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근본교리 (10)윤회설

욕계에는 천상도 여섯 개가 들어 있습니다. 욕계육천이라고 말하는 이 천상은 사천왕천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수미산 중턱에 있는 천상으로 동서남북의 네 방향으로 지국천(持國天), 증장천(增長天), 광목천(廣目天), 다문천(多聞天)의 네 하늘에 각각 왕이 있어 천신들을 거느리고 있다하여 사천왕천이라 합니다.

그 다음 제2천이 도리천(忉利天)인데 사천왕천의 바로 위인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천상입니다. 맨 가운데 선견성(善見城)이라는 성이 있고 사방에 각각 8개의 성이 있어 천인들이 살고 있다 합니다. 33천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가장 큰 중앙의 선견천에 제석천(帝釋天)이라는 왕이 있어 이 천상을 다스립니다. 이 천상의 하루가 인간세상의 100년에 해당된다 합니다. 이 천상에 처음 태어났을 때 인간세상의 6살난 아이와 같으며 옷이 입혀진 채로 태어난다 합니다. 그리고 1000세의 수명이 누려지는 곳이라 합니다.

일찍이 석가모니부처님이 이 천상에 올라가서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석달동안 설법을 했다 하며 그 내용이 수록된 경이 지장경입니다. 다음 제3천은 야마천입니다. 이 천상은 시간을 따라 쾌락을 누리는 것이 달라지므로 시분천(時分天)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또 낮과 밤이 연꽃의 꽃잎이 열리고 닫히는 것으로서 구분된다 합니다. 이 천상의 하루는 인간의 200년이라 합니다. 다음 제4천이 도솔천으로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외원은 일반 천인들이 욕락(欲樂)을 누리는 곳이고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라 합니다. 미륵보살은 일생보처(一生補處: 한 생을 지나면 부처가 될 자)보살로 이 천상의 내원에 있으면서 천인들을 교화하며 다음에 남섬부주에 하생하여 성불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합니다. 하루가 인간세상의 400년이며 아래의 사천왕천, 도리천 , 야마천이 욕정(欲情)에 잠기어 있는 반면 이 천상 위에 있는 화락천 , 타화자재천이 욕정에 들떠있는데 이 천상은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고 오욕락에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하여 지족천(知足天)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수명이 4000세라 하며 사바세계에 부처님이 오시기 전에 항상 이 천상에 계시다가 성불하여 사바로 온다고 합니다. 다음 제5천의 이름은 화락천(化樂天)이라 합니다.

이 천상은 자기가 대하는 모든 경계를 즐거운 욕락의 경계로 변화시킨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하루가 인간세상의 800년이며 서로 마주보고 웃으면 성교(性交)의 쾌감이 느껴지며 남녀가 마주하여 서로 웃는 것이 인간의 섹스(sex)행위와 같다고 합니다. 아기를 낳을 때 남녀의 무릅 위해서 태어나며 인간의 12살쯤 되는 아이가 화생하여 나온다고 합니다.

욕계육천의 마지막 하늘이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입니다. 욕계에서 가장 높은데 있는 하늘로 마왕(魔王)이 있는 곳입니다. 이 하늘은 남의 욕락을 마음대로 자기의 쾌락으로 삼는 까닭에 타화자재라 합니다. 어떤 생각을 일으켜 무엇을 하려고 하면 아무런 장애 없이 이루어진다 합니다. 가령 이 천상의 남녀는 서로 마주보기만 하면 성교가 이루어집니다. 육체적인 쾌락이 남을 마음대로 지배하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루가 인간세상의 1600년이고 수명은 16000세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상의 욕계의 여섯 하늘은 모두 욕락이 최고인 곳으로 욕게에서 가장 좋은 곳입니다. 원래 천상의 천(天)은 범어 deva를 번역한 말로 신(神)이란 뜻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서양에서 말하는 유일신인 God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신령스러운 존재 혹은 귀신의 무리라는 등의 뜻이 들어 있는 말입니다. 이 천상에 있는 존재들도 중생의 범주에 속해 있는 무리들로서 윤회를 벗어나지 못해 복(福)을 누리다 그 복이 다하면 하계(下界)로 떨어져 내려온다 합니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말에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삼계(三界)에 오르내리는 것이 우물에 물을 길을 때 두레박을 우물 속으로 넣어 내렸다 올렸다 하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욕계의 하늘 위로 올라가면 색계의 천상이 다시 전개됩니다. 이곳은 욕계천과 같은 욕망이 없어지고 깨끗하고 미묘한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인데 고요한 선정의 수련을 성취한 사람들이 태어날 수 있는 곳이라 합니다. 그리하여 이 천상을 4선(禪天)으로 구분을 합니다. 선(禪)이란 이름을 붙여 맨 밑에 있는 곳을 초선천(初禪天)이라 하고 다음 이선천(二禪天), 삼선천(三禪天), 사선천(四禪天)이라 합니다. 초선천에는 범중천(梵衆天), 범보천(梵輔天)의 세 하늘이 있고 2선천에는 소광천(少光天), 무량광천(無量光天), 극광정천(極光淨天)의 3천이 있습니다.

