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지변(天災地變)

중국 쓰촨성(四川城)의 지진 뉴스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인적 물적 피해규모는 얼마나 될까. 언제쯤이면 복구가 될까. 복구에 필요한 예산은 얼마쯤 될까. 과연 완전 복구가 가능할까. 세인의 짧은 지식과 부족한 정보, 무딘 상상력으론 엄두가 나질 않는다.

1976년 중국 탕산(唐山) 대지진 때엔 25만 명의 사망자를 냈고, 1995년 한신(阪神) 대지진으로 65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2004년엔 동남아시아에 강도 9.0의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해일) 사태가 발생하여 인도네시아에만 11만 명이 사망하였고, 최근 미얀마에선 싸이클론으로 사망자는 확인되지 않고 이재민이 20만 명 정도라고 외신이 전한다. 이번에 또 중국의 쓰촨성에서 진도 7.8의 강진이 일어나 그 피해 규모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다 여진마저 계속되어 사태가 언제까지 계속될 지 걱정이다.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는 동북아의 주변국들의 재난은 우리와는 무관한가. 우리는 이런 천재지변으로부터 안전한가. 괜히 불안해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대지진은 유라시아 지각판에 속한 티베트고원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중국 쓰촨성 청두(成都)시 서북쪽에 위치한 룽먼산(龍門山) 단층의 활동을 유발시킨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았다. 이 쓰촨성에서는 1933년 8월에도 규모 7.5의 지진이 발생하여 9300여명이 사망한 바 있다고 한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번 지진을 불교를 신봉하는 티베트인의 독립ㆍ자치시위를 유혈 진압한 중국정부에 대한 ‘부처님의 분노’로 해석하기도 했다. 부처님오신날(12일)에 발생하였고,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에베레스트 등정을 마치고 다음달 중순 티베트 진입을 앞둔 시점에서 티베트고원이 요동쳤기 때문이란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지만.

또 하나의 원인으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싼사(三峽)댐’이다. 이 댐은 양츠강 유역의 홍수 피해를 줄이고 클린 에너지를 공급하겠다는 의도로 건설되었지만 오히려 환경문제 등에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댐은 규모가 우리나라 소양강댐의 14배나 되는 세계최대라고 하니 그 저수량(총 저수량 390억톤)의 수압이 이곳 지각층을 눌러서 재앙의 규모가 더 커졌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보면 이번 대지진은 물론 천재지변이 큰 원인이겠지만 여기다가 인간의 탐욕과 무지와 인간중심주의 사상으로 인한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훼손, 생태계의 파괴 등 인재(人災)도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껏 인간은 일부이긴 하지만 지식층에서 나름대로 인간중심주의를 외치면서 인간의 자유와 이성이 자연을 지배ㆍ정복해야 하며, 인간의 존엄과 권위를 위해서는 신이 존재할 수 없다고 외치고 있다.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인간은 자연을 지배ㆍ정복하고, 자연을 마음껏 이용하여 편의와 행복을 누려야 하며, 학문ㆍ기술ㆍ사상은 인간에게 만족과 영광을 줄 수 있다고 큰소리쳐 왔다.

그런데 이게 뭔가. 1976년 탕산에선 잠자리와 새 수만 마리가 떼지어 수백 미터를 날아갔는데 사람들은 이를 눈여겨보지 않았고 급기야 며칠 뒤 대지진의 발생으로 25만 명이나 사망하는 사고가 있지 않았는가. 2004년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때에도 직전에 해안의 동물들이 줄지어 언덕으로 대피하는 모습들이 목격되어 보도되지 않았는가. 이번에도 지진이 쓰촨성을 뒤흔들기 사흘 전 진앙지 인근 마을에서 두꺼비 10만 마리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사진이 보도되었는데 이들은 차와 사람에 밟혀죽으면서도 줄곧 한 방향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불안해 하였지만 당국에선 ‘산란기 이동이니 환경이 좋아졌다는 소식’이라고 반겼다니, 하찮은 미물들의 경고라고 무시해버린 오만한 인간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이즈음 들어 자연 앞에서, 영원 앞에서, 무한 앞에서 인간의 왜소함이 더 절실히 느껴지는 것 같다. 쓰촨성의 폐허에서 가진 자와 없는 자, 배운 자와 무식한 자, 권세와 명예를 누리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구별이 있던가.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태자 시절 온갖 부귀와 영화, 넘치는 소유, 장차 왕위가 보장된 그 모든 것을 가졌지만 진정한 삶, 영원한 행복을 찾기 위해 이 모두를 포기하지 않으셨던가. 이번 중국의 대 참사는 인간에게 과연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 것이다.

