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한 생각 일으키면 한 몸을 받아나고 백가지 생각 일으키면 백의 몸을 받아 난다고 들었습니다. 일에 열중해서 삼매에 빠져있는 때는 생사의 업을 받지 않는 것인지요.
大行) 이 우주에는 비유하자면 그물같고 체와 같은 법망, 진리의 그물이 쳐져 있습니다. 그것은 곧 인연의 그물이요, 업의 법칙의 그물입니다. 우리가 하는 행위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 짓는 생각 하나하나가 빠짐없이 다 포착되 는 그런 그물 말입니다. 내가 신런막의로 들이고 내는 것이 모두 한치의 오차나 빈틈도 없이 입력 이 되는 셈이지요. 그러니 설사 천하의 모든 사람들의 눈*귀를 속일 수 있 다 해도 이 진리의 그물의 눈 없는 눈, 귀없는 귀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 러나 신런막의로 짓는 업이 다 한 생각에 달려있듯이 쌓인 업을 녹일 수 있는 것도 한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업이란 본래 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천년 어둠에 잠긴 동굴 속이라도 촛불 하나 켜들면 어둠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듯이, 어둠이 본래 있지 않은 것처럼, 업 또한 그와 같아서 한 생각에 녹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자기인 줄로만 알아서 ‘나’,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몰 록 떨어지지 않는 한 그물을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반야심경에 공과 색이 다르지 않다 하였는데 공과 색을 둘로 보는 한에는 본 래 공한 성품에 계합되지 않으니 한 생각 일으키는대로 채곡채곡 쌓일 수밖 에 없는 것입니다. 본래 나를 있게 한 근본 주인공 자리는 공하여 업이라는 실체가 없고 그럼으 로써 업이 붙을 자리도 없건만 공한 사실에 투철하지 못하기 때문에 ‘함이 없는 함’이 되질 않고 지은대로 등짐을 쌓아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래 공한 주인공 자리에다 몰록 놓고 맡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삼매다 무심이다 하는 것도, 삼매요 무심이라하면 이미 붙을 자리가 있는 것 이니 몰록 놓아 공한 자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내세울 게 하나도 없는 자리, 그야말로 말이 끊어진 자리가 그대로 여여하고 청정한 공의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