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다 거친 파도

추해광도야우한 秋海狂濤夜雨寒 가을 바다 거친 파도 밤비는 차가운데

장인별리생숙뇌 長因別離生熟惱 이별로 또다시 가슴 아파 괴롭구나.

축융봉전야학환 祝融峯前野鶴還 축융봉의 학은 산으로 돌아왔을 텐데

송운독재주중노 松雲獨在舟中老 송운은 홀로 배에 남아 늙어야 하나.

참으로 애절한 슬픔이 짙게 배여 있는 시이다. 지은 이의 가슴에 깊은 한이 서려 있는 것 같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사신으로 일본에 들어갈 때 지은 시다. 당시 부산에서 배를 타고 출발한 직후 지은 것으로 부산까지 따라와 배웅을 해준 태연(太然)장로와 헤어지고 그 이별의 회포를 읊은 시다. 선조 37년(1604) 음력 8월에 사명대사가 왕명에 의해 사신으로 임명 받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해 봄에 오대산에 있던 사명대사가 스승 서산대사가 묘향산에서 열반에 들었다는 부음을 듣고 거기로 가던 도중 선조의 급한 부름을 받고 발길을 돌려 조정에 들어가 일본과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일본에 갈 것을 부탁 받는다. 스승의 영결식도 치루지 못한 채 국사를 위임받아 남의 나라에 가게 되는 처지가 결코 영화로운 것이 아닌 불우한 신세였던 것이다. 더구나 임진란에서 정유재란에 이르기 까지 10여년의 전란으로 나라는 어지럽고 민심도 불안하기만 하던 때였다.

축융봉은 중국의 태전(太顚)선사가 머물던 산봉우리 이름이다. 자신을 산에 사는 학에 비유하여 학이 산에 있어야 하는데 왜 바다에 배를 타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일종의 자조적인 서술이 읽는 이의 마음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송운은 사명당과 같이 쓰인 스님의 또 하나의 호이다. 이 시를 쓰고 일본에 건너갔던 사명스님은 8개월을 머물면서 성공적인 외교성과를 거두고 전란 때 잡혀갔던 3000여명의 동포를 데리고 이듬해 4월에 귀국하였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4년 12월 제 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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