김형춘 香岩 (반야거사회 회장 창원전문대 교수) 글. 월간반야 2008년 6월 제91호.

찾고 기다린 선배

후덥지근하고 지리한 장마날씨만큼이나 답답한 세태다. 너무나 빠르게 변해서인지, 미래를 향한 변화와 전통을 고수하고자 하는 신구의 갈등이 심해서인지, 도무지 변화가 없는 정체상태여서 그런지 분간할 수가 없다. 조간신문을 읽고 나면 하루종일 머리가 뒤숭숭하고, 석간을 읽고 나면 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는 말이 실감난다.

물질적인 풍요와 쾌락의 추구이외에는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바라는 가치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기 이전의 홍몽이 이러했던가. 땅은 왜 이렇게 답답하고 뒤숭숭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는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어려움은 있게 마련이지만 흔들리고 방황하지 않는 사람, 고민하고 마음 아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가히 중생은 번뇌를 이고 산다는 말이 오늘날을 두고 한 말이리라.

철들고 난 뒤로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괴로움을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프고 괴롭고 외로울 때면 인간은 으레 본래의 그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서 인간을 그리워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참된 위무를 받고싶어 하고, 삶에의 올바른 방향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를 서운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불어 의논하고 걱정하고 이끌어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니 더욱 막연하고 외로와 하고 방황할 수밖에.

뭐가 뭔지 좀 속 시원하게 옳고 그름과, 선하고 악함을, 그리고 아름답고 추함을 분명히 알 수 있게 가르쳐주고 안내해주는 이가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가야할 길을 자신 있게 제시하여 주고 스스로 앞장서 나아가는 믿음직한 그 누가 있으면 좋겠다. 마음에서 우러나 존경하고 믿고 따를 수 있는 선배가 아쉽다. 어려움을 이해하여 주고 갈등을 풀어주며, 방황할 때에 확신과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아쉽다. 참으로 어려울 때에 손길을 뻗쳐볼 데가 없으니 말이다.

이런 선배가 그리웠다. 나에게 만의 선배가 아닌 우리 모두의 멋진 선배를 갖고 싶었다. 공정과 청백을 정치의 요체로 알고 참으로 나라와 겨레를 걱정하며, 매사에 한발 물러서서 한번 더 생각해 보는 여유와 자제를 갖고, 원숙한 언행으로 솔선 수범하는 멋진 정치를 하는 원로 선배를 보고싶었다.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주장할 수 있는 지적인 성실성과 정신적 용기를 가진 지식인을 선배로 때론 스승으로 모시고 싶었다. 진실과 겸손을 바탕으로 대화와 합리를 통한 민주적인 경영으로 봉사하는 자세를 겸비한 기업인에게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을 기꺼이 투자하고 싶었다. 남의 것이 아닌 우리의 산하와 전통과 문화유산의 바탕에다 우리의 얼을 아름답게 수놓아, 가장 한국적인 예술이 가장 세계적인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예술을 위해 외길을 걷는 선배와 더불어 취하도록 마시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추고 싶었다.

어쩌면 세상에는 이렇듯 매력 있는 선배들이 많이, 아니면 더러는 있을 법도 한데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눈을 가진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푸념이었을까. 그런데 최근 나의 이 생각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물론 어제오늘의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나의 이력서의 종교 난에 확실히 ‘불교’라고 쓰기 시작한지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적어도 예전에 나는 ‘극락과 천당과 하늘나라의 벽을 허물고 지고의 선을 추구하면서 배타와 질시와 반목을 없애고,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구원에 전념하는 종교인에게 신이 아니라도 좋으니 귀의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러면서도 종교는 ‘맹신(盲信)’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 같기에 무작정 절을 찾고 절을 하고 스님의 말씀을 새겨듣길 4반세기. 이순(耳順)에 이르러서야 ‘탐욕’과 바른 ‘원(願)’을 구별할 수 있을 것 같고, 화를 낼 때와 냉정해질 때를 구분할 수 있을 것 같고, 지식과 지혜 중 어느 것이 더 소중한 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참으로 어려울 때에 내 손길을 잡아줄 선배 없음을 아쉬워했던 자신이 스스로 부끄러워진다. 이렇게 가까이에 정신적인 안식처가 있었고, 이끌어 주시는 스승이 계셨는데. 역시 속인의 눈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나무관세음보살.

김형춘 (반야거사회 회장, 창원전문대교수) 글. 월간반야 2006년 8월 제69호

참된배려

2년여 전에 ‘상대방의 입장에서’라는 글을 쓰면서 ‘배려는 순전히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닌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도 철이 덜 들어서인지 깨닫지 못한 부분이 있었기에 스스로의 아둔함을 자인하면서 또 ‘배려’에 대한 최근 고민의 일단을 정리해 본다.

