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일까?
동서고금을 통하여 수많은 선인들이 사랑에 대해 제각기 정의를 내려왔지만 아직 그 누구도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는 못한 것 같다.
사라의 힘은 위대하다
고 한다. 이 말은 곧 사랑이 사람에게 따뜻한 온기를 주며 험난한 이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마력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 있으므로 인간은 역경 속에서 힘을 얻기도 하고 사막에서도 외롭지 않다. 또 인생이라는 긴 강물의 흐름 속에 사랑은 은은한 연꽃의 향기로 마음을 에워싸는 행복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이 사랑 때문에 목숨을 끊기도 하고, 남을 헤치는 불행한 경우도 있다. 인간의 욕심이 도를 넘고 사랑을 소유하려는 집착이 지나친 결과이다. 이혼한 아내에게 재결합을 외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총기를 난사하거나 함께 살던 여자가 도망쳤다고 해서 그녀의 집까지 찾아가 살인을 하는 남녀간의 사랑은 차라리 독약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왜 사랑한다고 하면서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자신의 마음까지도 다치게 되는 것일까?
3,4년전 택시를 탔을 때의 일이다.
“스님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스물대여섯쯤 됐을까? 내가 탄 택시의 기사분은 무척 건장해 보이는 젊은이로, 잠시 주저하더니 이렇게 내게 물어왔다.
“말씀해 보시지요.”
“실은 제게 큰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그가 미리 말하기도 전에, 그 기사의 나이로 보아 아마 여자나 결혼 문제가 아닐까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저는 정식으로 결혼을 해서 아이도 하나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처음 얼마간은 단꿈에 젖어 행복하게 잘살았지요. 그런데 어느 날 제 아내가 그만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당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군요? 그러니 부인이 자식도 버리고 가출을 했겠지요.”
그러자 그는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그랬으면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했을지 모릅니다. 내 잘못이거니 하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우리 기사들 수입이래야 뻔한 게 아닙니까.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했는지, 자기도 돈을 벌겠다고 집을 나간 거지요. 그런데 얼마가 지나자 저를 찾아온 거였어요. 장사를 하려고 하는데 밑천이 없어서 곤란하니 5백만 원을 꿔달라고요.”
“그래 당신은 어떻게 했소? 그 돈을 주었소?”
“그랬지요.”
“물론 사람이 살다보면 어쩌다 가출을 하게 되는 일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그 여자는 참말 장사를 하려고 나갔던 게요? 혹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지는 않으셨소?”
그제서야 그는 머뭇거리면서, 그 여자에게 다른 남자가 있으며 현재 그 남자와 살고 있는 중이라고 실토하는 것이었다.
“아니 당신은 바보요? 당신을 버리고 자식까지도 버린 채 집을 나간 여자를, 더구나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여자에게 피땀 흘려 벌은 돈까지 주다니 말이 안 되지 않소?”
“스님, 제 마음이야 오죽 괴롭겠습니까. 하지만 이미 나를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떠난 여자이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기다림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지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승복을 입은 내가 어찌 저들 남녀간 애정의 깊이를 알리요마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미 떠나간 여자를 그토록 못 잊는 이유가 뭐요?”
“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나를 떠나 다른 남자와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때 내 아내였던 사람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녀를 기다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길을 막고 누구에게든 한번 물어보시오. 떠나간 여자가 다시 온다고 칩시다. 그러나 지금이야 당신의 마음이 그녀를 용서하고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분명 지울 수 없는 과거로 남아 괴로워하게 될 거요. 그때는 어떡하시겠소?”
나는 가슴이 답답해져서 언성을 높였지만 마음 한편으로 그가 측은하게 생각됐다.
그는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간절한 어조로 물었다.
“스님,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래도 기다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저는 그 여자를 사랑합니다.”
사랑에 눈 먼 그 기사는 아직도 기약 없이 그녀를 기다리면서 하루하루 고혜의 바다를 헤매고 있을지 모른다. 기다리면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애타는 심정으로 사는 그 기사처럼 이토록 사랑이란 사람의 마음을 간절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사랑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슬픔과 고통으로 몸부림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남년간의 사랑은 더욱 그렇다.
유부녀인 심프슨 부인을 사랑한 나머지 부귀와 영광의 상징인 왕관을 아낌없이 내버려야 했던 영국의 에드워드 8세, 자신을 길러 준 유모의 남편 위홍을 사랑했으나 2년 뒤 그가 죽자 슬퍼한 나머지 헌강왕의 서자에게 왕위를 물리고 죽은 연인의 원당인 해인사로 내려가 여생을 보낸 신라 시대 진성 여와, 이미 유부남인 김우진과의 이루지 못할 사랑을 비관한 나머지 꽃 같은 젊음을 현해탄에 던진 근대기 신여성…, 한 남자를 위해 간첩이 되어 끝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 김수임…, 이 모두가 부와 명예보다 사랑을 더 귀하게 여긴 사람들이며, 하나뿐인 생명까지도 던지고 사랑을 택했던 사람들이다.
