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 책을 보내자

“스님, 세상에는 좋은 일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그런 일을 하시는 겁니까?”라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일이란 내가 30년 가까이 교도소에 드나들면서 재소자를 교화하고 돕는 일을 해온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런 일만 아니라면 저도 충분히 스님을 돕겠는데….”라고 넌지시 나무라며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언젠가 택시를 탔는데, 그 기사분 역시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했다.

“삼중 스님, 물론 좋은 의도로 하신 일이시겠지만요, 제 생각에 그 일은 아무래도 잘못 하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잘못했다는 겁니까?”

“있잖습니까? 그 사형수를 살려 주신 것 말입니다. 그 사람, 교도소 안에서도 소문이 난 퍽 질이 나쁜 인간이라구요.”

“그걸 어찌 그리 소상히 아십니까?”

“실은 저도 폭력 전과로 들어갔었는데, 감방 안에서 우연히 그 사람과 함께 있었지요. 스님께서 살려주신 그 사람, 다른 재소자들을 어찌나 괴롭히던지…. 저도 비록 죄를 진 몸 이긴 해도 그런 악질 인간은 살려 주지 마셨어야지요!”

이쯤 되면 할 말이 없다. 나로선 최선을 다해서 구명운동을 해 살려 놓았건만 참회의 모습은 당시 잠깐뿐이다. 사회에 나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다시금 죄를 짓고 다니는 이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한편으론 씁쓸해지기도 한다.

남들은 내가 하는 일을 분명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칭찬은 커녕 이해할 수 없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더러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평생 해온 재소자 교화 일을 후회해 본 적은 아직 단 한 번도 없다.

그런 말을 듣게 될 때 내 마음이 서운하다거나 이제 그만두어야지, 하는 마음을 가져본 적도 없다.

내가 꾸준히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남들에게 칭찬이나 받을 요량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일이요, 나 아닌 다른 누구라도 꼭 해야만 할 일이 바로 재소자들을 돕는 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 사회에서는 죄인을 냉대하거나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다. 참혹한 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죄 값을 받는 것이라 생각한 탓인지 무관심한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의식 속에 이들에 대한 골 깊은 피해의식이 있는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비사 신도들 중 한 분이 어느 날, 나를 돕겠다고 자청해 오셨다. 나는 몹시 기쁜 마음으로 함께 교도소에 가서 재소자들에게 줄 떡과 음식을 준비하기로 미리 계획을 세워두었다.

그런데 예정된 날짜가 지났는데도 그 신도로부터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기다리다 못해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스님, 죄송해요. 하필이면 엊그제 저희 집에 강도가 들어서…. 저 교도소 가는 일 취소할랍니다.”

그 신도 분은 볼멘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결코 소외하고 무관심하면 안 되는 곳이 교도소요, 재소자들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소외하면 할수록 이들은 갱생의 기회를 잃고 더욱 크나큰 죄의 길로 빠져 들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자신이 지은 죄 값을 받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필요 한 것은 자신이 지은 죄를 반성하게 하는 일이요, 참회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의의 따뜻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수원에 있는 교도소 소장 김인호 씨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김 소장은 다짜고짜, “스님, 저희 교도소에 책을 좀 보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갑자기 책이라니요?”

의아해서 묻자 그는, “저희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들에게 책을 읽히고 싶어서요! 우선 형편이 닿는 대로 저희 직원들이 모두 주머니를 털어 어렵사리 마련해 봤는데 2천 권밖에 안 되는 군요. 이 정도 가지곤 턱없이 모자라서…. 스님이 도와주시리라 믿고 전화드린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 점은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실 교도소란 곳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 집결하는 장소이다. 이들 중에는 평범한 회사원도 있지만 사업가나 상인, 택시 기사, 학생, 심지어 고위직 공무원들도 있다.

이들이 지은 죄목도 참으로 다양하다. 참혹한 범죄를 지은 사람도 있지만 더러는 누명을 쓰거나 돈 없고 힘없는 탓에 억울하게 들어본 이들도 적지않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 하는 유명 정치인들 가운데에서도 이 곳을 거쳐 나간 이들이 많다. 나중에 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대부분 교도소 안에서 많은 책을 읽었으며 이것이 나중에 자신이 입지를 다져나가는데 귀중한 토양이 되었다고 술회하는 것을 흔히 듣게 된다.

사실 수감된 재조사들에겐 목욕과 운동, 면회 시간을 빼면 모두 다 소 안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대개는 그 안에서 시시한 잡담을 하거나 아니면 범죄 이야기로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이 그 안에서 더욱 큰 범죄를 모의하고 사회에 나가 다시 죄를 짖는 일이 흔하다는 점이다.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느니 이들에게 책이라도 볼 수 있게 지원한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특히 장기수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책이다. 재소자의 가족들이란 대부분 가난하기에 책을 사서 넣어 줄 만큼 충분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책은 마음을 가다듬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참회하게 하고 정신 수양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들에게 양서 한 권씩이라도 읽히고 싶다는 최 소장의 말에 나 역시 물론 대 찬성이었다.

“김 소장님, 참 좋은 생각이십니다. 물론 당연히 도와 드려야지요. 몇 권이나 필요하신지요?”

