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수유리에 있는 화계사에 볼일이 있어 택시를 탔을 때의 일이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한여름, 빗줄기가 사정없이 옷소매를 적시고 있었다.
마침 빈 택시가 내 앞에 와서 멈춰섰다. 다행스런 마음으로 차 안에 앉자마자 택시 기사는 나를 알아보고는, “아이고, 삼중 스님 아니십니까? 반갑습니다.”하고 반겼다.
“많이 젖으셨네요. 이것으로 우선 빗물을 닦으셔야겠습니다.”하고 하며 자신의 수건을 건네더니, 그는, “스님, 오늘 모처럼 이렇게 제 차에 타시게 됐으니 저로서는 행운입니다. 부디 저를 위해 법문 한말씀 해주시지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택시를 타고 다니다보면 나를 알아보는 기사분들이 더러 있고, 좋은 말을 들려 달라고 청하는 이들도 가끔 만나게 된다. 하지만 법문
이라는 불교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이 사람은 불교에 관심이 많거나 아니면 불교 신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적인 얘기라면 몰라도 짧은 시간에 느닷없는 법문이라니…
나는 화제를 바꿔볼 양으로, “택시 운전을 하신 지는 몇 년이나 되셨는지요?”하고 물어보았다.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지요.”
내가 탄 택시는 개인택시가 아닌 회사택시였다. 내 상식으로 볼 때 택시 영업을 5년 정도 하고 나면 대형 교통사고를 내지 않는 한 으레 개인택시 영업을 할 수 있는 면허가 나온다고 알고 있다.
“오래 되셨군요. 그런데 그렇게 오랫동안 운전을 하시다보면 사고도 한 두번쯤은 내셨겠네요. 그렇지 않고서야 20년 경력의 운전자가 아직도 회사택시를 몰고 다니시다니요?”
내가 이렇게 묻자 그는 빙긋이 웃으면서, “아닙니다, 스님. 저는 20년간 운전하면서 아직 한 번도 사고를 낸 적이 없는 무사고 운전자랍니다.”
“그렇다면 그간 수입도 꽤 되었을 터인데 왜 아직도 회사택시를 몰고 다니시는 겁니까?”
“여러 번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했지요. 저보다는 남들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요. 제가 받으면 남들이 못 받게 되지 않습니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남들은 개인택시 면허증을 받지 못해서 야단들인데… 당신 미친 사람이오? 아니면 당신이 무슨 성자라도 되오?”
“저는 부처가 되려고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갑자기 말문을 잃었다. 불가에서 공부한다
는 말은 곧 수행을 위해 정진한다
는 뜻으로, 일반인들이 보통 사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용화사 전강 스님 아시지요? 그분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전강 스님 이라면 25세에 만공 선사께 법을 인가받고 법맥을 이은 우리나라 불교사에 한 획을 그은 유명한 선사이다. 평생을 불철주야 목숨을 아끼지 않은 수행과 고행으로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수많은 일화를 남기고 가신 전강 선사다.
“그분을 어떻게 뵈었습니까?”
나는 더욱 놀라서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얘기를 들려 주는 것이었다.
이제 막 시작한 햇병아리 택시 운전기사 시절, 하루는 허름한 평복을 입고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 한 분이 그의 택시에 타셨다.
“젊은이가 운전하느라 고생이 많구먼. 운전수 양반, 운전 잘해?”
말투나 행색으로 보아 시골 장터에서 흔히 마주치는 어느 촌로였다. 그는 무심코, “할아버지, 제가 이래봬도 운전 하나는 잘하지요, 걱정 마십시오.”라고 으쓱대면서 대꾸하였다.
“아니, 내 말은 마음 운전을 잘하느냐고 물은 게야.”
“…?”
“물론 젊은 운전수 양반은 쇠 다루는 운전을 잘하겠지. 그러나 더 중요한 거은 마음 운전이야. 마음을 걸리지 않게 써야 진짜 운전을 잘하는 게지.”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는 도중에 그는 그 촌로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자신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면서 어느새 가슴 한 구석이 환한 지평으로 열려지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그 노인이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 번 꼭 뵈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어르신, 어디에 사십니까?”하고 공손하게 여쭤보았다.
‘저 위쪽 절에 살아. 젊은이가 나를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와 문을 두드리게나.”
그때부터 그는 어렵고 힘들 때마다 자주 절을 찾았다. 노인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돌아오기를 몇 번, 차름 자신도 모르게 그분에게 이끌려 자주 가게 되었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절에는 신도들이 구름떼같이 몰려왔고, 자신이 택시에 태워드린 초라한 행색의 그 노인을 보고 큰스님
이라고 부르며 다투어 엎드리는 것을 보고 비로소 그가 그 절의 스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르신, 왜 어르신한테 그냥 스님
이 아니라 큰스님
이라고 부르는 거지요?”
“그게 이상한가? 그건 내가 이 절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남들이 그렇게 부르는 게지.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야.” 그분은 태연히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평생을 무애행으로 살다 가신 전강 스님. 그분은 생전에 많은 얘깃거리를 남기고 가신 분이다. 스물세 살에 견성하고 우주의 이치와 생의 본질을 터득한 뒤 아무것도 거칠 것 없이 무애행으로 한때는 해인사 홍도여관에서 머리에 수건을 질끈 매고 아무 옷이나 걸친 채 심부름꾼 노릇을 하기도 했던 분이다.
어느 날 만공 선사가 전강 스님에게 물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새벽별을 보고 깨달았네. 전강, 저 많은 별 중에 자네의 별은 어느 것인가?”
그러자 전강 스님은 바로 땅바닥에 엎드려 손을 허우적거리며 별을 찾는 시늉을 해보였다. 이를 보고 만공 선사가 말했다.
“옳다, 옳다.”
그는 지금 처와 자식이 있지만 여태 사글세로 살고 있으며 집에는 전화가 없다고 했다. 집착과 욕심을 버리고 살기 위해 남모르게 재활원과 양로원의 불우한 이들을 돕고 사는 게 바로 자신의 기쁨이요, 행복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랐으나 나는 그와 이대로 헤어지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우리 두 사람은 차에서 함께 내려 빈 공터를 찾아 서성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더 많은, 더 깊은 얘기를 나누었다.
무엇에도 집착함이 없이 그 마음을 내어 깨달음(보리)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 나는 그가 바로 움직이는 부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아직도 이 세상에는 보살의 화현이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를 만나 깨달을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三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