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유감

지금부터 102년 전 1896년 유서 깊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부활된 근대 올림픽의 이상은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교환을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이라 하겠다. 이 올림픽을 창시한 쿠베르탱은 ‘아름다운 스포츠 정신이 세계 어느 곳에나 보급되어, 온 세계의 청년들이 진실로 평화를 사랑하며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육체의 기쁨, 미와 교양, 가정과 사회에 봉사하기 위한 근로’의 세 가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 걸었지만 인간의 완성은 물론 세계평화에의 기여 정신도 점차 퇴색하여 세계 제1.2차 대전으로 세 번이나 중단되기도 하였고, 최근에는 정치의 개입으로 테러가 일어나는가 하면 대회를 보이콧하는 사태까지 있었다.

지난 8월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되었던 올림픽도 그 규모나 화려함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지만 곳곳에서 올림픽정신과는 거리가 먼 얼룩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작심하였다는 듯이 개최국 중국이 금메달 51개로 종합 1위를 하고 만년 1위를 하던 미국이 몰락(?)하고 말았다. 모두 204개 나라가 참가하였지만 동메달 하나라도 딴 나라는 87개국으로 절반 이상이 메달과는 인연이 멀었다. 매회 올림픽이 그랬듯이 어림잡아 상위 20~30개국의 잔치에 나머지 나라는 들러리를 서는 셈이다. 다행이 우리나라는 금 13, 은 10, 동 8개를 따서 종합 7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잔칫집 분위기다. 말로는 가장 소중한 것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본래의 정신은 몰각한 채 다들 메달 따기에 총력전을 펼친다.

그러나 스포츠 특히 올림픽 경기의 위력은 실로 대단한 것 같다. 그렇게 시끄럽던 국내정치도, 촛불집회도 TV뉴스에서 사라졌으니 말이다. 이러니까 위정자들이 스포츠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로비를 해서라도 좋은 성과를 올리려고 하는 건가. 사실 선진국을 여행하다 보면 가장 부러운 것이 마을 곳곳에 있는 잔디구장을 비롯한 생활체육 시설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시설 하나 변변히 없는 종목에서 메달이 나온다. 포상금 때문인지 병역면제 혜택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대단하다.

지난해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몬주익언덕에 서 있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황영조의 상을 보았고, 며칠 전 몬트리올에서 21회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에 해방 후 첫 금메달을 안겨준 양정모 선수의 이름과 함께 태극기가 게양(금메달 획득 국가의 국기만 게양)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솔직히 반가웠던 게 사실이다. 올림픽 경기 결과가 그 나라의 국력을 평가하는 바로메터라고 생각하는지 나라마다 기를 쓰고 덤빈다. 하기야 1930년대 전후엔 노벨상이 그 나라의 국력과 문화의 척도인양 국가적 차원에서 경쟁적으로 노벨상을 타기 위해 로비까지 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제 문제는 금메달을 비롯한 메달 개수가 문제가 아니라 스포츠 인구의 저변확대와 생활체육의 활성화라 하겠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가장 스릴 있고 기억에 오래 남을 경기는 역시 야구일 것이다. 전승에 그것도 미국과 일본, 쿠바를 차례로 꺾고 우승하였으니 실로 대단한 일이요 엄청난 사건이라 해도 과장된 표현은 아니라고 본다. 가끔씩 TV로 스포츠 중계를 보면서 느낀 바다. 미국의 프로 야구ㆍ미식 축구ㆍNBA농구나 일본의 프로야구 경기 장면, 영국의 프리미어리그 등을 보면 경기장이나 선수들의 기량도 대단하지만 관중석이 빈곳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우리의 프로야구나 K리그 축구 경기장의 모습은 어떤가. 이런 여건에서 올림픽이나 각종 세계대회에서 상위성적이 나온다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비록 세계적인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할지라도 우리 국민들이 아름다운 스포츠정신 위에 건전한 정신, 건강한 육체를 갖추어 건강한 국가, 건전한 사회를 이루게 함이 옳지 않을까. 이제 우리의 국력도 어느 정도 세계 선진대열에 접어들었으니 선수 중심의 엘리트체육 정책을 지양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김형춘 香岩 (반야거사회 회장․창원전문대교수) 글. 월간반야 2008년 9월 제94호

오바마의 말

미합중국 건국 232년 만에 첫 흑인 대통령으로 47살의 연방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Barak Obama)’가 당선되었다. 지구촌의 경찰국가로 화려하게 포장된 초강대국 미국이지만 인종갈등과 패권주의로 점철된 그들의 역사도 문제지만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슬럼화와 제국주의, 비인간적 폭력 등 이해하기 힘든 면이 더 많은 나라다.

그런 사회 속의 오바마 당선자 또한 케냐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2살 때 부모의 이혼, 6살 때 어머니가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하여 4년 간 인도네시아에서 살았고, 다시 청소년기를 하와이에서 보냈는가 하면, 컬럼비아대학과 하바드에서 정치와 법학을 공부하고는 시카고에 정착하여 사회복지활동을 하면서 주 상원의원 4선, 초선 연방상원의원으로 활약하다 일약 제 44대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니 그의 말대로 상상을 뛰어넘은 ‘변화와 혁신’이 일어난 셈이다.

