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의미

우리에게 6월은 무엇인가. 우리 역사에서 6월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2008년 6월은 우리 민족사에 어떻게 자리 매김할 것인가.

지난 한 세기 가까운 우리 민족사의 6월은 참으로 뜨거운 해가 많았다. 1926년엔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황제의 장례식 날 일어난 ‘6.10 만세사건’으로 3.1운동의 불을 다시 지폈고, 1950년 6월은 2차 세계대전보다 많은 인명 피해를 낸 동족상잔의 ‘6.25사변’이 일어났다. 1964년엔 일본과의 굴욕외교를 반대하는 시위로 위수령과 휴교령이 내려진 이른바 ‘6.3사태’가 일어났고, 1969년 6월엔 ‘3선 개헌 반대’ 데모가 거세게 일어났었다. 1987년엔 6월 10일을 시작으로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체제를 반대하고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이른바 ‘6월 항쟁’이 일어나 마침내 6.27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이 통과되기도 하였다. 2000년엔 ‘6.15 남북공동선언’있었고, 올해 6월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촛불집회’가 온 나라를 흔들었다.

올해 6월도 계절적으로 ‘하지(夏至)’가 끼인 한여름이라 그런지 무척 답답하고 덥고 지루한 느낌이다. 새로 탄생한 이명박 정권이 채 숨돌릴 틈도 없이 위기를 맞았다. 상황은 한마디로 정당정치와 대의정치의 한계를 보는 듯했다. 참으로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의 촛불시위는 민생과 민주주의 의 확보를 위한 시민정치운동이자 직접민주주의의 새로운 실험으로서의 의미가 있으며, 인터넷 민주주의와 광장민주주의의 전형을 보는 듯했다.

누가 봐도 졸속적이고 비과학적이고 무능한 협상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검역주권과 더불어 국민의 생명권 마저 포기한 사상 유례 없는 조건으로 타결한 굴욕협상이었다. 가공육으로나 쓰는 30개월 이상의 쇠고기와 더불어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 Specified Risk Material)이라고 하여 소각 처분하는 감염력이 매우 높은 부위마저 극히 일부만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대책 없이 수입하겠다니 말이 되는가. 광우병의 병원성은 99%가 SRM에 몰려 있으며, 이 부위는 1g 미만의 소량으로도 광우병이 발생하고 0.001g만 먹어도 발병이 확인될 정도로 위험한 물질이라니 정말 이런 쇠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아찔할 뿐이다.

다행히 그동안 OIE(Office International Epizooties, 國際獸疫事務局)의 기준을 강조하며 국민의 소리를 무시해온 정부가 OIE 기준의 과학적 안전성과 무조건적 수용의 논리를 버리고 수입기준을 미국과 유사하게 변경하고 추가협상을 통해 그간 국민이 걱정했던 조건들을 보완했다고 하지만 국민들의 우려가 완전히 불식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올해 6월을 뜨겁게 달군 촛불집회는 단순히 쇠고기 수입 문제에 한정된 것은 아닌 것 같다. 10년 간의 좌파정부에 이어 유권자 50% 이상의 절대적 지지로 탄생한 이 정권이 과학적인 협상능력과 보수정권의 지도력을 의심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87년 민주화 이후 정치적 권위주의가 해체되고 국민의 자유권도 크게 신장되었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민주정치적 시민의식은 선진국 수준에 다다르고 있는데 정치인들의 의식은 아직 이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이제 남은 것은 정치인들의 민주적 리더십과 협상력으로 촛불정국을 타개하고 민생과 경제회생 등 발등의 불을 끄는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물론 촛불집회 자체의 순수성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또 이런 기회에 사회와 정부에 대한 불만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토로하는 등 법질서를 무너뜨리고 국가를 지탱하는 공권력에 손상을 입히는 것은 더욱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 지도자가 ‘국민을 섬기겠다’는 초심(初心)을 다시 확인하고 국민이 바라는 리더십과 국정기조가 무엇인가를 겸양과 섬김의 자세로 깨달아야 한다. 이게 바로 부처님의 가르치심인 ‘입중오법(入衆五法)’의 첫째와 둘째인 ‘하심(下心)’과 ‘공경(恭敬)’이 아닌가.

