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는 당시 인도에서 유행하던 여러 외도의 사상을 세가지의 유형으로 나누어 그 잘못을 비판하였는데 각각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숙작인론(宿作因論):인간의 존재는 과거에 행한 행위에 의해 규정된다는 견해로서 자이나교가 이 에 해당된다. 존우론(尊祐論):자재신의 자재력에 의해 일체가 전개된다고 하는 전통적인 브라만 사상이다. 즉 신이 존재한다는 상견(常見)에 입각한 견해이다. 무인무연론(無因無緣論):자아와 세계의 나타남에는 논리적 타당성을 갖는 특별한 원인 조건이 없 다고 하는 자이나교와 브라만 이외의 모든 견해로 결합인론(結合因論)과 숙명론(宿命論) 그리고 회의설(懷疑設) 등이 있는데 이 모두 단견에 처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크게 세가지로 구분되는 외도의 설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셨다. 첫째 실증성의 여 부로서 숙작인론, 존우론, 무인무연론에는 납득할 수 없는 논리적 비약이 있고 단상(斷常)에 치우 쳐 실증성을 무시하고 있다. 두 번째로 상견(常見)인 숙작인론과 존우론은 존재의 양태를 업에 의 한 것과 신의 조작에 의한 것으로 여기어 인간의 죄악문제가 설명되지 않고 우리 인간에게는 잘 살 려는 의욕과 노력은 있으나 이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이 밖에도 외도의 설은 <사문과경(沙門果經) > 등의 경전에 “육사외도(六師外道)의 설”, “62가지의 잘못된 견해”등으로 나타나 있으며, “10사문 의 무리”를 열거한 경전도 있다. 자이나교의 전적(典籍)에 “4종”, “360여 종의 이설”이라는 기술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기록에 남겨져 있지 않은 많은 고행자나 수행자가 존재하고 있어서 이들이 제 각기 자기의 생각하는 바를 주장하여 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도 후의 부처님은 시종 이들 사상가의 대부분에 공통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물론과 무도덕, 무윤리론에 대해서, 그것은 진리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반론을 펴왔다. 세속에서의 만족스러운 생활을 버리고 생, 노, 병, 사와 같은 인간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온 부처님에게 이들 사상가들의 논 쟁은 한낱 헛된 공론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유명한 “독화살의 비유”는 이 같은 상황 을 명쾌하게 나타내 주고 있다. 즉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독이 퍼지기 전에 독화살을 뽑고 치료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백해무익한 공론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해탈의 길을 걸어야 함 을 비유로써 일깨워 준 것이다.
[월:] 2016년 04월
홀로 산림의 초당에서
독애임로만권서 獨愛林盧萬卷書 홀로 산림의 초당에서 책이나 즐기며
일반심사십년여 一般心事十年餘 한 가지 마음으로 십년세월 넘겼다.
이래사흥원두회 邇來似興源頭會 요새 와서 근원에 마주친 것 같아
도파오심간태허 道把吾心看太虛 도틀어 내 마음 휘잡아 툭 트인 태허를 본다.
도학을 닦는 공부인은 자기가 추구하는 진리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항상 품고 산다. 만약 이것을 망각하면 우선 자기 자신을 바로 만날 수가 없다. 참선 수행에 있어 이른바 화두라는 것이 바로 자신을 틀어잡는 응집력이다. 학문을 하거나 예술을 하거나 바로 자기 자신을 틀어잡는 응집력이 갖춰져야 한다. 이것이 있으면 자아상실을 면할 수 있다. 사상과 이념이 근본의 이치 그 자리에 이르지 못하면 갈등만 부추기는 망상체계에 불과해 자신을 이롭게 하지 못하고 남을 이롭게 하지 못한다.
도를 틀어잡고 툭 트인 태허를 모았다는 이 시는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19살 때 지었다고 알려진 시이다. 물론 성리학을 탐구하여 이기(理氣)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유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시이지만 불교의 선과 상통하는 일종의 선시라고 할 수 있는 시이다. 퇴계의 생애가 고고한 학문의 일로 정진의 길이었음을 보여주며 임종시에 선승처럼 앉아서 숨을 거두는 장면을 보여 주었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5년 11월 제60호
헛된 인연 잘못알고
망인제연희칠년 妄認諸緣希七年 헛된 인연 잘못 알고 살아온 77년이여!
창봉사업총망연 窓蜂事業摠茫然 창가에 부딪치는 벌처럼 해온 일도 부질없어라
홀등피안등등운 忽登彼岸騰騰運 훨훨 털고 문득 저 언덕에 올라가면서
시각부구해상원 始覺浮 海上圓 비로소 바다 위에 거품인 줄 이제 알았네.
이 시는 범해각안(梵海覺岸)스님이 남긴 임종게(臨終偈)다. 범해 스님은 조선조 순조 20년에 태어나 고종 건양(建陽) 원년 1896년에 입적한 스님으로 선교를 섭렵해 학덕이 높았으며, 유서에도 밝은 학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염불에도 조예가 깊어 재공의식에 능했던 거장이었다.
초의(草衣)선사를 의지해 구족계를 받고 선교의 수학을 거쳐 두륜산(頭輪山)의 진불암(眞佛庵)에서 개당하여 <화엄경>과 <범망경>을 강설하고 선리(禪理)를 가르쳤다. 22년동안 학인들을 가르치며 제방을 순력하다가 다시 두륜산의 대둔사(大屯寺)로 돌아와 학인들을 가르쳤다. 77세에 입적한 것으로 되어 있다.
임종을 앞두고 지난 생애를 회고하고 보니 창가에 부딪치는 벌처럼 해온 일이 부질없었다고 하면서 무상 속에 살아온 생애가 바다 위의 거품 같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