

왕은 병에 차도가 있자, 제실라차에게 말하였다.

“너는 어떠한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7일 동안만 왕이 되게 허락해 주십시오.”

왕은 즉시 사자(使者)를 불러 7일 동안 왕이 되도록 하였다. 제실라차는 청이 들어지자 스스로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에야말로 구나라에 대한 원한을 갚을 때이다.’

급히 소환하는 문서를 만들어 득차시라국(得叉尸羅國) 사람에게 전하였다.

“구나라의 눈을 빼라. 왜냐하면 구나라는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급하게 눈알을 빼내야 하기 때문이다.”

아서가왕은 지극히 엄격하고 준엄한 인물이었다. 거듭 헤아리고 심사숙고하였다. 왕제(王制)를 범하여 봉서(封書)할 때에도 왕의 치아로써 문서에 봉인(封印)하도록 하였다.

제실라차가 왕이 잠들기를 기다려 이 문서에 봉인하고자 하였다. 왕은 놀람과 두려움 때문에 잠에서 깨었다.

제실라차가 왕에게 물었다.

“무슨 일 때문에 깨셨습니까?” “악몽을 꾸었소. 독수리 두 마리가 내 아들 구나라의 눈을 뽑으려고 하였소.”

이 말을 마치고 다시 잠에 들었으나, 두 번째도 역시 잠자다가 중간에 깨어서는 부인에게 말하였다.

“내가 다시 악몽을 꾸었소.”

부인이 물었다.

“어떠한 꿈이었습니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꿈에 보니 구나라는 머리카락이 매우 긴 채로 땅에 앉아 있었소.”

부인이 말하였다.

“모든 것이 좋을 것이니 편안히 주무십시오. 누가 왕자를 해칠 수 있겠습니까?”

왕이 다시 잠에 들자, 부인은 왕의 치아로 문서에 봉인을 하고 사자(使者)를 보내 득차시라국 사람들에게 구나라의 눈을 뽑으라고 명하였다.

왕은 다시 꿈에서 치아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왕은 아침 일찍 일어나 관상을 보는 스승을 불러 이 꿈에 대해 점치도록 하였다. 관상을 보는 스승이 점을 치고 말하였다.

“이와 같은 꿈은 반드시 왕자께서 눈을 잃어버릴 상황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열 손가락과 손바닥을 합쳐 사방의 불도(佛道)를 보호하는 신(神)과, 법을 믿고 스님을 믿는 자들에게 귀의하면서 자식을 살려달라고 빌었다.

문서는 이미 득차시라성에 도착하였다. 성안의 사람들은 법과 스님들을 좋아하고 공경하며 어짊이 돈독하여 이 문서를 보이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는 함께 의논하여 말하였다.

“왕은 일찍이 그 아들에게 은혜롭지 않은데, 어찌 우리 백성들을 능히 애석하게 여기겠는가? 구나라는 일체의 모든 중생들에게 항시 자비와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두루 구제하시고, 모든 근(根)이 조화롭고 수순(隨順)하여 교만함이 없었다. 이와 같은 아들을 살해하고자 하는데 하물며 우리와 같은 무리들이겠는가?”

그래서 이 문서를 오랫동안 감추었다가 구나라에게 주었다. 구나라가 그 문서를 보고는 그 말을 믿어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사람들의 뜻을 따라 내 눈을 빼겠다.”

이 때 그 눈을 빼고자 하는 자가 없었다. 다시 진타라(眞陀羅)를 불러 눈을 빼도록 명령하였으나, 진타라는 명을 따르지 않고 말하였다.

“차라리 나의 눈을 파괴할망정 어찌 이와 같은 눈을 파괴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한 개의 보배상자를 구해 10만 냥의 금을 넣고는 진타라에게 주면서 자신의 눈을 뽑도록 하였다. 마찬가지로 명을 듣지 않았다.

업(業)의 과보(果報)가 마땅히 때에 이르러 자연히 얼굴에 열여덟 가지 추함이 있는 사람이 와서 눈을 뽑으려고 하였다.

구나라가 이를 보고 다시 상좌(上座)인 야사(夜奢)가 설한 무상의 설법을 생각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보는 것으로 말미암아 나는 반드시 이 눈이 파괴되는 업보(業報)를 받게 되는구나.’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진실로 이는 나의 선지식(善知識)이구나.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까닭에 이 같은 교칙을 내려 나의 마음이 과보를 받아야 할 때 두려움이 생기지 않도록 하신 것이다. 옛날에 상좌가 또 나에게 가르쳐 말씀하시기를, 무상한 것에 세 가지가 있어 위험한 것은 환상과 같다고 하셨다. 내가 오랫동안 눈이 파괴되는 모습을 알았으나 마땅히 견고한 법을 취해야겠다.”

