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리 반야암 대중이 나무심기를 했다. 상좌 신경이와 인경이 그리고 행자로 와 있는 안순이, 그리고 잠시 절에 머무는 상하군 그리고 구처사와 나 여섯이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식목을 했다. 전날 수목원에 가 부탁해 둔 산다화, 금목서, 동백, 옥매화, 능수매화와 황금측백, 그리고 올 여름 제법 큰 열매가 열릴 것으로 기대되는 꽤 우람한 모과나무 등을 심었다. 몰론 삽과 괭이로 땅을 파고 묻는 작업은 다른 사람들이 하고 나는 나무를 심을 자리를 지정하고 나무 형을 보아주는 등 일 감독을 한 셈이었지만, 그날은 매우 기분이 좋았다. 내게 있어서 나무를 심는 일만큼 즐거움을 주는 일도 별로 없다. 굳이 어떤 이유를 댈 것도 없이 나무를 심는 일 그 자체가 그저 즐겁기만 한 것이다. 그래서 반야암을 짓고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나무를 심어왔다. 지금까지 구해다 심어 놓은 수종이 50종을 넘는다. 물론 야생화 종류도 조금씩 조금씩 꽤나 심었다.
간혹 어떤 이는 산에 자생하는 나무가 수없이 많은데 산사에 무슨 나무를 그렇게 자꾸 구해 와 심느냐고 핀잔 같은 말을 해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무를 심는 것은 꿈을 심는 일이요 얼을 심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사랑을 심는 일이요, 반대로 인간의 야망을 심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내 자신의 설움을 심어 땅 속에 감춰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나무를 심는 것이 산림을 보강하는 데에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과수를 심는다든지 관상수나 꽃나무를 심어 조경을 꾸미는 방법의 식목도 있다. 환경을 아름답고 운치 있게 꾸미어 예술적 미를 추구하는 방편의 식목이 있다. 그러나 ‘심는다’는 어휘, 그 동사의 목적어로 등장하는 나무가 ‘심는다’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더 좋다. 생각해 보면 심는다는 말의 뉘앙스가 참으로 좋게 느껴진다.
인생은 모름지기 심는 것이 많아야 한다. 가슴에 사랑을 심어야 하고 은혜를 심어야 한다. 땅에 꽃씨를 심듯이 마음 속 깊이 지혜의 종자와 자비의 종자를 심어야 한다. 우리 불교에서는 보리수를 심는다는 말을 자주 한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나무라 하여 부르게 된 보리수를 지구의 땅에 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땅에 심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음을 심지(心地)라 하여 땅에 비유하고 여기에 깨달음의 나무를 심으라는 것이다. 식물이 자라지 않는 땅이 농토로서의 가치가 없듯이, 사람의 마음에 선근의 씨앗이 심어지지 않으면 심지가 황폐한 불모지가 되어 인간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로부터 마음 밭의 농사를 잘 지으라는 말을 해 왔다. 심전경작(心田耕作)이라는 숙어가 바로 이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풍부한 농산물을 수확하는 것이 농가의 본업인 것처럼 마음에 무엇을 심어 수확해 낼 것인가가 인생농사의 본업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마음에 무엇을 심느냐 하는 것은 확실히 인생의 인덱스다. 또한 마음이야 말로 정신의 인덱스이다.
우리 마음에는 수많은 색인이 있다. 그 색인이란 과거 숙생부터 내가 심어온 업종자가 있고 지금 심고 있는 종자가 있으며 미래에 심을 종자도 준비되어 있다.
나무를 심고 꽃을 심고 씨앗을 심는 봄이다. 계절의 봄을 맞아 내 심지에 무엇이든지 좋은 뜻을 심어보면 내 인생이 봄이 될 것이고 기다리면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는 영광의 시절이 온다. 스피노자가 말했다고 하지 않는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리라.”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5년 4월 제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