3선천에도 역시 소정천(少淨天), 무량정천(無量淨天), 변정천(徧淨天)의 3천이 있으며 제4선천에는 무운천(無雲天), 복생천(福生天), 광과천(廣果天), 무상천(無想天), 무번천(無煩天), 무열천(無熱天), 선현천(善現天), 선견천(善見天), 색구경천(色究竟天)의 아홉 하늘이 있어 색계천 안에는 모두 18천이 있습니다. 이상의 삼선천까지는 언제나 즐거운 낙을 일으키는 하늘이므로 낙생천(樂生天)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욕계의 사천왕천과 도리천은 수미산의 중․상턱에 있으므로 지거천(地居天)이라 하고 야마천 이상은 허공 가운데 층을 이루어 있으므로 공거천(空居天)이라 합니다. 이 여러 천상세계는 위로 올라갈수록 천인들의 신체가 크며, 수명도 더 길어집니다. 이 색계천 위에 다시 무색계의 네 하늘이 있습니다.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 식무변처천(識無邊處天),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의 네 하늘입니다.

비상비비상처천은 삼계 중 가장 꼭대기에 있는 하늘이라 하여 유정천(有頂天)이라고도 합니다. 무색계는 물질적 요소를 초월한 하늘이므로 색에 걸리는 일이 없다 합니다. 또한 천상에 사는 천인들이 장차 명이 마치려 할 때는 5가지 조짐이 나타난다 합니다. 첫째 의복에 때가 묻게 되고 둘째는 머리에 쓰고 있는 화관(花冠)이 시들며, 셋째는 몸에서 냄새가 나며, 넷째 겨드랑이 밑에서 땀이 나며, 다섯째 천상의 즐거운 흥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천상의 복이 훌륭하긴 해도 이곳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은 아니고 다시 다른 세계로 윤회전생(輪廻轉生)을 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안스님 글. 2001년 12월 제13호

불교의 근본교리 (1)

부처님이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이룬 후 열반에 드실 때까지의 설법하신 내용을 이론적으로 요약한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역사적으로 여러 시대를 지나오면서 불교의 교리도 발달되어 왔습니다.

부파불교 시대를 거쳐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교리와 사상이 폭넓게 연구되고 발전되어 교리전개가 다양해 졌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재세시의 설법을 중심으로 가장 원형적이고 불교사상의 기초이자 근본이 되는 것을 근본교리라 합니다. 근본교리는 삼법인, 사성제, 팔정도, 십이인연, 업사상, 연기설, 윤회설 등입니다. 삼법인(三法印)에 대해서 우선 말씀드리겠습니다.

삼법인은 불교의 진리를 세 가지로 함축하여 말한 것입니다. 법인(法印)이란 법의 도장이라는 말로 도장을 찍어 결제를 하듯이 참된 이치를 가리켜, 이것은 진리다 하고 결정·확인하여 간주한다는 뜻입니다.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그리고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이 바로 삼법인입니다..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행이란 우주 만유의 모든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인연에 의하여 형성된 모든 존재를 통칭하는 말로 유위(有爲)라는 말과 뜻을 같이 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물리적인 현상과 정신적인 현상 전체가 제행인데 이 모든 것이 항시 변해 가는 진행 속에 있는 것이라 어느 것도 머무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곧 만물은 유전(流轉)한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열반경>에 “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이라는 경문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덧없어 생겨났다가 소멸하는 법이다. 생겼다 없어지는 생멸이 없어지면 고요한 열반이 곧 즐거움이 되느니라”는 뜻입니다.