곧 추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빨리 눈알 하나를 뽑아 내 손에 놓아라.”

이 때 그 추한 사람은 곧 구나라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눈을 뽑아 그 손에 놓았다. 일체의 백성들이 큰소리로 꾸짖으며 모두 이렇게 말하였다.

“괴이한 일이로다. 괴로운 일이로다. 밝고 깨끗한 눈이 자연히 붕괴되어 떨어지는구나. 지극히 미묘한 연꽃이 꺾여 훼손되어 사라져 가는구나.”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괴로움 때문에 스스로를 진정할 수 없었다.

이 때 구나라는 손 가운데 놓여 있는 눈알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눈이여, 너는 지금 어떠한 연유로 색(色)을 보지 못하는가? 본래 너는 아름다웠으나 지금은 단지 이처럼 평범하고 비루한 거친 고깃덩이인데, 사람들을 미치거나 미혹하거나 어리석게 하였구나. 그 가운데 나와 연결되기도 하여 좋아하고 중하게도 여겼지만 진실로 이것은 많은 인연이 모여 거짓으로 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모두 진실함이 없어 눈은 물 위의 거품과 같다. 게으르지 않은 자는 능히 이와 같이 관찰하여 생사(生死)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자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고 이미 진리를 증득하였다. 그리고는 추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다시 눈알 하나를 뽑아라.”

이에 그 말을 따라 눈을 뽑아서는 손 가운데 놓았다. 이 때 구나라는 그 눈을 거듭 관함으로써 사다함(斯陀含)의 도를 얻을 수 있었다. 육체의 눈을 버린 까닭에 법안(法眼)의 깨끗함을 얻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의 육체의 눈을 뽑고 지혜의 눈을 얻을 수 있었다. 생사(生死)의 아버지를 버려 법의 왕자가 될 수 있었다. 비록 부귀와 재물은 잃었으나 법재(法財)를 얻어 걱정과 괴로움을 영원히 여의었다.”

뒤에 구나라는 이 문서가 제실라차(帝失羅叉)가 꾸며서 한 짓이지 실제로 왕이 명령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이에 서원하여 말하였다.

“대부인이신 제실라차께서 오래 사시고 안락하시어 모든 근심이 없기를 원하노니, 왜냐하면 그가 나를 파괴하려는 방편이 인연이 되어 법의 기쁨을 얻었기 때문이다.”

구나라의 부인 진금만(眞金鬘)은 남편의 양쪽 눈이 뽑혔다는 사실을 듣고 곧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서 눈이 빠져 피가 신체에 흐르는 것을 보았다.

괴로움이 심하여 목이 메고 걱정이 심해 기절하여 땅에 쓰러졌다. 물을 얼굴에 뿌리자 정신이 돌아왔다. 일어나서 목 놓아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미묘하고 아름다운 맑고 깨끗한 눈이 어찌 이와 같이 훼손되었습니까?”

구나라가 게송으로 답하였다.

내 스스로 이 악업(惡業)을 지어
오늘날 이를 받는 것이네.

일체 세계의 괴로움과
은혜와 사랑은 만났다가 헤어져야 하는 것
당신은 마땅히 고뇌를 멀리 해야지
어찌 목 놓아 울기만 하는가.

성안의 사람들은 구나라 부부 두 사람을 묶어 밖으로 나가도록 하였다. 그들 부부는 태어난 이래 즐거움이 있는 곳에만 있었기에 일을 해야 하는 괴로운 일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거문고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러 구걸로써 생활할 수 있었다.

차츰차츰 걸어서 화씨성(花氏城)을 향하여 왕궁의 문에 이르자 궁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문을 지키는 사람이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구나라는 곧 성문 옆의 코끼리 마구간에서 머물렀다가 새벽이 되자 거문고를 연주하였다. 그 거문고 연주 속에는 눈알을 잃은 괴로움과 도(道)를 얻은 인연 등이 실려 있었기에 문을 지키는 사람이 이를 듣고는 스스로 생사(生死)의 괴로움을 멀리 여읠 수 있게 되었다.

왕이 거문고와 노래 소리를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 거문고 소리는 구나라가 연주하는 소리와 흡사하구나. 그 소리 가운데 괴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다. 또한 스스로 훌륭하게 된 연유의 소리도 있다. 내가 이 소리를 듣고 굳센 마음이 사라지니, 마치 코끼리가 자식을 잃은 것과 같구나.”

그리고는 사람을 보내 살펴보도록 하였다. 구나라를 보았으나 눈이 없이 검게 말라서 알아보지 못하고 돌아와서는 왕에게 아뢰었다.

