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에 얼어붙은 눈 편편이 떨어지고

한지착설낙편편 寒枝着雪落翩翩 가지에 얼어붙은 눈 편편이 떨어지고

송운풍청후만천 松韻風淸吼晩天 저무는 하늘에 솔바람 파도소리

석상정공회수망 石上停筇回首望 돌 위에 지팡이 짚고 고개 돌리니

옥봉고엄조설변 玉峰高掩鳥雪邊 눈 덮인 봉우리 높이 새가 구름 곁을 난다.

유난히도 눈이 많은 해가 있을 때가 있다. 지난 해 서해안 지방에 내린 눈이 그런 경우다. 보름 동안 폭설이 내려 막대한 피해가 났다고 하였다. 눈이 올 때 사람들은 설경을 좋아하며 즐기려 하지만 너무 많이 내리면 그만 재해가 되어버리니 무심한 자연이지만 인간은 무심을 모르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이 시는 설암추붕(雪岩秋鵬1651~1706)이 지은 것이다. 이조 중기 스님으로 삼장을 통달했고 언변이 좋아 설법에 능했던 스님이었다. 계행이 청정하였고, 월저도안(月渚道安)의 법을 이었다.

온 산에 눈이 하얗게 쌓인 어느 날 외출에서 절로 돌아오다 설경을 바라보고 지은 시이다. 원 제목이 설후귀산(雪後歸山)으로 되어 있다. 옥봉이란 눈 덮인 산봉우리를 가리킨 말이다. 백옥처럼 하얀 산봉우리 너머 새가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눈 온 뒤 석양이 질 무렵 아스라한 하늘가에 구름이 깔렸고 그 곁으로 새가 날아가는데 저무는 설국의 정적을 새가 깨뜨리는 파적의 묘미가 있는 시 같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6년 2월 제 63호

가을산 밖에는

소우추산외 踈雨秋山外 가을 산 밖에는 성근 비 내리고

사양고수변 斜陽古樹邊 늙은 나무 가에는 석양이 비친다.

모천고안향 暮天孤雁響 저문 하늘에 외로운 기러기 울음소리

하사객수견 何事客愁牽 무슨 일로 나그네의 근심을 당겨 주는가?

가을이 되면 객지에 가서 사는 사람들에게 고향생각이 일어난다고 한다. 아무래도 가을은 생각나는 것이 많은 계절인가 보다. 그래서 사색의 계절이라고 불러왔는지 모른다.

조선조 영조 때의 허정법종(虛靜法宗1670~1733) 스님은 시를 잘 짓는 시승(詩僧)으로 이름이 높았다. 뿐만 아니라, 화엄의 원돈법계설(圓頓法界說)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스님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시문(詩文)을 수록해 놓은 허정집(虛靜集)에 고향을 생각한다는 ‘사향(思鄕)’이란 제목으로 위의 시가 실려 있다. ‘늙고 병든 부모님이 고향에 계시기에’라고 부제를 붙인 걸 보면 출가 수행자가 되어 사는 산사에서 가을을 맞은 어느 날 고향의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이 시를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가을비에 산이 촉촉이 젖다가 비가 그치고 석양의 햇빛이 나뭇가지에 걸린다. 이내 해는 지고 어두워 오는 하늘에 기러기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고향에 계신 부모님 안부가 생각난 것이다. 몸이 편찮아 고생을 한다는 이야기는 듣고 있었다. 나그네 근심을 당겨주는 것이 바로 부모님의 병환인 것이다.

월간반야 2008년 11월 제96호

가을 바다 거친 파도

추해광도야우한 秋海狂濤夜雨寒 가을 바다 거친 파도 밤비는 차가운데

장인별리생숙뇌 長因別離生熟惱 이별로 또다시 가슴 아파 괴롭구나.

축융봉전야학환 祝融峯前野鶴還 축융봉의 학은 산으로 돌아왔을 텐데

송운독재주중노 松雲獨在舟中老 송운은 홀로 배에 남아 늙어야 하나.

참으로 애절한 슬픔이 짙게 배여 있는 시이다. 지은 이의 가슴에 깊은 한이 서려 있는 것 같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사신으로 일본에 들어갈 때 지은 시다. 당시 부산에서 배를 타고 출발한 직후 지은 것으로 부산까지 따라와 배웅을 해준 태연(太然)장로와 헤어지고 그 이별의 회포를 읊은 시다. 선조 37년(1604) 음력 8월에 사명대사가 왕명에 의해 사신으로 임명 받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해 봄에 오대산에 있던 사명대사가 스승 서산대사가 묘향산에서 열반에 들었다는 부음을 듣고 거기로 가던 도중 선조의 급한 부름을 받고 발길을 돌려 조정에 들어가 일본과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일본에 갈 것을 부탁 받는다. 스승의 영결식도 치루지 못한 채 국사를 위임받아 남의 나라에 가게 되는 처지가 결코 영화로운 것이 아닌 불우한 신세였던 것이다. 더구나 임진란에서 정유재란에 이르기 까지 10여년의 전란으로 나라는 어지럽고 민심도 불안하기만 하던 때였다.

축융봉은 중국의 태전(太顚)선사가 머물던 산봉우리 이름이다. 자신을 산에 사는 학에 비유하여 학이 산에 있어야 하는데 왜 바다에 배를 타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일종의 자조적인 서술이 읽는 이의 마음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송운은 사명당과 같이 쓰인 스님의 또 하나의 호이다. 이 시를 쓰고 일본에 건너갔던 사명스님은 8개월을 머물면서 성공적인 외교성과를 거두고 전란 때 잡혀갔던 3000여명의 동포를 데리고 이듬해 4월에 귀국하였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4년 12월 제 4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