장성한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면 아들딸을 시집 장가보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을 것이다. 노부모를 모셔본 사람이면 남으로부터 ‘호상(好喪)’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 텐데 하고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런 길흉사(吉凶事)를 당하면 자신의 일이든 남의 일이든 고민을 하는 게 ‘부조금(扶助金)’이다.

자신의 집 행사에는 ‘어느 범위까지’, ‘누구누구까지’ 청첩장을 내고 연락을 할 것인가가 최대의 고민이고, 남의 집 행사에는 부조를 ‘얼마?’ 할 것인가가 고민의 주체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우리네 결혼이나 장례문화 자체부터 검토해 봐야 하겠지만 그건 당장 뜯어고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우선 부조금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이 셋을 모두 성혼을 시켰으니, 그것도 우리 내외가 현직에 있을 때 해결하였으니(?) 남들이 보면 복 받은 일이라 하겠다. 아이들 혼사 이전엔 예사로 생각했던 ‘경조금’의 액수가 큰아이 둘째 아이를 결혼시키면서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었다. 전에는 무조건 내 호주머니 생각만 했고 무조건 액수를 많이 하는 게 잘하는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많이 하면 상대방도 다음 우리집 행사 때엔 그 액수를 맞추는 것이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는 경조사의 ‘부조’도 무척 조심스러워졌다. 상대방의 형편에 맞춰 하는 게 상대를 배려하는 게 아닐까.

추석을 앞둔 얼마 전의 일이었다. 별것 아니지만 설날과 추석이 다가오면 은사․선배․지인과 이웃 등 평소 은혜와 사랑을 입은 몇 분들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보낸다. 멀리 계시는 분들에겐 우편으로, 가까이 계시는 분들에겐 아들과 함께 돌면서 그 분과의 관계도 이야기하고 인사도 드리게 한다. 그런데 가까이 계시는 분들은 자연스레 선물을 주고받는 식이 되어버렸다.

처음 내가 의도한 바와는 사뭇 다르게 관행이 되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사연도 없는데 일방적으로 중단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전 2십 년 넘게 호형호제(呼兄呼弟)해온 형님과 다른 일로 통화를 하다가 ‘명절 선물’이야기를 꺼내셨다. 성인이 된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도 어색하고 하니 선물 주고받는 것을 하지 않는 게 어떻겠느냐는 뜻이었다. 순간적으로 좀 당황했지만 그렇게 하자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지금껏 나는 인정으로 상대를 배려하느라고 해왔는데 상대가 나에게 맞추어 화답으로 선물을 하느라 어려움을 겪은 모양이다. 그 말을 꺼내기까지 상대는 얼마나 고민했을까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상대를 배려하면서 살아왔는가.

오다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향 사람, 학교 동창, 직장 동료 등 인연 맺은 사람들끼리 모임을 가진다. 내게도 여러 모임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편안한 모임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점심 모임’이다. 주중에 적당한 날(주로 수요일)을 미리 장소만 연락하면 알아서 모이는데, 밥값을 내는 차례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점심 먹고 헤어질 때쯤이면 ‘다음 주엔 제가 당번할게요’ 하면 끝이다. 문자로 연락하면 모여서 잡담하고 떠들면서 식사하고 헤어진다. 딱히 회원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회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직업이나 직장이 같은 것도 아니고, 식당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식대가 얼마 정도라고 정해진 것도 없다. 십 년 정도 되었으니 꽤나 세월이 흘렀다. 물론 잘 나오다가 얼굴이 보이지 않은 사람도 있고 새 식구가 되어 나오는 사람도 있다. 이따금씩 초청 인사가 당일 초청되기도 한다.

이 식구들 가운데 초창기부터 참여한 한 친구가 요즈음 결석이 잦다. 예사로 생각하면서 이 친구가 문자로 불참의사를 밝혀오면 나는 제명(?)시키겠다고 위협을 하곤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나와 둘이면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으니 식대를 지불하는 횟수가 좀 부담스러운 같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불참한다고 나무란 것 같다.

진정한 배려는 어떤 것인가. 상대의 입장에서 몇 번쯤 생각해보고 얼마를 고민해야 할까. 이순(耳順)이 지난지도 몇 해가 되었는데 얼마를 더 살아야 철이 들까. 다시금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되뇌이고 멀기만 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생각하게 된다.

김형춘 교수님 글. 월간 반야 2010년 10월 1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