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무심벽(山自無心碧) 산은 무심히 푸르고
운자무심백(雲自無心白) 구름은 무심히 희구나
기중일상인(其中一上人) 그 가운데 스님 한사람
역시무심객(亦是無心客) 또한 무심한 나그네로세
무심시라 할 수 있는 이 시는 이조 선시를 대표하는 서산스님의 시이다. 청허집에 수록되어 있는 이 시의 원 제목은 제일선암벽(題一禪庵壁)이라 되어 있다. ‘일선암’이라는 암자의 석벽에 썼다는 시이다.
요즈음처럼 무심이 그리운 때도 없을 것 같다. 무심이 그립다는 말은 도(道)가 그립다는 말이다. 명색이 도 닦는 사람이 도가 그립다는 말이 모순인 것 같지만 도 닦는 사람이기 때문에 도가 그리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이 더 그리운 법이 아니겠는가? 세상이 온통 힘으로 대결하여 승부를 결정짓자는 살벌함이 느껴지는 시대다. 싸움을 걸 상대를 찾고 있는 위협감이 은연중 와 닿기도 하는 것 같다. 또 무슨 사건이 터져 충격을 줄 것인가 불안하기도 하고 테러 공포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는다 하더니, 전쟁의 위기가 중동의 하늘을 덮고 있다는 외신의 보도가 나오고 있다. 무심이란 공기처럼 아무 색깔이 없는 마음이다. 감정이 북받친 희노애락의 동요로 누구와도 마찰이 없는 무심이 바로 도라고 선에서는 말한다. 산은 절로 푸르고 구름은 절로 희다. 그 속에 사는 사람 그도 역시 무심한 나그네라 했다. 사실 인생은 누구나 덧없는 나그네이다. 무심히 구름처럼 왔다 가는 나그네이다.
지안스님 해설. 2003년 1월 (제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