“걸인 한 명이 있었는데, 눈은 멀고 검게 말랐으며 부인이 옆에 있었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내가 본래 꿈에서 구나라가 두 눈을 잃은 것을 보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내 아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잠시라도 지체할 일이 아니다. 마땅히 빨리 불러와야겠다.’

곧 사람을 보내 다시 코끼리 마구간을 가보도록 하였다. 맹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누구의 아들입니까?”

맹인이 대답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저 아서가왕으로서 염부제(閻浮提)를 주관하시어 일체 모든 사람이 자재(自在)함을 얻도록 하신 분입니다. 저는 그분의 아들로서 이름은 구나라입니다. 또한 다른 아버지가 계시는데 대법왕(大法王)이라 하고, 불타(佛陀)라 부르기도 합니다.”

사자(使者)는 곧 맹인 부부를 데리고 왕이 있는 곳으로 왔다. 왕이 구나라를 보니 눈은 멀고 검게 말랐으며 옷은 낡고 헤져서 도무지 생기발랄한 어린 시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구나라에게 물었다.

“네가 구나라인가?”

구나라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기절하여 땅에 쓰러졌다. 물을 뿌려 다시 정신이 돌아오자, 구나라를 안아서 무릎 위에 앉히고는 손으로 눈을 문지르며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너의 눈은 본래 구나라와 비슷하므로 이름으로 삼았었다. 지금 그것이 모두 있지 않으니, 무엇으로 이름을 삼아야 하는가? 지금 알려다오. 누가 너의 눈을 뽑았느냐? 비유하자면 허공에 달이 없고 별이 없는 것과 같으니, 누가 자비의 마음 없이 너의 눈을 망쳐 놓았느냐? 누가 너의 눈을 그렇게 하여 일생 동안 괴롭게 하였느냐?
아들 구나라야, 누가 너의 눈을 이 지경이 되도록 명령하였느냐? 빨리 나에게 말해다오. 지금 너의 몸을 보니 형골이 초췌한 것이 나의 심신(心身)을 태워 모두 파괴하여 멸(滅)하니, 마치 금강(金剛)으로 된 우박에 맞은 듯 하구나.”

구나라가 말하였다.

“원하옵건대,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아버지께서는 듣지 않으셨습니까? 부처님께서도 역시 과보를 받으시고, 연각(緣覺)·성문(聲聞) 및 모든 범부(凡夫)들도 과보로부터 벗어나는 자가 없습니다. 마땅히 선악의 업보(業報)를 받는 자들은 마침내 패망하지 않습니다. 저도 스스로 지은 업보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칼의 피해도 아니고 금강도 아닙니다. 그리고 불도 아니고 독약도 아니고 원망도 아니고 나쁜 뱀도 아닙니다. 예전부터 나의 몸을 핍박해 온 괴로움이 아닙니다. 먼저 이 업(業)을 지었기 때문에 지금 그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심히 마땅한 것이 아닙니다. 일체의 몸은 모두 과녁과 같아 많은 화살이 여기에 꽂히게 됩니다. 이 몸도 역시 그러하여 많은 괴로움이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아서가왕은 비록 이 말을 들었으나 근심의 불길이 타올라 그 마음을 태우듯 하였다. 다시 아들에게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잔인하게 너의 눈을 뽑았느냐?”

구나라가 대답하였다.

“아버님의 명령으로 뽑혔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내가 만약 사람에게 명령하여 너의 눈을 뽑게 하였다면 마땅히 내 스스로 혀를 깨물리라.”

구나라가 말하였다.

“아버지의 치아로 찍힌 봉인(封印)이 있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만약 치인(齒印)을 주었다면 마땅히 나의 치아를 뽑아버리겠다. 만약 눈으로 그것을 본다면 스스로 눈을 뽑겠다.”

제실라차가 연화(蓮花) 부인을 불러서 말하였다.

“지금 내 눈을 뽑으십시오. 마땅히 내 아들과 걸식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제실라차가 내 아들의 눈을 뽑았구나.’

즉시 제실라차를 불러 꾸짖었다.

“상서롭지 못한 사악한 존재야, 어느 곳에 너 같은 사람이 있겠느냐? 스스로 없어지지도 않고 법의 인물을 파괴하는 너는 진실로 나의 원수이다. 거짓으로 속여서 어버이와 자식 사이를 벌어지도록 하는구나.”

왕이 점점 괴로움과 분노의 불길이 치솟자, 제실라차를 자세히 쳐다보며 다시 말하였다.

“너는 내 아들의 눈을 파괴하였다. 지금 마땅히 너의 신체를 손톱으로 할퀴고 나뭇가지로 꿰뚫어 높은 나무 위에 걸어두고, 톱으로 너의 형체를 토막토막 썰고 칼로 너의 혀를 자르리라. 크고 무딘 도끼를 잡고 너의 골수를 쪼개리라. 너의 신체 조각을 추려서 불아궁이에 던지고 매우 나쁜 독을 너의 입에 뿌리고, 갖가지 욕을 하리라.”