있다가 없어지고 없는 데서 생겨나는 것, 생멸이란 이렇게 인연따라 변천(變遷)하는 현상적 실태를 표현한 말입니다. 이 생멸하는 무상을 불교에서는 괴로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 합니다. 무상이란 우리말의 덧없다는 뜻이지만 그 어원은 범어(梵語Sanskrit) 아니티야(anitya)를 번역한 말로 일정하게 변하지 않고 머무르는 것이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찰나무상(刹那無常)과 상속무상(相續無常)이 있습니다. 찰나 속에 변해 가는 생(生)·주(住)·이(異)·멸(滅)이 일어나는 것과 일정한 기간 속에 생·주·이·멸이 있는 것을 구별한 것입니다. 생·주·이·멸은 생겼다 없어지는 과정을 네 단계로 설명하는 말입니다.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제법이란 모든 존재를 뜻하는 말입니다. 삼라만상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모두 제법 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인연에 의해서 존재하고 있지만 어느 것도 그 실체가 없습니다. 무아(無我)란 <나>가 없다는 말로 존재의 실체가 없다고 부정하는 말입니다. 개체적인 하나의 사물이 여러 가지 인연이 모여져 나타났을 뿐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본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무아이론(無我理論)은 불교 교리의 독특한 것으로 불교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재래의 인도 힌두사상에는 아뜨만(atman)이라는 고정 불변하는 실체적인 <나>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우주 최고 원리인 브라만과 동일한 것이라 하여 범아일여(梵我一如)를 주장하는 사상이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를 부정하여 존재의 근원은 아무 것도 없는 비워진 상태라고 합니다. 이 무아설은 나중에 대승불교에서 공사상(空思想)으로 발전하는데 불교철학의 심오함을 설명합니다. 가령 인간을 설명할 때 오온설(五蘊說)이 있습니다.

오온이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다섯 가지를 말하는데 이는 곧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요소입니다. 색은 육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4대(四大)라는 물질을 이루는 기본 요소가 화합된 것입니다. 곧 지(地)·수(水)·화(火)·풍(風) 네 가지 요소에 의하여 형성되는 육체가 색온(色蘊)입니다. 온(蘊)이란 쌓여 있는 무더기라는 뜻이고 지대(地大)는 뼈, 손톱, 발톱, 머리카락, 치아, 살갗 등으로 질소(N)성분인 것이며, 수대(水大)는 수소(H)성분으로 피, 땀, 침, 소변 등으로 우리 몸에 있는 액체수분입니다. 화대(火大)는 체온을 말하며 이는 탄소(C)에 해당됩니다. 풍대(風大)는 산소(O)인데 움직이는 성분과 체내에 있는 가스등의 기체입니다.

수온(受蘊)은 우리 몸의 감각기관이 외계의 사물을 받아들이는 감수(感受)의 작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각(視覺이나 청각(聽覺) 등의 감각이 처음 일어나는 상태가 수온인데 이때 괴롭고 즐거운 감수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세 가지 갈래로 나누어지는 고수(苦t受), 낙수(樂受) 그리고 사수(捨受)의 삼수(三受)가 있습니다.

상온(想蘊)은 받아들인 객관 경계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여 그것을 표상(表象)하는 작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송이 꽃을 보았을 때 시각에 와 닿은 꽃을 꽃이라 인식하고 또 그 꽃의 색깔이 붉다거나 노랗다는 등의 색감을 인식하는 것이 상온입니다.

행온(行蘊)은 생각과 생각이 움직여 연결되는 힘으로 사람의 의지가 일어날 때 행온의 작용에 의해서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식온(識온)은 분별하고 인식하는 작용을 일으키는 바탕이 되는 주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식(識)은 대승불교의 한 사상체계인 유식설(唯識說)에서 여러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상의 오온설은 인간이란 존재가 일시적인 오온이 결합한 물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라는 것은 오온이 합해진 것을 편의상 이름 붙여 말하는 것일 뿐, <나>라는 실체는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걸치며 바닥, 벽, 지붕 등의 집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이 모여 그 구성 요소들에 의하여 집이 성립되는 것처럼 인간이라는 존재도 오온의 구성 요소에 의하여 성립되므로 인간 자체의 존재가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

열반이란 고요하고 평화스러운 상태를 뜻하는 말입니다. 또한 소멸되어 없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원래 범어 니르바나(nirvana)를 음역한 말로 ‘불어 끄다 (吹消)’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활활 타고 있는 불길을 꺼버렸다는 이 뜻은 모든 번뇌와 욕망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부처님의 제자 사리불이 어느 날 어떤 사람으로부터 열반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사리불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사라진 것을 열반이라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는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것들이 제거된 것을 말한 대답입니다. 적정(寂靜)이라는 말도 열반과 같은 뜻인데 열반이 음역(音譯)한 말이라면 적정은 의역(意譯)한 말입니다. 불교의 최고 이상이 열반이며 현대적 개념으로 말하면 최고로 행복해진 상태라는 뜻입니다.

