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난새를 타고 푸른 허공에 올랐다가

몽과비란상벽허 夢跨飛鸞上碧虛 꿈에 난새를 타고 푸른 허공에 올랐다가

시지신세일거려 始知身世一遽廬 비로소 몸도 세상도 한 움막임을 알았네

귀래착인한탄도 歸來錯認邯鄲道 한바탕 꿈길에서 깨어나 돌아오니

산조일성춘우여 山鳥一聲春雨餘 산새의 울음소리 봄비 끝에 들리네

중국 송나라 때 대혜종고(大慧宗 ) 선사가 있었다. 간화선의 거장으로 당시의 사대부들과 교유하면서 서찰로 참선공부를 지도하였다. 그가 쓴 『서장(書狀)』이라는 책에는 42명의 사대부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유일한 여성이 등장하는데, 위 시의 작자 진국태부인이다. 30세에 미망인이 되어 40여년을 불교수행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아들이 출세하여 차남은 승상(정승)이 되고 큰아들도 요즈음 법무부 고위 관직인 제형(提刑)이 되었다. 본래 성씨는 허(許)씨였는데 고귀한 신분이라, 나라에서 준 진국태부인이라는 호칭을 썼다. 대혜스님이 이 부인의 편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부인이 정말 위 시와 같은 경지에 올라 정말 공부가 된 사람인가 의심을 하였다. 도겸이라는 스님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서야 의심이 풀려 대혜스님 자신이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참정, 유보학과 함께 대혜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는 42명 중의 3인이 된다.

꿈에 난새라는 새를 타고 허공에 올랐다는 말은 묘한 상징성이 있는 말이다. 높은데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세상은 작게 보이고 내가 커진 것 같으면서 집착하던 일에서 쉬이 초월되어 떠나짐을 느낀다. 그야말로 세상은 한 움막 같은 것이다 견고하지 못하고 잠시 임시로 머무는 거적대기 얽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서산스님도 만국도성이 개미집 같다 하였다. 멀리 보면 세상은 집착할 데가 없어진다. 프랑스의 르낭은 “별의세계에서 지상의 사물을 관찰하라”고 하였다. 꿈을 깨고 나면 몽경은 없는 것이고 또 없었던 것이다.

한단몽이라는 설화는 여생이라는 사람에 여옹이라는 도사를 만나 자기의 빈곤을 탄식하니, 여옹이 주머니에서 베개를 꺼내주며 이것을 베고 자면 부귀영화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했다. 여생이 베개를 베고 자다 꿈에 30여년의 부귀영화를 누렸는데 깨어보니 부엌에서 짓던 밥이 아직 익지도 않았더라는 설화로, 한바탕 꿈과 같은 허망한 일을 비유하는 말이다. 마지막 구절의 “깨고 보니 봄비 끝에 산새의 울음소리 들린다”는 말이 너무나 생생한 여운을 남긴다.

이 시를 감상하면 지루한 장마가 그치고 더위를 몰아내는 하늬바람이 불어왔나 보다고 느껴진다. 하늘에서부터 가을 기운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여름의 그 많던 뭉게 구름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빈방에 홀로 앉아 좌선에 여념이 없다가 밤이 되어 달 뜬 줄도 몰랐다. 선정에서 깨어나 창문을 열었더니 달 속의 계수나무 향기가 여기 저기 떨어진다. 계수나무 향기는 곧 달빛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활약했던 서산스님의 제자 사명스님이 쓴 시다. 지리산 어느 골짜기에 앉아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오는 절기를 느끼면서 지었는지 제목이 <靑鶴洞秋坐>라 되어 있다. 지금의 청학동이 아닌 속세와 멀리 떨어진 불로장생술을 닦는 도인들이 모이는 골짜기라는 전설적인 이상향을 상징하는 이름이 청학동이다. 하늘에 뜬 달빛이 땅에 비쳐오는 모습을 달 속에 있다는 계수나무 열매가 꽃잎처럼 떨어진다고 묘사하였다. 참으로 멋진 시구이다. 결국 달빛이 계수나무 열매의 향기라는 말이다. 때로는 먼 하늘을 바라보면 그리운 사람의 얼굴이 향기로 닦아옴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순수한 감정이다. 무심은 순수를 의미하는 것이지 아무 감정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3년 (제33호)

나누고 베풀고

요즈음 기업 활동에서 많은 이익을 내고 있는 대기업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화두가 되어 재계와 정부 안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는 상생을 위한 ‘나눔과 베풂’이 아닌가 싶다.