김형춘 香岩 (반야거사회장‧창원전문대 교수) 글. 월간반야 2008년 7월 제92호

20세기의 아이콘

황금돼지띠의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을 서두르는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지난 2천년에 태어난 ‘밀레니엄 베이비’들이 올해 사립 명문 초등학교에 들어가기가 꽤나 힘들다는 보도를 보았다. 이를 지켜본 황금돼지띠의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벌써부터 아이의 대학입시와 취업 걱정을 한다는 웃지 못할 소문 또한 사실이다.

지난 20세기에는 과도한 커뮤니케이션과 유명인이 넘쳐났고 보도와 홍보활동, 그리고 조작된 루머가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로 자리잡으면서 야기된 혼란도 부지기수였다. 과도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정한 지식을 가리기가 어려웠고, 전례 없는 쾌락에 빠져 통제가 불가능한 대중문화의 영향도 무서웠다.

이러한 20세기에 지울 수 없는 발자국을 남긴 2백명의 인물을 가려 엮어놓은 ‘아이콘’이라는 책(원 제목은 Icons of the 20th century 임)이 작년 여름에 출간되었다. 국적ㆍ인종ㆍ성별ㆍ활동분야를 막론하고 지난 세기의 역사에 위인 또는 악인으로 남은 이들을 가려 놓은 것이니 결코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아이콘’이란 ‘이미지’ 또는 ‘표상’을 뜻하는 말이지만 좋든 나쁘든 이름과 얼굴이 널리 알려져 있고 현대사의 흐름을 형성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상징한 뜻이다.

이들 2백 명의 인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20세기 전체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뿐만 아니라 이들을 통해 현재를 사는 삶의 지혜와 미래를 내다보는 새로운 시각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중에는 몽상가ㆍ폭군ㆍ혁명가ㆍ숭배의 대상ㆍ유행의 창시자는 물론 여론 형성자로 우리의 집단적 시대정신을 형성했던 이들도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 지그문트 프로이트, 월트 디즈니, 베니토 무쏠리니, 다이애나 황태자비, 달라이 라마 등이 그들이다. 또한 어디서나 청중의 관심을 끌고 주위의 자기장에 영향을 끼친 문화적 시금석 같은 존재로 시대의 변화를 선도한 사람들도 있다. 예컨대 윈스턴 처칠, 마하트마 간디, 샤를 드골, 프랭크린 D. 루스벨트 등과 여성으로서 마거릿 미드, 테레사 수녀, 골다 메이어, 마리 퀴리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2백인의 면면에는 영화배우, 정치가, 운동선수, 연주자를 포함한 가수, 영화감독, 인권운동가 등이 60%(120명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수치로 봐도 지난 세기를 격동의 세기, 야만의 세기, 대중문화와 쾌락의 세기라고 불러도 괜찮을 듯하다.

극소수지만 종교계의 인물들도 있었다. 달라이 라마, 교황 요한 23세, 테레사 수녀, 빌리 그레이엄 목사 정도다. 내가 기대했던 한국인, 나아가 아시아 사람은 7명(3.5%)에 불과하고, 그 면면도 거대 중국을 공산화로 통일시킨 모택동 부부, 2차 대전을 통해 미국인의 자존심의 제물이 된 일본의 전 히로히토 국왕, 미국인의 자존심을 짓밟은 호치민, 중국 공산주의자들을 제외한 세계인의 숭배를 받고있는 달라이 라마, 인도의 간디와 인디라 간디 뿐이다. 우리로서는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바라건대 21세기에는 보다 인간적인 면에서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고민하고, 인간애와 인간구제에 헌신한 종교인, 사상가, 학자, 예술가들이 세계사에 영향을 끼친 대표적 인물로 많이 선정되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불교계에서도 지금보다 더 훌륭하신 고승대덕들이 나시어 전 세계의 중생제도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김형춘 香岩 (반야거사회 회장․창원전문대교수) 글. 월간반야 2007년 2월

