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산창에 기대니

독의산창야색한 獨倚山窓夜色寒 홀로 산창에 기대니 밤 기운이 차갑다

매초월상정단단 梅梢月上正團團 매화가지 끝에 달은 떠 둥글구나

불수갱환미풍지 不須更喚微風至 봄바람 불러올 일 무어 있겠나?

자유청향만원간 自有淸香滿院間 맑은 향기 저절로 집 안에 가득하네.

이 시는 퇴계 이황이 도산서원에서 달밤에 매화를 보고 읊은 시다. 원제목이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라 되어 있다. 차가운 산골의 밤, 달빛마저 차가운데 청빈하고 지조 있게 사는 도학자는 가슴에 천지의 기를 느끼며 달빛 젖은 사색에 몰두한다. 뜰에 심은 매화는 어쩌면 자신의 성품을 상징하는 꽃일 것이다. 그 매화가지 끝에 마침 보름달이 걸려 있다. 인동의 초목이 봄을 기다리며 산자락에 섰는데 매화 일지향이 뜰에 가득하다.

퇴계는 매화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매화시첩>이란 시집 안에 매화를 읊은 시가 무려 104수나 된다. 정한강(鄭寒岡)은 집 둘레에 백여 그루의 매화를 심어 놓고 자기 집을 백매원(百梅園)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옛날의 선비나 학자들이 매화를 특히 좋아했다는 사실은 매화의 기상이 청아한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군자에 비유한 것도 그렇고 아무튼 매향이야말로 최고의 향취를 사람에게 선사한다. 사람의 인격에서 풍기는 향기가 있다면 그 역시 매화 향기와 같을 것이다. 맑고 은은한 매화의 이미지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기실은 살아나야 할 것이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3년 2월 (제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