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부를 가진 사람인가, 혹은 권세가 있는 사람인가.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가진 게 많다 해도 지킬 것이 많으면 근심 걱정이 많은 게 인간사이다. 권력 또한 한갓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이란 어디 있는 것일까.
야운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삼도의 고통 위에는 탐욕이 첫째가 되고
육도의 문 가운데는 보시를 행하는 것이 머리가 되느니라.
아끼고 탐하면 착한 길을 막게 되고
자비를 베풀면 악한 길을 막으리라.
만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비록 곤란 궁핍한 처지에 있더라도 아끼지 말라.
올 때도 한 물이 없이 왔고, 갈 때 또한 빈손으로 가리니
자기 재물에 그리는 뜻이 없어야 하거늘,
하물며 남의 물건에 어찌 마음을 둘 수 있으리.
만 가지를 가져도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고 오직 업만 따를 뿐이니
삼 일 닦은 마음은 천 년의 보배가 되고
백년 동안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로다.
<자경문>의 이 말씀처럼, 만 가지 재물이 있다 해도 갈 때는 빈손으로 떠나는 것이 인생사이다.
아무리 재물을 탐하고 소유한들 고작 백 년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거늘 아귀다툼을 한들 무엇하겠느냐는 이 말씀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진정한 행복론이 아닐까 싶다.
야운 스님의 말씀처럼 가난한 이에게 아끼지 않고 베푸는 마음. 남에게 작은 선행을 하는 마음들, 이 마음이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남을 돕는다는 일이 말은 쉽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기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지금은 형편이 어려워서요…. 그렇지만 조금 더 잘살게 되면 그때 저도 남을 돕겠습니다.”
“좀더 나이가 들고 여유가 생긴 다음에 열심히 자선사업을 하고 싶은 게 제 꿈입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비록 넉넉하거나 여유가 없어도 남을 돕고자 하는 갸륵한 마음들이 있다. 천 년의 보배가 되는 복을 스스로 지어가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부산 사직동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는 곰탕집 하나 있다. 그저 여느집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음식점이라 늘 근처를 지나다니면서도 무심코 지나쳤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곳에 들러 식사하는 도중 메뉴판 옆에 작은 광고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매월 25일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60세 이상 노인 분들께 무료로 식사대접을 해드립니다.’
마침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지나가 길래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주인장, 저기 쓰여 있는 대로 매달 한 번씩 노인들께 점심 공양을 하시는지요?”
“예, 저희는 그저 노인 분들께 점심 식사 한 번 대접하는 것뿐인 데요. 그런데 혹시…. 삼중스님이 아니십니까?”
나를 알아본 여자 분은 주인의 여동생이라고 했는데, 별로 대단한 일이 못 된다며 겸손해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들, 참 좋은 일을 하고 계시는 군요!”
나는 감탄하면서 진심으로 그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스님, 저도 실은 불교신자인데…. 요즘 식당일이 바빠서 자주 절에 가지 못하고 있어 죄송한 마음입니다. 기왕 이렇게 저희 집에 오셨으니 법문 좀 들려 주시겠습니까?”
그녀는 오히려 내게 미안해 하면서 공손한 말씨로 청했다.
“내 법문 몇 마디 들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절에 가서 부처님 앞에 백 번 절을 하는 것보다도 이처럼 노인들에게 따뜻한 점심 한 끼 대접하는 것을 부처님은 천 배, 만 배 더 좋아하실 겁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야말로 분명히 저보다 더 크고 훌륭한 법문을 하고 계시니 오히려 제가 법문을 들어야 할 입장이지요.”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데, 스님이 이토록 칭찬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칭찬을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입으로만 칭찬을 하는 나 자신이 왠지 부끄러웠다. 남을 칭찬했으면 나도 무슨 일인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25일 노인들 대접하는 그날, 나도 와서 거들어 드리리다.”라고 말했다. 대단하게 큰일이야 못하겠지만 이 곳을 찾아오신 노인 분들에게 단돈 1만 원씩이라도 용돈을 드리고 싶었다. 대략 2백 명이 오신다고 하니 2백만 원 정도는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하루하루 바쁘게 사는 입장이다 보니 25일에 시간을 낼 수 있을 지 우선 걱정이 앞섰다. 수첩을 보니 그 날은 모처에서 강연하기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기왕 마음먹은 일, 이렇게 된 이상 그 쪽에 사정을 하고 약속을 미루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부산 동부지청 사무국장도 2.5톤 분량의 옷가지 등 물품을 흔쾌히 기증하기로 약속해 주셨다. 그 역시 내가 하는 일을 잘 이해하고 돕는 자비로운 사람이다. 이렇게 해서 일은 더욱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25일 당일, 곰탕집은 맥고모자를 쓰신 할아버지와 모시적삼을 입고 온 할머니들로 가득 찼다. 연세가 많아서 걷기에도 불편한 어려운 노인들이 찾아와 곰탕 한 그릇 대접에 그렇게도 좋아라 맛나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 흐믓한 마음이었다.
