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밤을 말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찾아와 자기 처지를 하소연 하다가 슬퍼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다. 우연이 절에 왔다 법당에 참배하면서부터 눈물이 흘러내리더라 하였다. 집안의 가족 관계 속에서 오해가 얽혀 누구로부터 모함까지 받고 있어 정말 속이 상해 살 수가 없다고 하였다. 나는 이 사람이 혹 또 자신을 비관하고 엉뚱한 마음을 먹을까봐 걱정이 되어 여러 가지 위로의 말을 하여 주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나와 남을 이루어 산다. 비록 한 가정의 식구라 하여도 그렇다. 자타가 없이 산다는 것은 법부의 생활 경계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와 네가 있으므로 서로의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므로, 주관과 객관이 나눠진 분별 상태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다.

번뇌가 왜 일어나는가 하면 주관과 객관이 나눠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며, 번뇌가 일어나면 사람들은 생각이 움직여 일념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흐트러진 마음이 되어 때로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수도 허다하게 일어나게 된다. 그리하여 중생을 번뇌의 존재로 보는 것이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번뇌가 얼마나 될까? 흔히 팔만사천 번뇌라는 말도 쓰지만 어디 번뇌가 그것뿐이겠는가? 사홍서원에는 다함이 없는 번뇌를 끊는다 하였다.

그런데 중생이 아무리 번뇌를 많이 가지고 있다 하여도 그 번뇌는 우리 마음 전체와 비교해서 보면 우파니사타분의 일도 안 되는 것이라 한다. 우파니사타분이란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나오는 말로 가장 적은 극미소(極微小)의 분수(分數)를 말한다. 0에 소수점을 찍어 ‘영점(0.)’하고 0을 수없이 붙이고 나서 마지막에 ‘1’하는 수이다.

“중생의 번뇌가 아무리 많아도 우리 마음 전체에서 보면 우파니사타분의 ‘1’에 불과하다.”

이게 무슨 말일까? 번뇌로 사는 중생들이 번뇌가 없는 참 마음의 진상을 모른다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가령 마음을 공간에 비유하여 말하면 우리 마음은 우주의 공간보다 큰 것인데 번뇌가 일어나는 부분은 가는 먼지보다 작다는 것이고, 또 비유하면 망망한 큰 바다 전체가 우리 마음 전체라면 번뇌가 일어나는 마음은 한 방울의 물보다 적어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물의 한 분자보다 양이 적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생의 번뇌는 기실 극미량에 불과한 것인데 왜 이 번뇌 때문에 그렇게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또 원망하며 증오하고 사는 것일까?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절망감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지 않던가? 그 이유를 전체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신론]에서는 번뇌가 일어나는 마음을 ‘망심(妄心)’ 곧 ‘생멸심(生滅心)’이라 하고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마음을 ‘진심(眞心)’ 곧 ‘진여심(眞如心)’이라 하였다. 사람의 마음에 ‘진여문’과 ‘생멸문’의 두 문이 있다 하였다. 참되고 한결같은 진여에 들어가는 것이 부처가 되는 것이라 하였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살펴 볼 일이 있다. 내 번뇌 때문에 오늘 내가 불행하지 않았는가 하는 문제다. 남을 흉보고, 욕하고, 비방하고 한 일이 있었다면 오늘 하루의 내 삶이 그만큼 불행했다는 증거가 된다. 문제는 내 본래의 마음 ‘진여심’에서는 흉보고 욕하고 비방할 일이 없다는 점이다. 우선은 생각을 고요하고 맑게 하여 전체의 마음으로 돌아갈 줄 알아야 한다.

왜 털끝 같은 극미소의 마음이 되어 스스로를 불행하게 하는가? 이러면 나는 끝내 행복 찾기를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내 마음 전체 속을 들여다보면 내 행복이 자리하고 있는 공간이 어딘가에 반드시 있다. 그걸 못 찾고 못 보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허물일 수밖에 없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의 여러 가지 물정에 부딪치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마음이 좁아지면서 자꾸 화나고 싫은 일이 많이 생긴다. 공연히 누군가가 원망이 되고 증오스럽기까지 하다. 이럴 때 정신 차려야 한다. 바로 내 번뇌 때문에 내가 스스로 불행해 지는 때이다. 마음이 어두워지면 끝없는 번뇌가 생긴다. 마음은 본래 태양보다 밝은 광명이라 하였다. 광명 그 자체에는 그림자가 없다.

지구에서는 낮과 밤이 있으나 해에는 밤과 낮이 없다. 언제나 밝은 햇볕이 끝없이 나오는 발광체이므로 해는 어둠을 모른다. 어둠을 모르기 때문에 해는 밤의 사정을 말하지 않는다. 사람도 마음이 해와 같아야 한다. 만물을 밝게 비춰주는 해처럼 남을 대해 줘야 하고 내가 잘 모르는 남의 사정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하면서 흉보고 욕하고 비방해서는 안 된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진실하고 깨끗하여 티가 없는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이네.”

다시 한 번 외워 보아야 할 문수보살의 말씀이다.

지안 큰스님 글. 월간 반야 2011년 1월 1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