2011년을 보내며

지난 10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열고 국민보고대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허창수 회장은 ‘2030 한국경제비전’으로 국내총생산(GDP) 5조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0만 달러,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된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지금부터 20년 후엔 풍요롭고 안정된 삶, 문화와 여가를 즐기는 생활, 건강한 국민과 안정된 나라, 스스로 일어서도록 돕는 사회, 약자에게 따뜻한 세상, 자발적인 나눔 문화가 이루어지고 차별 없는 열린 국가에서 우리는 살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엔 극복해야할 과제도 만만찮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생산 인구 감소문제나 지금 우리사회가 한창 처하고 있는 사회적 갈등과 분열문제, 기업의 활력 저하나 중국 등 신흥국의 추격에 따른 잠재성장률의 하락을 해결만 한다면 결코 이 목표가 허황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여기엔 지금까지의 ‘추격자’ 방식에서 새로운 성장모델과 기술을 개발하는 ‘선도자’가 되어야 하며, 경제 인프라를 확충하고 산업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자본 축적 및 성장기반을 구축하는 등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의 희망과는 달리 같은 시기에 미국 뉴욕 금융가의 중심인 월스트리트에서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시위가 시작되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물론 이들의 투쟁 대상은 금융자본의 탐욕과 부패라고 한다. 이른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위험한 파생상품을 다투어 개발하는 등 월가의 과도한 경쟁과 탐욕, 그리고 부패가 세계적 금융위기를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미국 내 상위 1%의 부자가 전체 소득의 20%를 가져간다고 한다. 이 상위 1%에 의해 운용되는 금융자본주의가 일명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글로벌경제시스템으로 철저한 시장원리를 도입하여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이윤 추구를 보장받는 제도로 자본시장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해 온 것이다. 이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극단적 폐해가 ‘이익의 사유화(私有化)와 손실의 사회화(社會化)’인 것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몇 번의 클릭으로 지구촌 곳곳에 있는 기업의 주식을 사고팔면서 금융상품 가격을 초(秒)단위로 조종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익을 얻으면 개인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어쩌다 크게 손실이 나서 나 몰라라 넘어지면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고스란히 그 손해는 국민이, 사회가 부담하는 것이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대의 구호 중에는 자본주의의 상처를 치유할 대안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반자본주의와 혁명이 필요하다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예사롭지 않다. 더욱이 이 시위가 우리나라의 대도시에까지 들어왔으니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도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니 걱정이다.

이러한 국제적 상황에서 세모를 맞는 우리나라도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방면에서 편안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기존의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껏 한국의 정당정치는 지역주의와 이념이라는 분열과 대립의 고질적인 구조 위에서 그 존립이 가능했지만 급기야 탈정치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그 징후를 보인다.

그동안 우리 국민은 영호남 어느 한쪽의 지역주의가 아니면, 진보와 보수 둘 중 하나의 막다른 이념의 선택을 강요당해 왔다. 최악(最惡)을 막기 위해 차악(次惡)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국민이 새해 2012년을 어떻게 선택해야 할 지 지금부터 고민이다. 아니면 제3의 선택 방법이 나타날 것인가.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강대국 미국과 중국도 내년엔 대통령 선거와 제5세대 지도부 출범에 따른 권력이양이 예고되어 있다. 우리의 에너지자원이 주로 기대고 있는 중동지역 사막의 민주화 바람에다 러시아와 프랑스, 인도, 터키, 멕시코, 대만 등에서도 대통령 선거와 총통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격랑이 예상되는 지구촌에서 ‘대한민국호’는 2012년을 어떻게 항해할 것인가. 우리 국민의 안전한 보호막은 확실히 준비되어 있는가. 걱정스럽기만 하다.

김형춘 창원문성대학 교수, 문학박사, 월간 반야 2011년 12월 1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