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智慧)의 배에 오르라

바른지혜가 생겨나지 않으면 속게 마련이다.

오욕(五慾)은 급류와 같아서 한번 빠지면 벗어나기 어려우니 마땅히 지혜라는 이름의 배나 뗏목으로 그곳을 건너야 한다. 어리석은 마음탓으로 항상 온갖 욕망에 집착(執着)하게 되거니와 오취(五趣)중에 윤회(輪廻)하면 어찌 벗어날 수 있으랴. [제법집요경]

[제법집요경]에 있는 법문입니다마는 우선 여기 사람의 경계, 눈 앞에 보이고 있는데 관심을 두고 빠지고 집착을 해버리면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마치 급히 흐르는 물에 몸을 내어맡긴 것 같아서 뗏목이나 배를 구해서 건너야지 그렇지 않고는 거기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급류가 무엇인가. 오욕이라 했습니다. 오욕이라 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심 다섯 가지를 말하는데 경에서는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경우와 경의 해석에서 나오는 오욕이 조금 다른 것이 있습니다.

재.색.식.명.수 (財. 色. 食. 名. 睡) 재물에 대한 욕심, 이것은 아주 급한 여울 같아서 그 욕심 떨어지기가 어렵습니다. 색욕, 이성에 대한 애착심, 그것도 역시 벗어나기 어려습니다. 식욕, 먹는 것에 대한 욕심, 이것은 참으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명예, 이것도 역시 벗어나기 어렵고, 졸음, 잠자는 것, 수면에 대한 욕심 또한 어렵습니다. 그런데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 오욕 가운데서 가장 모진 것은 식욕이랍니다.

지금은 열반에 드셨지만 그전에 종정을 지내시던 한암 큰스님, 그 어른이 그러셨다고 합니다.

공양을 드시다가 “내가 오욕에서 어지간히 멀어졌다고 생각이 되는데 다만 식욕은 잘 안 떨어지더라.” 조금만 입에 맞는 것이 밌으면 손이 한번 더 간다는 것입니다. 오욕은 제각기 시장할 때라든가 환경의 조건에 따라서 앞서는 것이 따로 있지요.

경우에 따라 어떤 것은 뒤로 가고 어떤 것은 앞으로 오기도 하지요. 그외에 오근(五根 眼耳鼻舌身) 즉 색경(色境)에서부터 촉경(觸境)에 이르기까지 눈으로 보이는 것, 귀로 들리는 소리, 코로 말하는 향내, 혀로 맛는 음식맛, 그다음 부드럽다든가 깔깔하다든가 하는 촉감, 이러한 오경에 대한 집착, 애착, 그것을 또한 오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마는 문제는 자기 마음의 진실내면을 돌이켜봐서 자기내면 깊은 곳에 맑고 고요하고 안정된 것을 보지 못하고, 자기마음 겉에 들뜬 것, 눈에 보이는 것, 바깥에 있는 것, 거기에 마음을 두고 매달려 있을 때 생기는 것이 오욕입니다. 다섯가지 경계에 대한 집착입니다. 이 오경에 대한 집착이 오욕입니다. 이것은 온갖 고통을 가져오는 원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원천에서 생각을 돌이켜서 맑은 물, 깊은 마음, 자기본성 생명 속으로 돌이켜서 반야바라밀을 염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배나 뗏목을 타고 건너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급한 물 여울에 몸을 던진 것 같아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오취(五趣)중에 윤회하면 어찌 벗어날 수 있으랴. 오취라 하면 운허 스님이 번역하기를 다섯 가지 갈래라고 하셨습니다. 취는 도와 마찬가지입니다, 중생의 업에 의해서 얻게 되는 세계를 다섯가지로 분류해서 오취, 혹은 오도(五道)라고 합니다. 육도 중생, 육취 중생 가운데서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 이 다섯가지를 말하는 것이 오취라 그럽니다. 거기다가 아수라가 들어가면 육취입니다. 그러니까 오취라고 하는 것은 육취 중에서 아수라가 빠진 것입니다. 아수라를 빼면 아수라는 어디다 집어 넣는가. 대개 경에 보면 대승경전에 와서 육취하고 판에 박듯이 나오고 그전에 경전에는 오취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수라는 비천입니다. 하늘사람인데 하늘에서 쫒겨난 종류들입니다. 성깔을 내고 싸움 잘하고 그러다가 쫒겨나고 그러다가 세상사람들이 사악해지면 힘을 얻어서 또 제석천하고 싸움을 벌이고 그런 종자들인데 아수라라고 하면 천상에 속해 있던 한 부류가 중생이 되어 있는 세계입니다.