언제 이 나라가 조용한 적이 있었을까마는 지난 해 우리는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사건’으로 그 어느 해보다 안보 불안이 온 나라를 뒤숭숭하게 하였다. 여기다 하반기에는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가 사회 불안을 더욱 가중시켰다. 이로 인해 육류와 채소류 등의 가격 폭등에 덩달아 다른 물가까지도 뛰어 주부들은 물론 식당 등 영업을 하는 사람까지도 아우성이었다. 거기다 전세대란으로 집 없는 서민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러한 어려움의 원인이야 많겠지만 소시민의 눈에 띄는 것은 무엇보다 갈수록 극단적이고 야성적인 정치문화의 갈등과 소통의 불협화음이 심화되고 있는 사회문화, 전통문화 정책마저도 현실적 이윤추구와 일부 종교인들의 편향된 사고에 의해 상식의 뒷전으로 밀려나는데 있는 것 같다. 거기다 성장과 속도, 편의 위주의 정책이 자연과 환경을 병들게 한 댓가도 한 몫을 하였다고 본다.

지금도 서민경제가 어렵기는 매한가지인데 이웃 덕분에 현 정부가 한숨 돌리고 살판을 만난 것 같다. 이집트,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과 중동국가의 사태가 세인들의 관심을 나라 밖으로 끌어내 주었으니 말이다. 뒤이어 일본 동북지방의 지진과 해일은 언론과 모든 국민들의 관심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서민들은 그들의 어려움이 언론에 비친 쓰나미에 밀려 불평불만은커녕 입도 열지 못하고 있다. 어려운 서민 경제, 일본 수출길이 막힌 농민, 수출입이 막힌 중소기업, 어렵사리 일자리를 찾아 일본에 갔다가 황급히 돌아온 젊은이들, 망연자실해 있는 축산인들, 이들의 타는 가슴은 누가 달래주어야 할까.

비단 이웃나라의 재난이 아니라도 인류애는 물론, 우리도 자연재해에선 예외가 될 수 없으니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도와야 함은 당연하다. 그와 함께 아직도 과거에 대한 반성이 부족한 일본에게 보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먼저 가슴을 열고 베풀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외적인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면 자칫 우리 안의 문제가 소홀해질까 걱정이 된다.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를 복원하고 서민경제를 챙겨야 한다. 위로는 나라가 안정되어야 하고, 자연재앙이 없어야 하며, 아래로는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위기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정답은 늘 만들어져 있다. 어떤 문제든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하며,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고 동참해야 한다.

물론 공감과 동참의 의미는 ‘배려’와 ‘나눔’과 ‘베풂’의 문화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나라 안과 밖이 다를 수 없다. 스스로를 위한 배려는 ‘솔직’한 것이고, 이웃이나 남을 위한 배려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여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모두를 위한 배려는 ‘통찰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지난겨울처럼 혹독하게 추웠던 겨울이 우리의 기억 속에 얼마나 있었던가. 그래도 지금 봄은 우리 곁으로 오고 있지 않은가. 남도에는 매화와 산수유가 피고, 바다 건너 제주에선 벚꽃 소식이 들린다. 이 자연의 섭리처럼 자연 재앙도 인간사회의 고난과 역경도 언젠가는 극복되기 마련이다. 우리 인간이 어떻게 지혜를 모으는가가 문제다.

‘나눔과 베풂’의 보시는 아끼고 탐하는 마음을 쳐부수는 전초기지이며, 올바른 도(道)에 들어가는 첫 관문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아끼는 인색한 마음을 항복받게 되는 것이다. 이 마음이 지속되면 베푸는 마음이 계속되어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급기야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스스로 즐거워진다는 것이다.

김형춘 교수님 글. 월간 반야 2011년 4월 1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