그의 대통령 당선은 ‘서브 프라임 사태로 비롯된 금융위기,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는 미국의 민심 반영’에다 워싱턴 정가에서 이 신인을 키운 것은 ‘8할이 명 연설’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가장 큰 요인은 지난 8년 간의 ‘오만과 독선과 무모함과 실패로 얼룩진 미국’이 오바마 당선의 일등 공신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요인들 가운데서도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신화를 일구어 낼 수 있었던 데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의 뛰어난 연설이 한 몫을 했다고 한다. 워싱턴의 정치무대가 낯선 초선 상원의원으로서 당내 기반도 취약했던 정치 신인으로서는 내로라 하는 정치거물들과 대적하는 데는 최고의 무기가 ‘말’이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을 알리는 중앙 정치무대 데뷔의 계기는 2004년 7월 보스턴 전당대회 연설이었다고 한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존 케리’의 배려로 기조연설을 맡은 오바마는 ‘희망의 담대함’이라는 명 연설로 진한 감동을 남긴 것이다. “진보적인 미국과 보수적인 미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미합중국이 있을 뿐입니다. 흑인의 미국, 백인의 미국, 라틴계 미국, 아시아계 미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미합중국이 존재할 따름입니다.” 이후 오바마는 그 해 11월 연방상원의원으로 진출했고, ‘변화와 통합, 이상과 희망’이라는 평범한 단어를 통해 미국의 가치와 미래를 강조하는 그의 열정적인 연설이 미국 유권자를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여 ‘오바마니아’를 양산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힐러리 클린턴’과의 경선에서 승리한 후 지난 8월 콜로라도 덴버에서 가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우리가 마주칠 도전들은 힘든 선택을 요구하는 것으로 공화당원 뿐 아니라 민주당원들도 낡은 사고방식과 과거의 정치를 던져버려야 합니다. 지난 8년 간 우리가 잃은 것은 임금 손실이나 무역손실의 증가 뿐 아닙니다. 우리는 공동의 목표에 대한 인식도 잃어버렸습니다. 이 목표에 대한 인식이 우리가 회복해야 우선 과제입니다.”라고 호소하며 미국인의 감성에 호소하였던 것이다. 대선 본선에서는 공화당의 ‘세라 페일린’ 부통령 후보가 자신의 구호인 ‘변화’를 들고 나오자 ‘돼지 립스틱’ 발언으로 오바마 답지 못하다는 평도 들었지만, 선거일 직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타계소식을 듣고는 “할머니는 전 미국의 조용한 영웅들 가운데 한 분이셨습니다. 이름이 신문에 실리지는 않지만 그분들은 매일의 일상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눈물의 명 연설로 대중적 인기의 절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처럼 오바마의 연설은 한결같이 평범하고 쉬운 말로 이어졌고, 일관된 주장과 ‘변화, 개혁, 통합, 이상, 희망’ 등의 어휘 위주였으며, 청취자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내용으로 보였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고 그가 어떤 사고와 행동을 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문화적ㆍ인종적 다양성을 체험하고 이를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강점의 소유자에다 탁월한 연설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무관심 계층에게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개혁적인 이미지를 확고히 부각시키는데 성공했으니, ‘변화, 개혁, 통합’의 정치를 하여 미국인의 자존심 회복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정치사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을 주길 기대할 뿐이다.

일찍이 부처님의 전도선언(傳道宣言)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뜻과 문장이 훌륭한 법을 설하라”고 하셨으니 예나 지금이나 말이 인간사회에서 갖는 힘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香岩 김형춘 (반야거사회 회장, 창원전문대 교수) 글. 월간반야 2008년 12월 제97호

열병에 걸린 나라

예전엔 나라에 풍년이 들면 백성들의 인심이 순후해지고, 흉년이 들면 백성들의 인심이 흉흉해지기 때문에 임금들은 무척이나 농사에 신경을 썼다. 시대가 변하여 이즈음은 나라의 경제가 농업 등 1차 산업이 아닌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등 2·3차 산업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그러기에 국가 경영자들은 정치 등 다른 분야 보다 경제정책에 크게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즈음 우리나라는 정치·경제 뿐 아니라 국정전반에 걸쳐 커다란 열병을 앓고 있다. 어느 한 분야도 제대로 자리를 잡고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없다. 아니 지금 우리 사회에는 모든 국민이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여 믿고 따르는 사람도 없고, 믿고 존중하는 제도나 기관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의 말을 믿고 따를 것이며 어느 기관의 정책이나 결정을 인정하고 승복하는가.

저마다 이익집단들은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따져 보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행동하니 나라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두산중공업, 철도, 화물연대에 이어 금융, 교육, 자동차, 조선 등도 뒤따라 흔들리고 있다. 모두가 정부를 상대로 집단행동을 하겠다고 한다. 사회나 경제에 대혼란이 예고된다. 노동조합도 단위 사업장이 아닌 산업별로 교섭을 하겠다니 단체행동의 규모도 대형화 될 수밖에 없다. 대외 신인도는 추락하여 재계에서는 위기감이 팽배해 가고 급기야는 대통령이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이 나오자 이번에는 국민들이 불안해서 ‘국민 못해먹겠다’는 말이 나온다.

정작 분위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문 연구기관의 보고서에도 IMF 외환 위기 이후 우리 기업의 성장 잠재력이 급속히 악화되어 기업과 산업 경쟁력이 붕괴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저성장의 추세가 장기화되면 실업이 늘어나고 소득 증가도 둔화되는 등 우리경제가 감내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산업평화’가 아닌가 한다. 최근 싱가포르에서는 ‘국가 임금위원회’가 기업 살리기 정책의 일환으로 기업들은 더 빨리, 더 많이 임금 인하 내지 동결 조치를 취하라고 독려하는 등 조속하고도

과감한 시행을 닥달했다는 외신을 본 적이 있다.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법과 원칙에 따라 대처함은 물론 쟁점에 대하여 노와 사 사이에서 명확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은 불안스런 눈으로 나라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산업평화’ 보다 근본적인 것은 ‘마음의 평화’이겠지만.

김형춘 글 / 월간반야 2003년 7월 (제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