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숙 선생님,
보내 주신 책《성지에서 쓴 편지》는 잘 읽어 보았습니다.
‘불교의 시작(근본)으로 되돌아가 불교를 진지하게 바라보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들의 훌륭한 관점과 글 덕분에 ‘신’이 아닌 ‘인간’ 붓다의 모습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온갖 불필요한 수사(修辭)에서 벗어나자 붓다의 깨달음이 더 분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시작으로 되돌아가 ‘본질’만 바라보니, 근본주의와 같은 폐해는 봄눈 녹듯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군요.
선생님,
호진 스님의 순례는 경전을 통해서가 아니라 온몸으로 부처를 느껴 보려는 노력 아니겠습니까? 호진 스님의 고행에 눈물을 흘렸다면, 그건 우리가 그를 통해 신이 아닌 인간 붓다를 만났기 때문 아닐까요? 호진 스님은 우리에게 인간 붓다를 보여 주고 싶어 그토록 험난한 순례길에 오른 것 아닐까요?
이제 편집자의 관점에서 이 책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출가 이전의 이야기를 생략한 것이나, 구체적 수행 방법, 대승불교의 세세한 이론 등을 최소화한 것이 저에게는 매우 훌륭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디테일은 약해지겠지만, 하나의 주제에 보다 집중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제 경우에는 이런 생략된 행간으로 인해 불교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었습니다. 두 스님의 글쓰기는 가히 ‘정중동(靜中動)’의 경지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신은 구름 위에 앉아 있을 만큼 가볍지 않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비관주의적 무신론으로 흐르지는 않게 해 주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강요하는 ‘신’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인간의 물성을 극복한 위대한 ‘인간’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나에게 감탄만 하고 있지 마라. 깨달음 그 자체는 이해의 영역일 뿐이다. 절망이 존재의 끝은 아니듯, 깨달음 또한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늘 건강하십시오.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김용훈. 경북대학교 출판부, 월간 반야 2011년 10월 1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