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이 곧 바라밀이다
“세존이시여,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은 올바른 가르침 그 자체와 다르지 않으며, 올바른 가르침 그 자체도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올바른 가르침이 곧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은 바라밀과 다르지 않으며, 바라밀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이 곧 바라밀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인 선남자와 선여인은 마땅히 보시로써 성숙시킬 중생에 대해서는 보시로써 성숙케 하는 것이니, 몸의 일부를 버려서라도 그들의 보리심을 보호하면서 성숙케 합니다. 그렇게 성숙된 중생이 올바른 가르침에 안주하는 것을 보시[檀] 바라밀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계율로써 성숙시킬 중생에 대해서는 여섯 가지 감각 기관[六根]을 수호하며 몸, 말, 뜻으로 짓는 업을 깨끗이 하는 것이니, 네 가지 위의(威儀)를 올바르게 하여 그들의 보리심을 보호하면서 성숙케 합니다. 그렇게 성숙된 중생이 올바른 가르침에 안주하는 것을 지계[尸] 바라밀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인욕으로서 성숙시킬 중생은, 만약 저 중생들이 비난, 욕설, 비방, 공포를 퍼붓는다 하더라도 화내지 않는 마음, 이익케 하려는 마음, 가장 뛰어난 인욕으로써 대하는 것이니, 얼굴빛을 바꾸지 않고 그들의 보리심을 보호하면서 성숙케 합니다. 그렇게 성숙된 중생이 올바른 가르침에 안주하는 것을 인욕 바라밀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정진으로써 성숙시킬 중생에 대해서는, 그 중생들에게 게을러지려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큰 욕심을 내며 가장 훌륭하게 정진하는 것이니, 네 가지 위의 가운데서도 그들의 보리심을 보호하며 성숙시킵니다. 그렇게 성숙된 중생이 올바른 가르침에 안주하는 것을 정진[毘梨耶] 바라밀이라 이름합니다. 마땅히 선정으로서 성숙시킬 중생에 대해서는, 그 중생들에게 어지럽지 않은 마음, 밖으로 향하지 않는 마음, 가장 훌륭한 정념(正念)으로써 하여 오래 전에 행한 바와 오래 전에 설한 바를 마침내 잊지 않으며 그들의 보리심을 보호하면서 성숙시킵니다. 그렇게 성숙된 중생이 올바른 가르침에 안주하는 것을 선정 바라밀이라 이름합니다. 마땅히 지혜로써 성숙시킬 중생에 대해서는, 그러한 모든 중생들이 일체의 뜻을 물어 온다면,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써 모든 논서, 모든 학문[工巧], 구경의 지혜, 갖가지 교묘한 일로써 연설하면서 그들의 보리심을 보호하여 성숙시킵니다.
그렇게 성숙된 중생이 올바른 가르침에 안주하는 것을 반야 바라밀이라 이름합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이 바라밀과 다르지 않으며 바라밀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이 곧 바라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