구나라는 이를 듣고 다시 자비심이 생겨 왕에게 아뢰었다.

“제실라차는 악법을 수행하여 이와 같이 되었습니다. 왕께서는 지금 마땅히 성스러운 법을 닦으시어 그 같은 여인을 살해하시지 않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리석음이 적어 마땅히 분노를 내지 않습니다.”

왕은 오히려 듣지 않고 아교로 만든 집에 넣어 불태워 죽였다. 또한 득차시 라(得叉尸羅)성의 사람들도 태워 죽였다.

많은 비구들이 이 일을 보고 마음에 의심이 생겼다. 그래서 존자인 우바국다에게 물었다.

“구나라는 어떠한 인연 때문에 지금과 같이 눈이 뽑히는 과보를 받았습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잘 들어라. 마땅히 너희들을 위해 설하리라. 옛날에 바라나국(波羅那國)에 한 명의 사냥꾼이 있었다. 여름에는 사람들 사이에 머물다가 겨울이면 산에 들어가 사냥을 하였다. 설산으로 향하다가 하늘에서 우박과 비가 내리자, 5백 마리의 사슴과 함께 어느 굴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약 모두 죽이면 고기가 부패할 것이므로 눈을 뽑아 하루에 한 마리씩 먹어야겠다.’

그리고는 5백 마리의 사슴 눈을 뽑아버렸다. 이러한 업의 인연 때문에 지금 눈이 뽑히는 과보를 받는 것이다. 그 때의 사냥꾼이 지금의 구나라이다. 그 이후 5백 번의 몸을 받았지만 항상 눈이 뽑혔었느니라.”

또 물었다.

“다시 어떠한 인연으로 왕의 집안에 태어났습니까? 그리고 모습이 단정하고 진리의 가르침을 증득할 수 있었습니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옛날에 사람의 수명이 4만 년이었을 때 가라가손대(迦羅迦孫大)라는 이름의 부처님께서 계셨는데, 화신(化身)의 인연을 마치시고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셨다. 이 때 이름이 단엄(端嚴)이라는 왕이 있어 부처님을 위해 석탑(石塔)을 조성하고 7보로 장엄하였는데, 벽이 40리(里)나 되었다. 단엄왕이 죽자 뒤에 다시 왕이 있었으니, 이름이 불신(不信)이었다. 탑의 보물을 몰래 꺼내고 토목(土木)만을 남겨 두니, 많은 백성들이 이 보탑이 있는 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였다.

장자(長子)의 아들이 대중들에게 물었다.

‘어째서 눈물을 흘리십니까?’ ‘가라가손대부처님의 탑은 7보로 이루어졌었으나 지금은 사람이 파괴하여 없어졌습니다. 7보는 모두 가져가고 오직 토목(土木)만이 남아 있으므로 이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 때 장자의 아들이 돌아와 7보로 탑을 수리하여 예전처럼 장엄하게 하였고, 또 가라가손대부처님의 몸 크기와 같은 큰 불상을 조성하고는 ‘바른 원[正願]을 일으킨 인연으로 내가 미래에 이 부처님과 같이 뛰어난 해탈의 청정하고 미묘한 과보를 받을 수 있게 하소서’라고 기원하였다.

그 때 보탑(寶塔)을 조성한 까닭에 지금 존귀하고 부유한 집안에 태어난 것이며, 예전에 불상을 조성한 까닭에 지금 단정함을 얻은 것이며, 예전에 정원(正願)을 발원한 까닭에 지금 깨달음을 얻은 것이니라.”

05. 반암라과인연(半菴羅果因緣)

아서가왕이 불법(佛法) 가운데서 이미 믿음의 마음을 얻고 우바국다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누가 가장 많이 보시하였습니까?”

우바국다가 대답하였다.

“수달다(須達多)라는 장자가 가장 많이 보시하였습니다.”

왕이 물었다.

“얼마나 보시하였습니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순 황금으로 백억을 보시하였습니다.”

아서가왕이 말하였다.

“그 장자가 일찍이 진귀한 보배로써 보시하였는데, 하물며 나는 지금 염부제(閻浮提)의 왕으로서 어찌 보시하지 못하겠는가?”

이에 곧 자신과 구나라, 그리고 군신들로 하여금 모든 토지를 보시하도록 하여 8만 4천의 보탑(寶塔)과 성문(聲聞)의 탑을 세우고 보리수에 물을 뿌려 주었다. 그리고 지방과 도시에서 얻은 금이 96억 냥이나 되었다.

이 때 아서가왕이 병을 얻어 자기가 죽을 것을 알게 되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다.