그러니까 오취라 그러면 욕계, 색계, 무색계 삼계에 있는 모든 중생세계를 다 말합니다. 그렇지만 수라, 싸움 잘하는 것을 수라라 하는데 세속사람들도 그말을 쓰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시비를 좋아하고 걸핏하면 싸움을 벌이려고 하면 “이 친구가 수라처에서 왔나.”하는 그런 말이 있지요. 이 말은 전생에 아수라에 있다가 인간으로 왔는가, 성을 벌컥벌컥 내고 싸움을 좋아하게 하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런 말들을 보면 평소에 쓰는 용어에서도 불교적인 말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습니가. 오취에서 벗어나려면 집착을 떼어야 합니다. 그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런데 집착은 애 오는가. 근본은 번뇌입니다. 번뇌 때문에 집착을 일으키고 집착에서 오욕이 생기고 오욕에서 더욱더 집착을 일으키게 되니까 그 집착의 행방을 따라서 육도를 윤회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육도를 윤회하는 인간이 되고 천상에 태어나고 지옥에 가고 아귀가 되고 축생이 되고 이렇게 고생스런 수레바퀴를 도는 것 같은 윤회를 벗어나려면 오욕을 버리고 집착을 버리고 번뇌를 버려야 합니다. 윤회를 근복적으로 끊고 삼계, 즉 욕계, 색계, 무색계라고 하는 중생이 태어난 세계에서 삼계를 돌아 다니는 나그네 길을 멈추게 하려면 욕심을 버리고 집착을 버리고 번뇌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어느 정도에서 집착이락 하고 어느 정도에서 욕심이라 하고 어느 정도에서 버려야 할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행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어떤 수행을 하는 것인가. 호흡입니다. 호흡을 아나아빠사나(티)라 해서 아반수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호흡법을 통해서 반야바라밀을 열심히 염하고 호흡법을 통해서 마음에 안정을 가져오면 저절로 선정력이 생기지요. 선정력이 생기면 지혜가 열리고 지혜가 열리면 해탈이 됩니다. 그런데 선정력에서 왜 지혜가 생기느냐, 선정에서 지혜가 생긴다고 하는 것은 호흡을 일심으로하고 반야바라밀을 일심으로 염하고 그렇게 해서 염하는 것을 끊임 없이 지켜봐서 마음이 안정된 데 이르면 내가 있고 바깥경계가 있고 대립관계가 있고 하여튼 그러한 경계가 없어지고 진리세계가 확 나타납니다. 항상 비유하는 것처럼 구름이 벗겨지면 태양의 햇살이 쏟아지는 것처럼 반야바라밀 염송하고 호흡을 열심히 하면 마음에 구름이 다 가시고 밝은 태양이 나타납니다.

“백 년을 산다고 해도 지혜가 없고 선정이 없고 보면 하루 밖에 못 산다고 할지라도 지혜있고 선정있는 사람만 못하다.” [출요경]

[출요경]에 있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 대목을 읽으면서 지금 말씀드린 대문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평범하게 세상을 살면서도 하루라도 법문을 듣고, 법문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지 하고 마음 먹고, 일심으로 바라밀 염송을 한다든가 호흡을 한다든가 그렇게 해서 선정을 얻고 보면 진리가 다 나타납니다. 경을 배운 적이 없고 법문 한번 들은 것이 없다 하더라도 그 한가지 일 구 법문만 가지고도 진리가 다 나타납니다. 그렇게 때문에 몇 생 동안의 윤회의 세계에 종지부를 찍고 해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백 년을 헛되게 사는 것보다 하루라도 그렇게 사는 것이 참 귀한 삶이 아니겠느냐하는 것입니다, 생사에서부터 벗어나니까 이 대목이 퍽 좋았습니다. 호흡을 하고 염송을 해서 번뇌가 쉰다는 것은 틀림 없습니다. [화엄경]에 있습니다. 호흡을 하면 번뇌가 쉽니다. 번뇌망상이 자꾸 일고 이 생각 저 생각이 자꾸 일더라도 호흡을 가만히 쭉 들이마시고 잠깐 멈추고, 호흡을 다 토하고 하다보면 자기 생각과 호흡이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잡념이 다 없어져 버립니다. 잡념이 다 없어지는 것은 마치 먼지가 일었는데 그 위에 비가 내리는 것과 같다 했습니다. 먼지가 끼었다가도 비가 내리면 말끔히 씻어내리는 것처럼 번뇌망상이 일었다가도 호흡을 해서 선정력을 닦으면 저절로 그 번뇌가 다 없어집니다. 선정력이 닦아지면 거듭 말씀드리지만 거기서 진리세계가 나타납니다. 구름이 다 사라지기 때문에 햇살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서 지혜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들 모두가 이 가르침을, 이 논리를 마음 속에서 받아들이셔서 여태까지 해 오던 바라밀 정진에 더욱 큰 성과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말씀드린 대목이 바라밀 염송, 그리고 호흡을 함께 하라. 그리고 번뇌 망상이 일고 마음이 산란해지거든 무조건 호흡하라.

그리고 염송을 함께 하라. 그렇게 되면 번뇌가 다 쉬고 선정력이 생기고 망념이 사라져서 지혜가 열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마는 저는 경을 배운 사람이 아닙니다. 문자를 배운 사람이 아닙니다. 경학을 배운 사람이 아니나 왜 경을 보고 무얼 아는 것처럼 떠드느냐 하면 앉아서 참선한다고 졸고 있는 동안에 조금씩 느낀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경전이 딴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짐작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에 비록 제가 깨치지는 못했어도 짐작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에 비록 제가 깨치지는 못했어도 그 근처에 조금 냄새를 맡았기 때문에 경을 보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들, 부디 바라밀 정진 가운데서 아나아빠나사(티), 호흡법도 함께 겸하셔서 선정력을 얻고 지혜를 자기 경계로 다 드러내서 쓰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 그렇게 됩니다. 뭐 안 해서 안 되는 것이지 안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새로이 합시다.

光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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