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귀감(2) _ 바람 없는 바다에 물결이 일어나다

佛祖出世(불조출세)가 無風起浪(무풍기랑)이로다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온 것은 바람 없는 바다에 물결이 일어난 것이다.

선(禪)의 기백은 나와 불조를 똑같은 동격으로 보는 데 있다. 물론 중생이 부처님에 의해 교화제도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지만 내가 지닌 각성 그 자체에서 볼 때 나는 제도 받을 대상이 아니다. 한 물건을 가진 존재로서는 이 세상 모두가 똑같아 차별이 없다.

바람 없는데 파도가 일어났다는 것은 공연히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본래 부처인데 부처가 되려고 하는 것은 남대문에서 서울을 가려는 것과 같다. 이미 서울에 왔는데도 서울인 줄 모르고 다른 데로 가려고 하는 어리석음이라는 뜻이다.

연지 찍고 분 바른다는 것은 얼굴에 화장한다는 뜻으로 본래면목은 꾸밀 필요가 없는 원만한 그대로의 모습이라 남에 의해 고쳐지거나 바꾸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이 미오(迷悟)에 관계없는 개개인이 본래 지닌 불성, 바로 본분(本分)이라 한다.

선가귀감(1) _ 한 물건

有一物於此(유일물어차)하니 從本以來(종본이래)로 昭昭靈靈(소소영영)하여

不曾生不曾滅(부증생불증멸)이라 名不得狀不得(명불득상불득)이니라

여기 한 물건이 있다. 본래 밝고 신령스럽지만 이것은 일찍이 생겨나거나 소멸되는 일이 없다.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

‘여기 한 물건이 있다’는 말로 「선가귀감」의 첫 구절이 시작된다.

한 물건이란 우주 만유의 본원인 법성(法性) 혹은 불성佛性의 당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는 것이면서도 만유를 생성케 하는 무한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모든 능동적인 역할을 다할 수 있다 하여 주인공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곧 사람의 마음을 두고 한 물건이라 일컬은 것이다. 「금강경오가해설」에는 일착자(一着子)라고 표현했다. 이 한 물건을 찾는 것이 바로 부처를 찾는 것이다.

이 한 물건을 밝고 신령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세상의 모든 이치가 이것에 의해 통해지므로 밝다한 것이고 신비스러운 능력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신령스럽다 한 것이다. 이것은 시공을 초월했으며 천지보다 먼저 생겼고 또한 천지보다 나중까지 남아 있다 하여 선천지후천지(先天地後天地)라고 묘사해 놓은 곳도 있다.

불교의 특성

불교의 특성은 여러 가지로 설명되지만 무엇보다도 종교적 정서가 명상적이고 사색적이고 정적(靜的)인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신을 전제하지 않는 인본주의(人本主義)의 종교로 서양의 유일신을 내세우는 신본주의(神本主義)와 사뭇 대조적인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조인 석가모니의 생애에서 보여지듯이 인간의 내면세계를 밝혀 가는 수행의 과정이 맹목적인 신념이 아닌 끝없는 자기 성찰과 반조(返照)에서 오는 명상적 색채를 지니고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룸비니 동산 숲 속의 무우수란 나무 밑에서 태어나고 보리수 아래서 성도하며 녹야원이라는 사슴이 서식하던 동산의 숲 속에서 설법을 시작하고 마지막으로 쿠시나가라의 사라수 밑에서 열반에 드십니다.

나무 밑에서 태어났다가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이루고 나무 밑에서 설법을 하다가 나무 밑에서 돌아갑니다. 이렇기 때문에 한 마디로 불교의 정서는 나무 밑의 사색이고 숲속의 명상입니다. 어느 명상가가 종교에 귀의하는 것은 숲 속의 오솔길을 찾는 마음이라 하였습니다.

또 불교의 수학(修學)을 세 가지 면으로 나누어 불교 전체를 설명하는 용어에 삼학(三學)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계(戒)·정(定)·혜(慧)의 세 가지를 닦고 배워서 부처가 되는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戒)는 계율을 말하고 정(定)은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가지는 선정(禪定)을 말하며 혜(慧)는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계율은 수행에 임하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에 대한 행동윤리로 도덕적 선(善)을 전제로 하는 고차원적인 불교 윤리입니다.

선정은 정신의 통일된 상태로 의식의 분열이 없어져 안정과 평화가 유지되는 정중(正中)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혜는 밝고 슬기로운 예지의 빛이 나오는 수행된 마음의 지성입니다. 이 삼학을 다시 일반적인 개념으로 대비해 말하면 윤리와 신앙과 철학입니다.

따라서 불교는 윤리와 신앙과 철학이 삼위일체로 조화된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지안스님 강의. 월간반야 2001년 1월 (제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