나제국제(羅提麴提)는 아서가왕이 예전에 땅을 보시할 때 옆에 있으면서 함께 기뻐하였는데, 지금은 가장 높은 보상(輔相)이 되었다. 왕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는 합장하였다.

“대왕이시여, 왕의 위엄스런 덕(德)은 빛나는 태양에 비유할 수 있어 일체의 백성들이 감히 바로 볼 수 없습니다. 오직 8만 4천의 채녀(婇女)만이 왕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병이 나시어 장차 저물어 가는 해와 같습니다. 삼계(三界)는 변해 가서 반드시 닳아 없어짐이 있으므로 마땅히 무상(無常)함을 생각한다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왕이 대답하였다.

“나는 지금 왕위를 잃어버리는 까닭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몸과 생명을 잃어버리는 까닭에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도 아니다. 또 궁인들과 창고의 물건들을 버려야 되는 까닭에 근심하고 번민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모든 현성(賢聖)들과 멀리 헤어지게 되므로 이를 괴로워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본래 백억 냥의 금을 채워 보시하기를 바랐으나, 현재 96억을 보시하여 4억을 채우지 못하는 것을 괴로워하고 있다.”

나제국제가 말하였다.

“창고의 물건들은 매우 많습니다. 보시한다면 만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왕이 곧 금과 은, 그리고 진귀한 보배를 계두마사(雞頭摩寺)에 보시하였다. 왕은 구나라의 아들인 이마제(膩摩提)를 태자로 삼았다. 삿된 견해를 가진 나쁜 신하가 태자에게 말하였다.

“아서가왕의 목숨이 끝나가려 하는데 모든 창고의 물건들을 나누어 주어 모두 없애려 합니다. 당신은 마땅히 왕이 될 것인데 무릇 왕이란 창고에 있는 진귀한 보물로써 힘을 삼아야 합니다. 지금 마땅히 저지하여 비용을 탕진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에 이마제는 모든 신하들과 함께 왕의 질병을 이유로 모든 소유물을 끊고 주지 않았다. 오직 한 개의 금쟁반과 은쟁반만을 왕의 식사용으로 보내는 것이 허락되었는데, 왕은 이 쟁반을 얻자 곧 계두마사에 보시하였다. 이렇게 하여 흙 쟁반과 흙 그릇을 왕의 식사용으로 보내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마지막에는 왕에게 암라마륵과(菴羅摩勒果) 반 개를 주었다. 왕은 암라마륵과를 얻자 곧 모든 신하들을 모이게 하고는 물었다.

“이 염부제(閻浮提)에서 누가 주인인가?”

모든 신하들이 대답하였다.

“오직 왕이 그 주인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허망한 도(道)로 나를 주인이라 하는구나. 나는 그 주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오직 이 암마륵(菴摩勒) 반 개를 얻고 자재(自在)하기 때문이다.

오호라, 부귀란 심히 더럽고 천한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제왕(帝王)이었으나 임종 때에는 빈 그릇이구나. 오직 암라륵과 반 개만이 곁에 있도다. 마치 폭포와 같은 물이 산에 이르자 멈추는 것과 같구나.”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부처님의 말씀은 진실이니
설하신 것이 모두 그러하도다.

모든 은애(恩愛)를 말씀하시어
모두 괴로움을 여의었도다.

나는 예전에 부르심을 받고도
능히 단절하지 못하였지만
오늘 흐르는 물과 같다가
산에 이르자 멈추었도다.

지금 나는 이러한 가르침을
행하지 않음이 또한 이와 같지만
나는 옛날 대지(大地)에서
일체를 다스리는 주인이었다.

모든 왕들이 교만하였지만
나는 모두 제압하였고
가난하고 괴롭고 힘없는 자들을
나는 모두 구제하였다.

전에는 남을 덮을 만하였지만
지금은 힘이 다하여
비유하면 마차가 부서져
바로 세우지 못함과 같도다.

오히려 아서가(阿恕伽) 나무와 같이
뿌리는 메마르고 가지는 앙상하며
꽃과 열매와 가지의 잎은
모두 사라졌구나.

내가 소유할 수 없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

게송을 설하고 나서 곁의 신하를 불러 암마륵(菴摩勒)을 주면서 명령하였다.

“너는 이 암마륵과를 가지고 계두마사에 가서 대중 스님들께 보시하여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상좌(上座)에게 가서 ‘아서가왕이 최후로 보시하는 것입니다.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오직 이 반 개의 암마륵과에서만 자재(自在)할 수 있나니, 일체의 모든 소유는 잃어버렸습니다. 대중 스님들은 나의 빈곤한 최후의 보시를 받으시고 가엾게 여겨 나로 하여금 복을 얻도록 해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상좌인 야사(夜奢)는 대중 스님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모두 아서가왕이 복을 받고 천하를 모두 꿰뚫어 자재함을 즐거워하는 것을 보아라. 오늘 모든 신하들이 왕의 물건들을 끊어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고, 오직 이 반 개의 암마륵과(菴摩勒果)만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데, 은근하고 두터운 마음으로 스님들에게 보시한 것이니, 전사(典事)에게 명하여 가루로 만들어 국에 넣어서 모든 스님들로 하여금 두루 그 공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하라.”

