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추산외 踈雨秋山外 가을 산 밖에는 성근 비 내리고
사양고수변 斜陽古樹邊 늙은 나무 가에는 석양이 비친다.
모천고안향 暮天孤雁響 저문 하늘에 외로운 기러기 울음소리
하사객수견 何事客愁牽 무슨 일로 나그네의 근심을 당겨 주는가?
가을이 되면 객지에 가서 사는 사람들에게 고향생각이 일어난다고 한다. 아무래도 가을은 생각나는 것이 많은 계절인가 보다. 그래서 사색의 계절이라고 불러왔는지 모른다.
조선조 영조 때의 허정법종(虛靜法宗1670~1733) 스님은 시를 잘 짓는 시승(詩僧)으로 이름이 높았다. 뿐만 아니라, 화엄의 원돈법계설(圓頓法界說)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스님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시문(詩文)을 수록해 놓은 허정집(虛靜集)에 고향을 생각한다는 ‘사향(思鄕)’이란 제목으로 위의 시가 실려 있다. ‘늙고 병든 부모님이 고향에 계시기에’라고 부제를 붙인 걸 보면 출가 수행자가 되어 사는 산사에서 가을을 맞은 어느 날 고향의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이 시를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가을비에 산이 촉촉이 젖다가 비가 그치고 석양의 햇빛이 나뭇가지에 걸린다. 이내 해는 지고 어두워 오는 하늘에 기러기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고향에 계신 부모님 안부가 생각난 것이다. 몸이 편찮아 고생을 한다는 이야기는 듣고 있었다. 나그네 근심을 당겨주는 것이 바로 부모님의 병환인 것이다.
월간반야 2008년 11월 제9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