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 (1)숫타니파아타

‘숫다니파타(Sutta-nipata)’는 경을 모은 집성(集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경집(經集)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은 수많은 불경 가운데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경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초기 불교를 이해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하여 역사적인 인물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경이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제자들이 부처님 생전의 말씀을 암송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12전(傳)시킨 것이 최초의 경전 결집(Sa?git?)이라 한다. 그러다가 팔리어라는 언어를 통하여 비로소 문자화되면서 경전이 그 체제를 새로이 갖추게 되었다. 『숫다니파타』는 바로 팔리어 성전에 들어 있는 경으로, 운문체의 짧은 시와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진 부분도 있다. 마치 『법구경』과 비슷하게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은 모두 다섯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개의 경전이 그러하듯이 각 장이 따로따로 독립되어 전해지다가 어느 시기에 와서 함께 묶여진 것으로 본다. 제 3결집이 이루어진 시기인데, 그때를 대략 아소카 왕 재세시로 보기도 한다. 어떻든 이 경이 초기 경전을 대표하는 최고의 경으로 알려져 있다.

제1장의 이름이 ‘뱀의 장’이라고 되어 있다. 한자로 뱀 ‘사(蛇)’자 ‘사품(蛇品)’으로 되어 있는데, 경의 중간중간 노래가사의 후렴처럼 “수행자는 이 세상 저 세상 다 버리는 것이 뱀이 묵은 허물을 벗는 것 같다.”는 말이 반복되고 있다.

“뱀의 독이 몸에 퍼지는 것을 약으로 치료하듯 치미는 화를 삭이는 수행자는 이 세상 저 세상을 모두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는 것처럼.”

“연못에 핀 연꽃을 물 속에 꺾듯이, 애욕을 말끔히 끊어버린 수행자는 이 세상(此岸) 저 세상(彼岸)을 다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는 것처럼.”

“안으로 성냄이 없고 밖으로 세상의 영고성쇠(榮枯盛衰)를 초월한 수행자는 이 세상을 다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는 것처럼.”

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유명한 말이 나온다. 출가수행자는 모든 데서 독립되어 세상 경계에 의지하는 곳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제2장 소품(小品)에는 부처님이 아들인 라훌라를 타이르는 말이 나온다. “라훌라야, 늘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너는 어진 이를 가볍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 모든 사람을 위해 횃불을 비춰 주는 사람을 너는 존경하고 있느냐”라고 하시자, 라훌라는 “어진 이를 가볍게 보는 일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횃불을 비춰 주는 사람을 저는 항상 존경합니다”라고 대답한다. 또 부처님은 오욕(五欲)의 대상을 버리고 믿음으로 집을 떠나 괴로움을 없애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제3장 대품(大品)에는 출가를 권장하는 이야기에서부터 정진행(精進行)을 강조하는 12개의 짤막한 경이 들어 있는데 <바삿타>에서는 인도의 카스트제도에서 나누어진 사성 계급에 대해 사성(四姓)이 본래 평등함을 설하여 계급 타파를 밝혀 놓기도 하였다.

또 많은 바라문들과 청년들이 부처님 말씀을 듣고 부처님께 귀의하는 장면들도 나온다. 부처님은 이들에게 때로 “눈이 있는 자 빛을 보리라”는 말로 수행에 대한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아 주신다. “눈이 있는 자 빛을 보리라”고 한 이 말은 부처님의 진리는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누구든지 눈이 있으면 사물을 보듯이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된다는 뜻이다. 다만 어둠 속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부처님이 빛을 밝혀 어둠을 물리쳤으니 누구든지 보고 싶은 사람은 와서 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제4장 의품(義品)은 여덟 편의 게송시(偈頌詩)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두 번째 이야기 <동굴>에서는 사람의 육신을 동굴에 비유하여 말하는데 “동굴 속에 머물러 집착하고 온갖 번뇌에 덮이어 미망 속에 빠져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은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참으로 이 세상 욕망은 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설하여 몸에 집착한 것이 동굴에 갇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또 <분노>에 대한 이야기로 이런 말이 나온다. “마음으로부터 화를 내고 남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다. 또한 마음이 진실한 사람이라도 남을 비방하는 일이 있다. 비방하는 말을 들을지라도 성인은 그것에 동하지 않는다. 성인은 어떠한 일에도 마음이 거칠어지지 않는다.”

제5장 피안에 이르는 길(彼岸 道品)은 열여섯 명의 바라문들이 한 사람씩 부처님께 질문을 하고 부처님이 답해 주는 문답이 전개된다.

“존자 아지타(Ajita)가 물었다. 세상은 무엇으로 덮여 있습니까? 세상은 무엇 때문에 빛나지 않습니까? 세상을 더럽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커다란 공포는 무엇입니까?”

“스승은 대답하였다. 아지타여 세상은 무명의 어둠에 덮여 있다. 세상은 탐욕과 게으름 때문에 빛나지 않는다. 욕심은 세상의 때이고 고뇌는 세상의 커다란 공포라고 나는 말한다.”

제5장의 내용 중 제4장 의품(義品)만이 한역으로 번역되어 대장경에 수록되어 있고 전품이 한역되지 않았는데 한역된 별도의 경명(經名)이 『불설의족경(佛說義足經)』이다. 두 권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역자는 인도인 지겸(支謙)이 중국에 와서 오나라 초기 곧 3세기 초엽에 번역하였다.

지안스님강의. 월간반야 2002년 9월 (제22호)

신심명(44) 언어의 길이 끊어져 과거·현재·미래가 아니로다

言語道斷(언어도단시)하야 非去來今(비거래금)이로다

언어의 길이 끊어져 과거·현재·미래가 아니로다

진여법성의 자리, 즉 도라는 것은 언어의 길이 끊어져 말이나 문자로써 설명할 수가 없고, 시간을 초월하여 과거·현재·미래의 시제가 없다는 것이다. 말없는 말이며 시간이 아닌 시간이 도(道)속에 있다.

다시 말하면 시간적·공간적으로 원융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 도의 세계이며, 무애자재한 법성의 세계는 현상에 걸려 장애를 받는 일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의 열반 사덕(四德)인 상(常) · 낙(樂) · 아(我) · 정(淨)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영원하고 즐거우며 실체를 갖춘 깨끗한 진리의 세계가 불성(佛性) 속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신심명(43) 믿는 마음은 둘이 아니요 둘이 아닌 것이 믿는 마음이니라

信心不二(신심불이)요 不二信心(불이신심)이니라

믿는 마음은 둘이 아니요 둘이 아닌 것이 믿는 마음이니라

진여자성은 둘이 아닌 신심으로 깨달아지는 것이며, 신심은 불법수행의 힘이다. 힘이 없으면 사람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신심이 없으면 수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신심 역시 둘이 아닌 경지에 이르러야 완전한 신심이 되는 것이다. 이 신심 속에는 신(信)‧해(解)‧행(行)‧증(證)이 갖추어져 있으며, 이것이 진여법계에 합치되게 하는 불이(不二)신심인 것이다.

화엄경의 현수품에서는 “믿음이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信爲道元功德母)”라고 하였다. 따라서 깨달음의 경계와 마찬가지로 신심의 경계도 상대가 없는 절대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凡聖悟迷俱不二(범성오미구불이) 범부와 성인의 깨달음이 모두 둘이 아니니

了知元自信心生(요지원자신심생) 원래 신심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心非生滅誰迷悟(심비생멸수미오) 마음은 생기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거니 누가 미혹하고 깨달았는가

開眼無端入火坑(개안무단입화갱) 눈을 뜨고도 무단히 불구덩이로 들어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