그리고는 모든 비구(比丘)들에게 말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마땅히 생사(生死)에 깊은 싫음을 내고, 부귀와 쾌락은 오래지 않아 사라지며, 위엄스런 세력과 자재함도 오래지 않아 없어지느니라. 오호라, 생사가 심히 싫어할 만한 근심거리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후세의 모든 왕 가운데 부귀로써 자재함을 얻은 자는 아서가왕과 같지 않았다. 모든 군신들은 그를 금지하고 통제하였다. 마땅히 세력이 쇠퇴하거나 병이 없을 때 응당 마음을 다하여 모든 공덕을 지어야 한다.

아서가왕이 목숨이 다하려 할 때 나제국제에게 말하였다.

“오늘 이 염부제(閻浮提) 가운데 누가 자재(自在)함을 얻었는가?”

나제국제가 왕에게 대답하였다.

“세존께서 자재함을 얻으셨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즉시 일어나서 합장을 하고는 사방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직 창고의 물건들을 제외하고 지금 4해(海)의 모든 토지를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보시하겠다. 아울러 전후로 해서 지은 공덕으로 전륜성왕(轉輪聖王)과 범천(梵天)의 존귀한 자리, 그리고 인천(人天)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겠노라. 바로 내가 장차 태어나는 곳에서 마음에 자재함을 얻어 성스러운 과보를 빨리 이룰 수 있기를 서원하노라.”

이를 조서(調書)로 만들어 치인(齒印)으로 봉인(封印)해서 보상(輔相)인 나제국제에게 주었다. 그리고 기운이 다하여 바로 숨이 끊어졌다. 모든 신하들이 곧 전륜성왕의 격에 맞는 의례를 갖춰 갖가지 장엄을 공양하여 정중하게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이마류(膩摩留)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나제국제가 신하들을 불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아서가왕이 모든 토지를 많은 스님들에게 보시하셨다. 왜냐하면 수달(須達) 장자의 백억을 채운 보시를 배우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 계셨을 때에 오직 96억만을 보시하셨으므로 만약 이 염부제(閻浮提)를 4억으로하여 바친다면 먼저 왕께서 서원하신 바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군신들은 함께 논의하여 4억의 금을 대용하여 염부제를 바치도록 하시오.”

그런 뒤에 후사(後嗣)인 이마류(膩摩留)로 하여금 왕위를 잇도록 하였다.

이마류의 아들 이름은 기가제(耆呵提)이며, 기가제의 아들 이름은 불사마(弗舍摩)이고, 불사마의 아들 이름은 불사밀치(弗舍密哆)이다. 불사밀치는 모든 신하들과 함께 의논하여 말하였다.

“어떻게 이름을 세상에 유포시킬 수 있겠습니까?”

이 때 보상(輔相)이 대답하였다.

“왕의 선왕(先王)으로서 아서가왕(阿恕伽王)이 계셨습니다. 그는 염부제(閻浮提)에 8만 4천의 탑을 세웠으며 백억 냥의 금을 보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불법(佛法)에 따랐으므로 몇 세대가 지나더라도 세상에 머무는 것과 같이 이름이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 왕께서 능히 8만 4천의 탑을 세우신 것을 본받으신다면 그 이름이 또한 오래도록 세상에 유포될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옛날에 선왕의 위덕(威德)은 능히 그 일을 감당하실 만하였을 것이다. 내가 지금 어찌 이와 같은 업(業)을 지을 수 있겠는가? 그 나머지 방편으로써 가히 아서가왕과 같을 수 없느니라.”

이 때 나쁜 견해를 지닌 보상(輔相)이 말하였다.

“복을 닦고 악을 짓는 두 가지를 갖추어야만 이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선왕께서는 능히 8만 4천의 탑을 세우시어 이름의 덕(德)이 오래도록 유포되었습니다. 만약 왕께서 그가 한 일을 파괴하신다면 후세에까지 이름이 유포되실 것입니다.”

불사밀치(弗舍密哆)가 다시 사방의 병사를 모아서 계두마사(雞頭摩寺)로 가서는 절의 문을 파괴하고자 하였다. 이 때 절의 문에서 사자가 포효하는 소리가 들리니, 왕은 크게 놀라 두려워서 감히 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 왔다. 이와 같은 일을 세 번 반복하였으나 역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자 뒤에 사람을 시켜 모든 비구들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불법을 파괴하고자 한다. 너희 비구들은 부도(浮圖)에 머물고자 하는가, 승방(僧房)에 머물고자 하는가?”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불도(佛圖)에 머물고자 합니다.”

