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가깝고 달이 멀어 달이 작게 보여져

山近月遠覺月小(산근월원각월소) 산이 가깝고 달이 멀어 달이 작게 보여져

便道此山大於月(변도차산대어월) 이 산이 달보다 크다고 말하지만

若人有眼大如天(약인유안대여천) 만약 하늘처럼 큰 눈을 가진 이가 있다면

還見山小月更闊(환견산소월갱활) 산이 작고 달이 큰 걸 다시 보리라.

중국의 왕양명(王陽明: 1472~1528)은 본명이 왕수인王守仁으로 심즉이(心卽理)라는 학문적 주장을 내세운 대학자였다. ‘마음이 곧 이치’라는 이 말은 외계의 사물에서 이(理)를 찾는 주자학의 격물론(格物論)을 반박 마음속의 부정(不正)을 없애고 본래의 순수한 양심을 발휘될 때 이치는 바로 마음속에 있다는 학설을 내세워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새로운 설을 제시하였다. 마음 안에 법이 있다는 불교의 말과 가까운 설이라 볼 수 있다. 양명을 불교에서는 금산대사라는 고승의 후신이었다고 하는 설도 있다.

위의 시는 양명이 11살 때 지었다는 시이다. 달밤에 산 너머 달을 볼 때 분명 가까운 산은 크게 보이고 하늘에 뜬 달은 작게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눈앞의 산보다는 멀리 보이는 달이 더 큰 것이다. 하늘처럼 큰 눈을 가진 사람은 달을 더 크게 본다는 말이 미묘하다. 도안(道眼)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천지보다 더 큰 진리를 만난다는 뜻이 들어 있는 말 같기도 하다.

산은 무심히 푸르고

산자무심벽(山自無心碧) 산은 무심히 푸르고

운자무심백(雲自無心白) 구름은 무심히 희구나

기중일상인(其中一上人) 그 가운데 스님 한사람

역시무심객(亦是無心客) 또한 무심한 나그네로세

무심시라 할 수 있는 이 시는 이조 선시를 대표하는 서산스님의 시이다. 청허집에 수록되어 있는 이 시의 원 제목은 제일선암벽(題一禪庵壁)이라 되어 있다. ‘일선암’이라는 암자의 석벽에 썼다는 시이다.

요즈음처럼 무심이 그리운 때도 없을 것 같다. 무심이 그립다는 말은 도(道)가 그립다는 말이다. 명색이 도 닦는 사람이 도가 그립다는 말이 모순인 것 같지만 도 닦는 사람이기 때문에 도가 그리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이 더 그리운 법이 아니겠는가? 세상이 온통 힘으로 대결하여 승부를 결정짓자는 살벌함이 느껴지는 시대다. 싸움을 걸 상대를 찾고 있는 위협감이 은연중 와 닿기도 하는 것 같다. 또 무슨 사건이 터져 충격을 줄 것인가 불안하기도 하고 테러 공포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는다 하더니, 전쟁의 위기가 중동의 하늘을 덮고 있다는 외신의 보도가 나오고 있다. 무심이란 공기처럼 아무 색깔이 없는 마음이다. 감정이 북받친 희노애락의 동요로 누구와도 마찰이 없는 무심이 바로 도라고 선에서는 말한다. 산은 절로 푸르고 구름은 절로 희다. 그 속에 사는 사람 그도 역시 무심한 나그네라 했다. 사실 인생은 누구나 덧없는 나그네이다. 무심히 구름처럼 왔다 가는 나그네이다.

지안스님 해설. 2003년 1월 (제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