“대략 5천 권이 필요합니다. 재소자들에게 모두 한 권씩 읽게 한 뒤 독후감을 써내게 할 생각입니다. 우수한 사람에겐 가족들과 특별면회를 하도록 하고, 재판부에 보내 양형에 참작하게 할 계획이지요.”

“참 대단한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제가 어떻게든 마련해 보겠습니다.”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김 소장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내가 업무 차 일본에 갔을 때 재소자 검도 대표단을 이끌고 온 그와 우연히 만나 함께 식사를 하게 되면서였다. 그때 나는 그에게서 재소자 일에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사형수 문제로 고심할 때 내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기도 했고 만날 적마다 항상 편하게 나를 대하곤 했다. 이렇듯 교도소장인 그와 내가 서로 친분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거의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교화위원인 나로선 대부분의 교도관들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형수들의 억울한 사연을 매스컴의 힘을 빌어 법조계에 호소하는 일이 종종 있다. 이러다 보니 이를 통제하는 임무가 있는 교도관들과는 자연히 불편한 관계에 놓이게 된다.

물론 교도관들로서는 보안상 고도소의 일이 바깥으로 흘러 나가면 안 되므로 직무상 나를 꺼리게 되는 것이며 어쩔 수 없이 서로 불편한 관계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김인호 소장에게서 전화를 받은 다음 잠시 생각을 했다.

‘지금 내가 아는 출판사가 여러 군데 있다. 일단은 그 쪽에 얼마간 도움을 요청해야 겠다. 어느 출판사이든 재고가 있게 마련이고 팔리지 않은 책이 쌓여 있을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나는 급한 마음에 즉시 여러 출판사로 전화를 걸었다.

“교도소 안에는 가족이나 친지가 넣어 준 영치금으로 책을 사보기조차 곤란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재소자의 가족들이란 대부분 형편이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비치된 책이라야 고작 5,60권밖에 안 되는데 그것도 교무관실에 있어서 사실 수감자들이 책을 읽고 싶어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게다가 최근 나온 신간은 거의 비치되지 못한 채 빈약한 실정이지요. 좀 도와주십시오. 사실 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게 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교화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느 출판사에서도 재소자들을 위해 선뜻 책을 보내 주겠다는 곳이 없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나는 예전 일이 기억에 떠올랐다.

15,6년 전, 당시 삭막한 청송감호소내에 그림이라도 걸어 놓고 싶은 마음에 몇몇 화가를 찾아 다니며 그림 한 점씩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화가들 대부분은 그림을 선뜻 내어 주기를 꺼려하는 눈치였다. 이름없는 화가조차도 자신의 작품을 수비게 내주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 지만 아무리 가까운 형제지간이라도 자신의 그림을 남에게 거져 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청송감호소측에서 운보 김기창 화백에게 그림 한 점을 부탁하자 그는 두말없이 선선히 응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청해서 지방의 다른 교도소에 걸도록 자신의 그림 몇 점을 더 내주었다.

운보라면 우리나라에서도 첫째가는 국보급 화가이다.

무명화가도 달가워 하지 않는 일에 적어도 운보 같은 대가가 적당히 핑계를 대서 묵살 할 수도 있을 터인데, 요청에 선뜻 응했다는 것이 나로선 의외였다.

우리나라 법조계의 동량들이 거쳐가는 사법 연수원생들을 위한 그림 요청에는 거절했던 운보가 교도소에 그림을 선뜻 보내온 것이다. 참으로 대가다운 운보의 진실한 인간됨을 알 수 있는 한 예이다.

아무튼 책의 조달이 어려워 전전긍긍 고심하고 있던 중이었다. 나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한다는 것이 힘들어진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다른 이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부담을 얹어 준다는 것이 싫은 것이다.

그러던 차에 한국경제신문사 출판국장인 고광직 씨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오랜만이라 서로 안부를 물은 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가 문화부 기자 시절, 한 사형수를 통해 알게 됐으니 그와는 꽤 오린 기간 인연을 맺고 있는 셈이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당시 그는, 옥 안에서 자신의 밥을 나눠 주며 기르던 참 새 한 마리를 사형장에서 날려보낸 가슴 뭉클한 어느 사형수의 이야기를 취재한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얘기 도중 고 국장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실은 스님께서 교도소에 책을 보내시려 한다는 얘기를 며칠 전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정말 뜻 있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저희 출판국에는 재고가 1만부 정도 있습니다. 이것으로 저희 신문사에서도 교도소 책 보내기 운동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1만부라면 내가 예상했던 숫자를 훨씬 웃도는 부수였다! 그의 뜻밖의 호의가 너무나 고맙고 고마웠다.

고심하던 내게 그의 말 한마디는 백만 대군이라도 얻은 장수처럼 새로운 용기와 힘을 솟구치게 했다.

그렇다. 이젠 청송감호소에도, 갱생보호소에도 이 책들을 보내야겠다. 책을 읽고 싶어도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책을 읽을 수 없는 재소자들, 특히 장기수들에겐 이 책들이 무엇보다 귀한 선물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제껏 내가 해온 어느 일보다도 더 열심히 교도소에 책 보내기 운동을 시작할 생각이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반인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진정으로 이들을 위한 일을 찾은 것 같아 내 마음은 바빠진다.

三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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