이에 불사밀치가 많은 스님들을 살해하고 승방을 허물어뜨렸다. 이와 같은 일이 계속적으로 사가라국(舍伽羅國)에 이르게 되고 다음과 같은 포고령을 내렸다.

‘사문(沙門)의 머리를 가져오는 자는 상으로 금전을 주겠다.’

이 때 그 절의 경계 안에 대부도(大浮圖)가 있고 그 가운데 아라한(阿羅漢)이 있어 변화로 수만이 사문 머리를 만들어 내고는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이를 왕에게 주도록 하였다. 왕은 이를 듣고 그 아라한을 살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라한이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 살해할 수 없었다.

왕은 포기하고 물러나 투라궐타국(偸羅厥吒國)으로 가서 불법(佛法)을 파괴하고자 하였다. 그 나라 가운데 불법을 보호하는 신(神)이 있었는데,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나는 부처님의 계율을 수지(受持)하였으므로 능히 악을 지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불법을 보호하고 지킬 수 있겠는가? 금밀사귀(禁密舍鬼)가 예전에 나의 딸을 원했으나 악을 함부로 짓는 까닭에 내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불법을 위해 마땅히 그에게 딸을 주어야겠다.’

이런 인연으로 투라궐타(偸羅厥吒)에는 큰 귀신이 있어 옹호하게 되어 불사밀치가 능히 파괴할 수 없었다.

이 때 보리(菩提)귀신이 왕을 지키는 귀신을 유혹하여 나아가게 하였는데, 남해(南海)에 이르자 금밀사귀가 큰 돌산[石山]을 들어서 왕과 많은 군사들을 눌러 살해하였다.

이곳을 심장마가제(深藏摩伽提)라 이름하고 왕의 종족은 이 때부터 단절되었다.

06. 우바국다인연(優波麴多因緣)①

부처님께서 마돌라국(妄羅國)에서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죽은 뒤 100년 후에 마돌라국에 국다(麴多) 장자의 아들로 이름은
우바국다라는 사람이 있어 그에게 선법(禪法)을 가르쳐 주어 제자들 가운데 뛰어나 제일이 될 것이다. 비록 상(相)이 없으나 제도하고 교화하기를 좋아하기가 나와 같다. 내가 열반한 이후에는 마땅히 큰 불사(佛事)를 지을 것이다. 그리고 그 교화하는 바가 아승기의 중생들이 모두 해탈하여 아라한(阿羅漢)을 얻게 할 것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4촌(寸)의 산가지를 잡고 동굴 속으로 던져 그 속을 가득 채우게 할 것이다. 이 동굴은 길이가 36척(尺)이고 너비가 24척이다.”

다시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푸른 나무숲이 보이는가?” “예, 보입니다.” “아난아, 이것이 우류만다(優留慢茶)산이다. 내가 죽은 후 100년 뒤에 이름이 상나화수(商那和修)라는 비구(比丘)가 있어 우류만다산에 마땅히 승방(僧房)을 지을 것이다. 그리고 우바국다를 제도할 것이다. 마돌라국에는 두 명의 장자가 있는데, 한 명의 이름은 나라(那羅)이고, 다른 사람의 이름은 발리(拔利)이다. 이들은 우류만다산에 반드시 승방을 세울 것이다. 거기는 한가롭고 청정하여 능히 선정(禪定)을 닦을 만하다. 그리고 방사(房舍)에는 와구(臥具)들이 모두 갖추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름이 나라발타(那羅拔吒) 아련야처(阿練若處)이다.”

아난(阿難)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우바국다가 교화하여 제도하는 것에 다소 이익됨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우바국다는 단지 오늘에 이르러 많이 교화하고 제도한 것이 아니라 오랜 옛날부터 무량겁(無量劫)에 이르도록 많은 이익이 있었다. 이를 듣고자 하는 자는 지극한 마음으로 들으라. 마땅히 너를 위해 설하리라.” “오랜 옛날 우류만다산에 5백 명의 벽지불(辟支佛)이 한곳에 머물고 있었고, 5백 명의 선인(仙人)들도 한곳에 머물고 있었으며, 또한 5백 마리의 큰 원숭이들이 한쪽에 머물렀다. 이 때 5백 마리의 큰 원숭이들이 머무는 곳에서 벽지불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리고는 기쁜 마음으로 꽃을 꺾고 과일을 주워서 벽지불에게 주었다.

