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베풀고

요즈음 기업 활동에서 많은 이익을 내고 있는 대기업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화두가 되어 재계와 정부 안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는 상생을 위한 ‘나눔과 베풂’이 아닌가 싶다.

언제 이 나라가 조용한 적이 있었을까마는 지난 해 우리는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사건’으로 그 어느 해보다 안보 불안이 온 나라를 뒤숭숭하게 하였다. 여기다 하반기에는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가 사회 불안을 더욱 가중시켰다. 이로 인해 육류와 채소류 등의 가격 폭등에 덩달아 다른 물가까지도 뛰어 주부들은 물론 식당 등 영업을 하는 사람까지도 아우성이었다. 거기다 전세대란으로 집 없는 서민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러한 어려움의 원인이야 많겠지만 소시민의 눈에 띄는 것은 무엇보다 갈수록 극단적이고 야성적인 정치문화의 갈등과 소통의 불협화음이 심화되고 있는 사회문화, 전통문화 정책마저도 현실적 이윤추구와 일부 종교인들의 편향된 사고에 의해 상식의 뒷전으로 밀려나는데 있는 것 같다. 거기다 성장과 속도, 편의 위주의 정책이 자연과 환경을 병들게 한 댓가도 한 몫을 하였다고 본다.

지금도 서민경제가 어렵기는 매한가지인데 이웃 덕분에 현 정부가 한숨 돌리고 살판을 만난 것 같다. 이집트,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과 중동국가의 사태가 세인들의 관심을 나라 밖으로 끌어내 주었으니 말이다. 뒤이어 일본 동북지방의 지진과 해일은 언론과 모든 국민들의 관심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서민들은 그들의 어려움이 언론에 비친 쓰나미에 밀려 불평불만은커녕 입도 열지 못하고 있다. 어려운 서민 경제, 일본 수출길이 막힌 농민, 수출입이 막힌 중소기업, 어렵사리 일자리를 찾아 일본에 갔다가 황급히 돌아온 젊은이들, 망연자실해 있는 축산인들, 이들의 타는 가슴은 누가 달래주어야 할까.

비단 이웃나라의 재난이 아니라도 인류애는 물론, 우리도 자연재해에선 예외가 될 수 없으니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도와야 함은 당연하다. 그와 함께 아직도 과거에 대한 반성이 부족한 일본에게 보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먼저 가슴을 열고 베풀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외적인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면 자칫 우리 안의 문제가 소홀해질까 걱정이 된다.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를 복원하고 서민경제를 챙겨야 한다. 위로는 나라가 안정되어야 하고, 자연재앙이 없어야 하며, 아래로는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위기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정답은 늘 만들어져 있다. 어떤 문제든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하며,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감하고 동참해야 한다.

물론 공감과 동참의 의미는 ‘배려’와 ‘나눔’과 ‘베풂’의 문화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나라 안과 밖이 다를 수 없다. 스스로를 위한 배려는 ‘솔직’한 것이고, 이웃이나 남을 위한 배려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여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모두를 위한 배려는 ‘통찰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지난겨울처럼 혹독하게 추웠던 겨울이 우리의 기억 속에 얼마나 있었던가. 그래도 지금 봄은 우리 곁으로 오고 있지 않은가. 남도에는 매화와 산수유가 피고, 바다 건너 제주에선 벚꽃 소식이 들린다. 이 자연의 섭리처럼 자연 재앙도 인간사회의 고난과 역경도 언젠가는 극복되기 마련이다. 우리 인간이 어떻게 지혜를 모으는가가 문제다.

‘나눔과 베풂’의 보시는 아끼고 탐하는 마음을 쳐부수는 전초기지이며, 올바른 도(道)에 들어가는 첫 관문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아끼는 인색한 마음을 항복받게 되는 것이다. 이 마음이 지속되면 베푸는 마음이 계속되어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급기야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스스로 즐거워진다는 것이다.

김형춘 교수님 글. 월간 반야 2011년 4월 1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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