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법장진언>에서 <법장>은 법의 창고, 즉 법을 담고 있는
주체를 가리킵니다. <법장>은 법을 갈무리하고 있는 창고이니
결국 경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개법장진언>은
일차적으로 경전을 펼치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나 본래의 의미는 사물 하나하나가 진리의 나타남이기 때문에
그 사물, 사건에 부딧히는 작용이 바로 법장을 여는 일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는 일도 법장을 여는 일이며,
참선에 들어가는 것도 법장을 여는 일입니다.
옛 조사 스님께서 남기신 글 가운데 ‘아유일권경(我有一卷經)
불인지묵성(不因紙墨成) 전개무일자(展開無一字) 상방대광명
(常放大光明)’ 이랑 구절이 있습니다.
그 뜻은 ‘나에게 한 권의 경이 있으니 종이나 먹으로 된 것이
아니네. 펼쳐 보아도 글자 한 자 없지만 늘 큰 광명 비추고 있네’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경정을 대할 때도 이와같이 큰 광명을
비추는 마음으로 펼쳐야 합니다.
부처님의 법이 담긴 경전을 펼치는데 있어서 그냥 아무렇게나
할 수 없습니다. 매우 무게있는 말 한 마디로 시작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진언입니다.
『옴 아라남 아라다』 (3번)
<옴 아라남 아라다>에서 <옴>자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진언의 첫 머리에 나오는 정형구로서, 여기서는 뒤에 이어지는
<아라남 아라다>를 종결 지어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라남>은 ‘무쟁삼매(無諍三昧)’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무쟁삼매란 마음이 편안하여 아무 갈등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경전을 펼치거나 법회를 할 때 마음에 온갖 번뇌와 잡념이 가득하면
그것은 유쟁삼매입니다. 다시 말해서 번뇌가 없는 마음, 갈등이 없는
하나로 통일된 마음이 무쟁삼매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비로소
경전을 펼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라다>는 ‘만족’이란 뜻입니다.
<옴 아라남 아라다>의 뜻을 새겨 보면, ‘번뇌가 없는 편안한 마음으로
법열 속에서 만족한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전신을 던져서 철저히 행할 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하고자 하는 것과 자기 자신이 만족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을 하든지 그 일에 자신의 전부를
던지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바쳐 열중하는 사람은 결코 패배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전신을 투여하여 <옴 아라남 아라다>를 했을때
그 속에 행복이 있고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무쟁삼매에서 만족하며 철저히,
추호의 빈틈도 없이 몰두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보람있게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경전을 펼치기 전에 아무런 갈등없이, 다른 잡념이 사라진 연 후에야
비로소 경전에 담긴 법을 철저하게 공부할 수 있는 자세가 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경전을 펼쳤을 때 경전과 자기 자신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정구업진언>에서부터 <옴 아라남 아라다>까지는 어떤 경전을 읽든지
공통적으로 읽어야 하는 서문에 해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