이 때 벽지불은 결가부좌하고 선정(禪定)에 들었다. 큰 원숭이들은 합장하고 머리 아래에 있으면서 벽지불이 하는 결가부좌를 배웠다. 뒤에 벽지불들이 열반(涅槃)에 들었는데도 큰 원숭이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꽃과 과일을 주었으나 모두 가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러자 큰 원숭이들은 옷을 잡고 이리저리 밀쳐 보았다. 그래도 동요하지 않자 열반하였음을 알고 되돌아가서 괴로워하였다.

다시 산의 한쪽으로 가서 5백 명의 바라문(婆羅門)을 보았는데, 가시 위에 누워 있기도 하고 재[灰] 위에 누워 있기도 하였으며, 혹 발을 들고 있기도 하고, 손을 들고 있기도 하였으며, 스스로 손발을 묶고 거꾸로 매달리거나 다섯 가지 열[五熱]로 몸을 태우고 있었다.

가시 위에 누워 있던 큰 원숭이는 다시 그 가시를 거두어서는 멀리 버렸다. 재 위에 누워 있던 자도 역시 재를 거두어서는 멀리 버렸다. 한 손을 들고 있던 자는 손을 당겨 밑으로 내렸고 손발을 묶고 거꾸로 매달려 있던 자는 그 줄을 당겨서는 끊어버렸다. 한 다리를 들고 있던 자도 발을 당겨서는 곧게 폈고, 5열(熱)로 몸을 태우던 자도 그 불을 멀리 던져 버리고 괴이하게 된 것을 예전처럼 되돌리고 결가부좌하였다.

5백 명의 선인(仙人)들이 각각 이렇게 말하였다.

“큰 원숭이들은 우리들이 행할 것을 괴이하게 여기는데, 우리들도 큰 원숭이들이 행하는 바를 시험 삼아 배워보도록 하자.”

다시 결가부좌하고 사유하면서 생각을 집중하자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았다. 일곱 가지 깨닫는 법[七覺意法]이 자연스럽게 앞에 나타나게 되었다. 곧 벽지불(辟支佛)이 되고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우리들은 지금 벽지불이 되었다. 그 길[道]은 모두 큰 원숭이들의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는 꽃과 과일을 주면서 큰 원숭이들을 공양하였다. 큰 원숭이들의 수명이 다하자, 다시 향나무를 태워 공양하였다.

아난아, 그 때 큰 원숭이가 지금의 우바국다(優波麴多)이니라. 그는 옛날에 큰 원숭이가 되어서도 능히 이익되게 하였으니, 5백 명의 선인(仙人)으로하여금 도(道)를 증득하게 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난(阿難)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옷을 잡아 보아라.”

옷을 잡자마자 곧 서로 따르며 계빈국(罽賓國)에 이르게 되었다. 계빈국에 도착하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땅은 평평하고 정리되어 매우 크고 넓으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죽은 뒤 1백 년 후에 마전지(摩田地)라는 비구가 있어 마땅히 계빈국에 불법을 펼칠 것이다. 이 계빈국은 방사(房舍)와 와구(臥具)들이 많아 좌선하는 데 제일이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점점 구시나성(拘尸那城)으로 향하셨다. 부처님께서 반열반(般涅槃)에 들고자 마하가섭(摩訶迦葉)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입멸(入滅)한 후에 마땅히 법안(法眼)을 편찬하여 천 년 동안 세상에 존속하여 중생을 이익 되게 하라.”

가섭이 대답하였다.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 따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세속의 마음으로 들어가 이와 같이 생각하여 말하였다.

‘석제환인(釋提桓因)은 마땅히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

석제환인은 부처님의 마음을 알고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왔다. 부처님께서 석제환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입멸한 후에 마땅히 선법(善法)을 옹호하라.”

석제환인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법을 받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또한 세속의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사천왕(四天王)들은 마땅히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

이 때 사천왕들이 부처님의 마음을 알고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왔다. 부처님께서 사천왕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열반한 후에 마땅히 선법을 옹호하라.” “그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성스러운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마하가섭·석제환인·사천왕들에게 부촉하시고는 다시 구시나성(拘尸那城) 사라(娑羅) 숲 가운데 쌍수(雙樹)사이에 머물렀다. 열반할 때가 되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사라 숲 가운데 북쪽으로 나를 놓아 두어라. 오늘밤 안으로 열반(涅槃)에 들 것이다.”

그리고는 게송을 설하셨다.

모든 존재[有]는 돌고 도는 것
태어나고 늙는 것이 물결과 같도다.

죽음의 바다를 건너고
몸 버리기를 침 뱉는 듯하네.

무외(無畏)의 열반에 이르고
죽음의 마(魔)가 크게 두려워하네.

3유(有) 바다가 깊고 넓어도
해탈한 스승은 능히 건넌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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