부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지 말라. 미운 사람도 만나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라고 “법구경”에서 말씀하셨다.
무릇 인간의 사랑은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돌아서면 괴로움과 미움으로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헌신적이고 희생적으로 끝없이 주는 것이 아닌 바에야 아예 사랑과 미움의 집착마저 두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어찌보면 참으로 냉정하기 짝이 없는 말로 생각될지 모르나, 모든 애욕의 괴로움의 근본은 결국 쓸데없는 집착으로 생기는 것이므로 이러한 집착과 번뇌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 말이다.
그러나 애욕의 괴로움이 비단 이 세상의 중생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속세를 벗어나 수행하는 자에게도 이러한 고통, 즉 마장이 끼여든다. 그래서 마장을 견디지 못해 때로는 환속의 유혹을 받고 파계하는 경우가 있기도 한 것이다.
신라 시대 의상 대사를 사모한 신묘라는 여인이 있었다.
의상 대사는 36세의 나이에 원효와 함께 당나라로 불법을 배우러 유학을 더나던 도중 흙무덤에서 깨달음을 얻은 원효를 뒤로 한 채 혼자 중국으로 건너가 불도에 정진하여 마침내 화엄종의 정수를 체득하게 된 우리 불교의 태두이다.
그가 유학하던 시절, 잠시 머무르던 주인집 딸 선묘는 준수한 용모에다 번득이는 총기를 지닌 이 이국 청년을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옷을 곱게 꾸며 입고 온갖 교태를 부려 의상의 눈길을 끌고자 했으나 의상의 구도 일념에는 한치의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마침내 애욕의 의상을 단념하고 새로운 생각을 일으키게 된다. 이 생이 다하고 또 다음 생이 이어져도 자신은 의상을 도와 그가 대업을 이루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서원이었다.
서원대로 10년간 그녀는 의상을 도와 지극한 정성으로 뒷바라지했고, 마침내 의상은 중국불교철학의 진수를 체득하여 귀국길에 오르게 되었다.
떠나는 날, 선묘는 의상을 위해 옷가지를 마련하고 있다가 그가 배에 탄 뒤에야 소식을 듣고 달려나간다. 그러나 이미 배는 선창을 떠나 바다로 멀어져가고 그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으니 서운함만 가득 차 멀어지는 뱃전을 바라보는 선묘! 수천 리 뱃길이 위험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자 이 몸을 던져 저 배를 보호하리라.
하고 바다로 몸을 던지니 바다도 감동하여 과연 그녀의 뜻대로 용이 되게 하여 의상이 탄 배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보호하여 무사히 신라 땅까지 인도하여 갔다는 이야기이다.
귀국 후 의상은 산천을 섭렵하며 자신의 법륜을 굴릴 마땅한 절터를 물색하다가 마침내 한 곳을 발견했다. 그런데 절을 지으려 할 때 의상은 고민에 빠졌다. 사교의 무리 5백이 방해를 했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공중에서 거대한 돌이 공중으로 솟구치는 신변이 일어났다. 끝내 죽어서라도 의상을 도우려는 선묘의 혼이었다. ㄷ둑들은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고 그제야 의상은 순조롭게 절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신묘한 변화를 연출해 낸 돌로 인해 부석사라 이름지운 의상은, 죽어서까지 자신을 도운 선묘의 혼을 기리기 위해 그 옆에 선묘각을 지었다고 한다.
이 선묘 설화는 사실 여부를 떠나 누구에게나 가질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을 지고한 행동으로 승화시킨 이상형을 보여준다. 선묘의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은 이승의 생사를 뛰어넘어 마침내 지고한 사랑의 행동으로 승화되었다. 만약 선묘가 의상에 대한 사랑을 이루고자 욕심을 내고 집착하였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아마 사랑 대신 미움으로 채워진 마음은 절망으로 괴로워하고 고통 속에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부처님께서는, 사랑은 욕심을 인연으로 하여 욕심으로부터 생겨나며 욕심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하고 “출요경”에서 말씀하셨다.
사랑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베푸는 것이다. 사랑도 지나치게 소유하려고 집착하면 번뇌와 절망으로 변하는 법, 욕심없이 아낌없이 베푸는 사랑법을 배우자.
三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