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문>
선남자여, 또 항상 중생을 따른다는 것은 온 법계, 허공계, 시방 세계에 있는 중생들이 가지가지로 차별되니 이른바 알에서 태어나고, 태에서 태어나며, 습기에서 태어나며, 변화해서 태어나는 것들이다. 혹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을 의지해서 사는 것들이 있으며, 혹은 허공이나 초목을 의지해 사는 것도 있거든 이런 저런 사는 종류, 이런 저런 몸, 이런 저런 형상, 이런 저런 모양, 이런 저런 수명, 이런 저런 종족, 이런 저런 이름, 이런 저런 심성, 이런 저런 지견, 이런 저런 욕망, 이런 저런 행동, 이런 저런 거동, 이런 저런 의복, 이런 저런 음식으로 이런 저런 마을과 성읍과 궁전에 살며, 나아가 일체 천룡팔부와 사람인 듯 하면서도 사람 아닌 것들, 발이 없는 것과 두 발 있는 것, 네 발 있는 것, 많은 발을 가진 것, 색깔이 있는 것, 색깔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과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들의 이러한 가지가지 종류들을 내가 모두 저들에게 따라다녀 갖가지로 받들어 섬기며, 갖가지로 공양하기를 부모와 같이 공경하며, 스승이나 아라한 내지 여래처럼 받들어 조금도 다름이 없이 하고, 병들어 고생하는 이에게는 훌륭한 의사가 되어 주며, 길 잃은 자에게는 바른 길을 보여주며, 캄캄한 어둠 속에서는 광명이 되어 주며, 가난한 자에게는 보배를 얻게 해 주리라 하는 것이니라.
<풀이>
일체중생이 이 세상에 생명을 부여받았다는 것 자체가 지극한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생명이 적자생존의 경쟁에 의해 은혜의 배반이 일어나는 것은 중생세계의 비극이다. 약육강식이라는 업보의 본능이 서로의 생명 발전을 장애하여 생명 위협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불안과 공포가 더욱 가중된다. 여기에 중생을 보호해 주려는 보현의 원력이 동체대비를 띠고 나와 모든 중생을 따라 보살펴 준다는 것이다. 어떤 중생도 멀리하지 않고 가까이 친해져서 도우며 섬기겠다는 것은 생명의 참 가치를 보장하여 절대 평등한 본래의 공덕을 누구나 소유하고 누리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생명체 하나하나가 개체적으로 처해 있는 조건이나 환경을 가리지 않고, 이런 저런 모든 상황 속에서 오로지 위해 주는 마음으로 부모처럼 공경하고 여래처럼 받들겠다는 정신은 대승의 본질이 발휘되는 극치이다. 나와 남의 생존을 대립적으로 보고 나를 위해 상대를 배타시하려는 소아적인 생각에서는 중생을 따를 수 없다. 사실 이 세상은 모든 중생들의 생명이 통분되어 있는 것이다. 시방법계 곧 대우주가 하나의 전일적인 생명 체계를 구축해 있는 것이므로 중생의 종류가 아무리 다르다고 하더라도 공생의 원리에 입각하여 생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아함경》에 양두사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의 몸체에 머리가 두개 달린 뱀이 있었다. 먹이를 만났을 때 두 머리의 입이 서로 먹으려고 경쟁을 하였다. 그런데 번번이 오른쪽 머리의 입이 선수를 쳐서 먹어버리므로 왼쪽 머리의 입이 항상 불만스러워 했다. 그러던 중 한 번은 오른쪽 머리의 입이 먹이를 보고 냉큼 먹지를 않아, 왼쪽 머리의 입은 이때다 하고 집어 삼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것은 독이 든 먹이로, 오른쪽 머리의 입은 그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항상 먹이를 뺏기는 불만에 쌓여 있던 왼쪽 머리의 입은 재빨리 먹는 것에만 급급하여 그만 독이든 먹이를 먹고 말았다. 이리하여 결국 양두사는 죽었다. 생명에 뿌리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다. ‘만물동근’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한 뿌리를 의지해 이런 저런 생명의 갈래가 나뭇가지처럼 나누어져 뻗어진 것이다. 또 세세생생 생사를 이어가는 윤회 속에서 볼 때 모든 개체적 생명 하나하나가 서로 상관 관계 있다. 때문에 남을 돌보는 것은 내 몸에 생긴 상처를 치료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신체의 어느 한 부위에 상처가 생긴다면 치료를 해야 하는 것처럼 중생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알라는 최상의 가르침을 보현의 행원에서 배우게 된다. 중생이 있으므로 부처가 있고 보살이 존재한다. 중생 구제를 서원하는 자는 병든 이에게 의사가 되어 주고, 캄캄한 밤에 불빛이 되어 주고, 길 잃은 이에게 바른 길을 안내하며, 가난한 자에게는 재물을 얻게 해 준다는 말은 한 편으로 생각할 때 우리가 사는 인류사회를 복지사회가 되게 하는 근본이념을 구체적 제시한 현실의 실태를 지적한 말이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5년 5월 제5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