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원품 (17) – 보개회향원 3

<경문>

이 선남자는 사람의 몸을 잘 받아서 보현보살의 모든 공덕을 원만히 하고 오래지 않아 보현보살과 같은 미묘한 몸을 성취해서 32가지 대장부상이 갖추어질 것이며, 만약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게 되면 난 데마다 뛰어난 종족 가운데 태어날 것이며, 능히 일체의 악취는 모두 없어질 것이며, 일체 악한 벗은 다 멀리 떠나고, 일체 외도는 다 조복하며, 일체 번뇌에서 해탈하게 되는 것이 마치 사자의 왕이 뭇 짐승들을 굴복시키는 것과 같아서 일체중생의 공양을 받게 되리라.

또한 이 사람이 임종할 마지막 순간에 육근은 모두 흩어지고, 일체 친족과 권속들은 모두 떠나고, 모든 위엄과 세력도 모두 사라지고, 보좌하던 재상과 대신들 그리고 궁성 안팎의 코끼리와 말, 수레와 보배 재물 등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하나도 따라오는 것이 없건만, 오직 이 원의 왕은 떠나지 아니하여 앞길을 인도하여 잠간 사이에 곧 극락세계에 가서 태어나게 하고, 태어나면 곧바로 아미타불과 문수사리보살과 보현보살, 관자재보살, 미륵보살 등을 뵈옵고, 이 모든 보살들이 몸매가 단정하고 엄숙하며 갖춰진 공덕으로 장엄하고 계시거든 그때 스스로가 연꽃 속에 태어났음을 보게 되리라.

그리고 부처님의 수기를 받아 무수한 백천만억나유타겁을 지나도록 시방의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세계에 널리 다니며, 지혜의 힘으로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이롭게 하며, 머지않아 마땅히 보리도량에 앉아 마군들을 항복받고 등정각을 성취하여 미묘한 법륜을 굴려서, 능히 불찰미진수의 중생들로 하여금 보리심을 발하게 하고, 근기와 성질을 따라서 교화하여 성숙시키며, 나아가 한량없는 미래 겁이 다하도록 널리 일체중생들을 이롭게 하리라.

<풀이>

보현의 행원은 인간이 인간의 자격을 유지하고 또한 보장받는 일이다. 자칫 인간은 인간으로 탄생한 다음 그릇된 업에 끌려 인간의 자격을 상실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옛날부터 사람 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라는 경책의 말씀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 말은 사람이 죽은 다음 생전에 지은 나쁜 업의 과보로 다시 수생할 때 사람의 몸을 받지 못하고 짐승의 몸을 받는다든가, 혹은 아귀나 지옥 등 악도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이다.

사람이 한 행위는 그 결과의 과보가 있다. 이것이 과거, 현재, 미래의 삼생을 통하여 인과 관계를 이루어 이어진다. 이것은 바로 불교의 기본윤리요, 도덕률이다. 보현행원을 실천하는 보현행자는 언제나 이 기본의 ‘인과 법칙’을 믿고 자기의 수행에 전념한다. 마치 사자가 뭇 짐승들을 굴복시키는 것처럼, 모든 악취를 없애고 외도를 조복하며 일체 번뇌에서 해탈하게 함은 보현행자의 본연의 자기 역할이다. 불보살의 역할을 대행하는 것이 보현의 행원이므로, 중생을 향하여 끝없는 원력을 발휘한다.

또 ‘임종할 마지막 순간에 육체의 모든 기관이 흩어지고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이 떠나가지만, 오직 원의 왕만이 따라와 앞길을 인도하여 극락왕생을 성취하게 한다’ 는 보현의 행원 속에 정토의 발원이 저절로 이루어짐을 나타낸 말이다. 결국 불국정토의 실현의 중추적 역할이 보현행원에 있다는 말이다. ‘극락세계에 태어나 여러 불보살들을 친경하고 마침내 그 자신도 연꽃 속에 태어나 있음을 보게 된다’는 말은 인간의 이상 세계를 환상적으로 미화시킨 문학적 표현일 수도 있지만, 마음에 서 열리는 불국 세계를 깊은 신앙 정서에 입각한 유심정토의 묘사로 볼 수 있다.

보현행원도 자성공덕이요, 극락세계도 결국은 자성공덕일 뿐이다. 인간의 마음, 그 자체가 공덕인 줄 모르고 망령된 업에 끌려가 그릇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배각합진’(背覺合塵)이라 한다. 이것은 깨달음을 등지고 번뇌에 붙어버리는 중생의 몽매함을 일컫는 말이다. 광석 속에 들어 있는 순금을 추출해 내듯이, 자성 공덕을 번뇌 속에서 추출하여 계발해 내는 것이 불교의 수행이다.

무릇 세상의 허망성이 모든 현상을 덧없이 사라지게 하지만, 원력이 충만한 마음에는 영원성이 기약되고 무한한 활동 영역이 언제나 보장되어 있다. 미래겁이 다하도록 내가 할 역할은 쉴 새가 없어 결코 중단되는 일이 없으며, 끝나는 시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원의 왕’이 되어 세상을 살 때, 세상은 영원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이 나를 제도하고 남을 제도하는 유일한 길이다. 모든 일은 마음에 의지해 있고 마음에 의해서 해결된다. 생명의 발전을 방해하는 것도 마음이고, 생명의 발전을 도와주는 것도 마음이다.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것을 거둬들인다(觀心一法 總攝諸行)고 한다. 내 마음이 ‘원의 왕’이 되면 내 인생은 영원하고, 세상은 무한히 넓어지는 것이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5년 9월 제58호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