나는 식사를 마치신 노인 분들께 준비한 용돈과 물품을 나누어 드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어렵게 여기 오신 대부분의 어르신들께서는 나이가 들어 경제적으로 힘들고 또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눈물나게 어렵고 또 자식마저 외면해서 외롭고 가난하게 사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어쩌면 다른 누구보다 더 열심히 양심적으로 착하게 사셨던 증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남을 속이지 않고 선하게 사셨기에 지금 어렵게 사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이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생에는 반드시 이생에서 지은 바대로 좋은 복을 받게 되실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고생하며 열심히 사신 여러분들의 다음 생은 반드시 밝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러자 않아 계시는 노인 분들이 함박웃음을 가득 피우고 박수를 보냈다. 모처럼 즐거워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니 나도 기뻤다. 모 신문에서도 기자분이 한 분 나와 그의 선행을 취재해 갔다.
내가 만났던 여자분의 오빠인 이곳 곰탕집 젊은 사장 신종일 씨는 어린 시절 꽤 고생한 사람이었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니, 대학을 중퇴하고 어렵사리 정육점에서 일하며 시간과 돈을 아끼느라 점심을 굶거나, 라면, 어묵으로 때우며 돈을 모아 마련한 것이 이 ‘궁중사리 곰탕집’이라고 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노인들에게 이렇듯 점심 한 끼라도 베푸는 그 마음이 실로 아름답게 생각됐다.
그날 그도 기뻤던지 내 앞에 앉더니, “스님, 저도 워낙 고생하면서 살아 남들을 잘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 여유가 생기고 보니 저도 이젠 마음을 활짝 열고서 남들에게 좋은 일을 더 많이 해야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좋은 일은 하겠다는 그의 마음이 퍽 대견하게 생각되긴 했지만 그 말을 듣자 솔직히 말해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나 역시 평생 남들을 위한 일을 해 온 터이지만 세상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같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얻기 위해 가끔 매스컴의 힘을 빌리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더러 남들의 비웃음과 오해를 받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또 간혹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이 잇는데, 이런 일에 묶여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조언을 해주었다.
“당신이 제대로 남을 도우려 한다면 마음을 반쯤 만 여십시오. 그래야만 당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뜻대로 할 수 있고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모두들 당신에게 도움을 얻고자 손을 내민다면 당신은 그나마 일궈 놓은 이 식당 하나도 제대로 지켜갈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평생 남을 도우며 살기 원한다면 마음의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할 것입니다.”
내 말이 어찌 들릴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나의 체험에서 나온 진심어린 충고였다. 그도 내 말을 마음 깊이 수긍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이 넉넉하다고 할 수 없는 처지임에도 노인들께 따뜻한 점심 한 끼라도 대접하고 싶어하는 그의 얼굴은 환하고 아름다웠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가 이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됐다.
얼마 전 나는 고등학생인 소녀 가장 정은이를 그에게 소개해 주었다. 나는 곰탕집 사장의 따뜻한 마음과 정성이 정은이가 튼실한 열매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갈수록 인심이 흉흉하고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타인에게 마음과 물질을 베푸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작은 마음들이 모여 사람과 사람의 틈새를 메우고 우리 사회가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하는 튼실한 기둥을 이루는 것이리라.
이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찬 사바세계라 하지만 내겐 지옥과 극락이 따로 없다. 이처럼 스스로 복을 지어가는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 이곳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살맛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三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