이상의 삼법인은 이 세상을 보는 불교의 관점을 현상계의 분석을 통해서 밝히고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이상을 가장 본질적인 문제에 입각해서 밝혀 놓은 것입니다.

지안스님강의. 월간반야 2001년 2월 (제3호)

불교의 근보교리 (9) 윤회설

나고 죽는 인간의 생사를 불교에서는 윤회라고 합니다. 불교의 인생관과 세계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교설입니다. 사실 불교적인 사고 방식의 근간에는 이 윤회설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른 바 순환적 사고방식의 배경이 되는 이론입니다.

윤회란 바퀴가 굴러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지만, 여기서 죽었다가 저기서 태어나는 생사가 공간적으로 이동하여 옮겨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범어로는 samsara인데 sam과 sara의 합성어입니다. 원래 sam 은 함께 라는 뜻이고 sara는 달려간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중국에서 바퀴가 돈다는 뜻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은 중생들이 여러 세계를 바퀴가 돌 듯이 이러 저리 옮겨가면서 돌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 존재가 죽으면 그가 살았던 세상에 다시 태어나거나 다른 세상에 가서 태어나며 그곳에서 죽어 또 다른 세상으로 가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여기서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서 사는 경우처럼 나고 죽는 것이 여러 곳으로 옮겨진다는 뜻입니다.

이 윤회설에 있어서 특기할 사항은 일체 중생, 곧 모든 존재는 나고 죽는 생사를 거듭 거듭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해가 뜨고 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밤낮이 교차되면서 무한한 세월이 되듯이 생사가 교차되면서 무한한 윤회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생사는 언제나 멈추지 않고 진행되고 있는 통과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불교의 목적을 이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합니다. 윤회에서 벗어난 것을 다시 해탈(解脫moksa)이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이룬 후 “나는 해탈을 얻었다.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합니다.

윤회 속에서 볼 때 생사, 즉 삶과 죽음은 언제나 똑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반복되고 있는 한 과정인 점에서 둘 다 똑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똑같은 시간인 것처럼 태어남은 죽음을 의미하고 죽어 가는 것은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이 윤회설에 있어서 또 하나 특기할 점은 생사를 거듭하는 윤회 속에서 몸을 받는 업(業)에 따라 다르게 받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죽어서 다시 태어날 때 언제나 사람 몸을 받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죽어서 짐승의 몸을 받는 수도 있고 짐승이 죽어 사람 몸을 받는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전생(轉生)이라 합니다 몸을 바꾸어 다른 생명체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왜 이렇게 다른 생명체로 태어나게 되는 것인가? 여기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것이 업(業karma)입니다. 윤회의 원리는 업으로 설명됩니다. 업은 행위를 두고 하는 말인데 이 행위가 윤리·도덕적으로 좋으면 선업이 되고 나쁘면 악업이 됩니다. 그리고 이 행위는 반드시 결과를 초래합니다. 어떤 인연에 의해서 행위가 일어나면, 그 과보(果報)가 뒤따라 업으로 인한 인과의 법칙이 성립됩니다. 업이 종자가 되어 이것과 일치되는 결과의 과보가 온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윤회설은 업설과 인과설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중생의 업이 남아 있는 한 윤회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불교신앙에서 이 업을 소멸하자는 참회 신앙이 있는데 업이 소멸되면 윤회가 끝나고 윤회가 끝난 세계를 열반의 세계 혹은 앞서 말한 대로 해탈의 세계라 합니다.

중생이 업을 지어 그 과보로 태어나는 공간적 범위를 구분하여 삼계(三界), 또는 육도(六道)라 합니다. 삼계는 세 세계라는 말로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가 그것입니다. 욕계란 욕망으로 생활하는 세계로 인간세상을 위시한 축생의 세계가 있고 천상에 사는 사람과, 그 곁에 있는 아수라 그리고 지옥과 아귀의 육도가 모두 욕계에 속합니다. 이 세계는 모두 본능적 욕구가 있어 이것을 의지하여 업을 지으면서 생활하는 곳입니다.

지안스님강의. 월간반야 2001년 11월 (제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