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에 달지고

월락서봉효경명 月落西峰曉磬鳴 서산에 달 지고 새벽 풍경 울리니

죽풍소슬주신청 竹風蕭瑟做新晴 댓바람 소슬한 게 기분 맑게 하구나

연단예흘빙경궤 蓮壇禮訖凭經几 불단에 예불하고 경상에 기대니

재시선창일반명 纔是禪窓一半明 이제사 선창이 반쯤 밝아오네

연파(蓮坡·1772~1811)대사는 『아암유집(兒庵遺集)』이라는 문집을 남겼다. 어려서 대둔사에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는데 법명은 혜장(惠藏)이었고 법호가 연파였다. 자호를 아암이라 하여 문집의 이름을 『아암유집』이라 한 것이다. 27세때 당시의 고승 정암(晶巖)대사의 인가를 받아 그의 법을 이었으나 연담유일(蓮潭有一)을 깊이 존경하였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를 왔을 때 벽련사에 다산이 촌로차림으로 들어와 연파대사를 만나 담론을 나눈 것이 인연이 되어 대사가 입적한 후 다산이 대사의 비명을 지었다.

위의 시는 청신한 산사의 새벽 분위기에 어우러져 있는 맑은 정신이 배어있는 시이다. 제목이 <산거잡흥>으로 되어 있는 시의 첫수인데 새벽달 질 무렵 한줄기 바람에 풍경이 울릴 때 법당에 가 예불을 하고 돌아와 경상 앞에 앉아 잠시 명상을 하는데 창호지 밖으로 날이 새는지 어둠이 걷히며 먼동이 트는 밝음이 느껴지는 전경을 묘사했다. 절에서 잠을 자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산사의 새벽 분위기는 참으로 청신하다. 산사의 새벽을 체험해 보시라.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6년 10월 제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