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여 전에 ‘상대방의 입장에서’라는 글을 쓰면서 ‘배려는 순전히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닌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도 철이 덜 들어서인지 깨닫지 못한 부분이 있었기에 스스로의 아둔함을 자인하면서 또 ‘배려’에 대한 최근 고민의 일단을 정리해 본다.
장성한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면 아들딸을 시집 장가보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을 것이다. 노부모를 모셔본 사람이면 남으로부터 ‘호상(好喪)’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 텐데 하고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런 길흉사(吉凶事)를 당하면 자신의 일이든 남의 일이든 고민을 하는 게 ‘부조금(扶助金)’이다.
자신의 집 행사에는 ‘어느 범위까지’, ‘누구누구까지’ 청첩장을 내고 연락을 할 것인가가 최대의 고민이고, 남의 집 행사에는 부조를 ‘얼마?’ 할 것인가가 고민의 주체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우리네 결혼이나 장례문화 자체부터 검토해 봐야 하겠지만 그건 당장 뜯어고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우선 부조금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이 셋을 모두 성혼을 시켰으니, 그것도 우리 내외가 현직에 있을 때 해결하였으니(?) 남들이 보면 복 받은 일이라 하겠다. 아이들 혼사 이전엔 예사로 생각했던 ‘경조금’의 액수가 큰아이 둘째 아이를 결혼시키면서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었다. 전에는 무조건 내 호주머니 생각만 했고 무조건 액수를 많이 하는 게 잘하는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많이 하면 상대방도 다음 우리집 행사 때엔 그 액수를 맞추는 것이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는 경조사의 ‘부조’도 무척 조심스러워졌다. 상대방의 형편에 맞춰 하는 게 상대를 배려하는 게 아닐까.
추석을 앞둔 얼마 전의 일이었다. 별것 아니지만 설날과 추석이 다가오면 은사․선배․지인과 이웃 등 평소 은혜와 사랑을 입은 몇 분들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보낸다. 멀리 계시는 분들에겐 우편으로, 가까이 계시는 분들에겐 아들과 함께 돌면서 그 분과의 관계도 이야기하고 인사도 드리게 한다. 그런데 가까이 계시는 분들은 자연스레 선물을 주고받는 식이 되어버렸다.
처음 내가 의도한 바와는 사뭇 다르게 관행이 되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사연도 없는데 일방적으로 중단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전 2십 년 넘게 호형호제(呼兄呼弟)해온 형님과 다른 일로 통화를 하다가 ‘명절 선물’이야기를 꺼내셨다. 성인이 된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도 어색하고 하니 선물 주고받는 것을 하지 않는 게 어떻겠느냐는 뜻이었다. 순간적으로 좀 당황했지만 그렇게 하자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지금껏 나는 인정으로 상대를 배려하느라고 해왔는데 상대가 나에게 맞추어 화답으로 선물을 하느라 어려움을 겪은 모양이다. 그 말을 꺼내기까지 상대는 얼마나 고민했을까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상대를 배려하면서 살아왔는가.
오다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향 사람, 학교 동창, 직장 동료 등 인연 맺은 사람들끼리 모임을 가진다. 내게도 여러 모임들이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편안한 모임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점심 모임’이다. 주중에 적당한 날(주로 수요일)을 미리 장소만 연락하면 알아서 모이는데, 밥값을 내는 차례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점심 먹고 헤어질 때쯤이면 ‘다음 주엔 제가 당번할게요’ 하면 끝이다. 문자로 연락하면 모여서 잡담하고 떠들면서 식사하고 헤어진다. 딱히 회원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회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직업이나 직장이 같은 것도 아니고, 식당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식대가 얼마 정도라고 정해진 것도 없다. 십 년 정도 되었으니 꽤나 세월이 흘렀다. 물론 잘 나오다가 얼굴이 보이지 않은 사람도 있고 새 식구가 되어 나오는 사람도 있다. 이따금씩 초청 인사가 당일 초청되기도 한다.
이 식구들 가운데 초창기부터 참여한 한 친구가 요즈음 결석이 잦다. 예사로 생각하면서 이 친구가 문자로 불참의사를 밝혀오면 나는 제명(?)시키겠다고 위협을 하곤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나와 둘이면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으니 식대를 지불하는 횟수가 좀 부담스러운 같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불참한다고 나무란 것 같다.
진정한 배려는 어떤 것인가. 상대의 입장에서 몇 번쯤 생각해보고 얼마를 고민해야 할까. 이순(耳順)이 지난지도 몇 해가 되었는데 얼마를 더 살아야 철이 들까. 다시금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되뇌이고 멀기만 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생각하게 된다.
김형춘 교수님 글. 월간 반야 2010년 10월 1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