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가 다 佛性(불성)이다

깊은 산 속, 산사(山寺)로부터 울려 퍼지는 범종소리.

새벽녘에 울려 퍼지는 이 범종 치는 소리를 들으면 우리들 마음속에서 모든 생각이 싹 사라져 버립니다.

거기에는 나라고 할 것도 없고, 또 내가 아니라고 할 것도 없게 됩니다. 오직 범종소리만이 온 우주를 채울 뿐입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옵니다.

꽃이 피고 나비가 나는 것을 보면서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를 듣고 있자면, 절로 봄기운이 몸 속에서 솟구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오직 봄뿐입니다. 그밖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관광할 때 여러분은 폭포 바로 밑까지 배를 타고 갑니다. 그러면 우리들 눈앞과 좌·우 그리고 마음속까지도 폭포수가 쏟아져 내립니다.

나도 모르게 절로 외치고 맙니다.

아!!!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우리의 마음속과 밖은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선(禪)을 하는 마음입니다.

본래 자성(自性)에는 아무런 상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언어와 문자가 필요없습니다. 조금도 생각을 내지 않으면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인 것입니다. 참 진리는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문자를 쓰는 것일까요? 또 신문은 왜 만드는 것일까요?

한약 처방을 보면 더위먹은 병은 뜨거운 약을 먹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너나할것 없이 모두 언어와 문자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자와 말이라는 약으로 이 병을 고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망상에 사로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서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善)은 무엇이고 악(惡)은 무엇입니까? 누가 선을 만들고 누가 악을 만듭니까?

그들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견해에만 매달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견해는 다릅니다. 어떻게 자기 견해만이 옳고 다른 사람의 견해는 틀리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망상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참 진리를 알고 싶다면 자신의 상황이나 조건, 그리고 모든 견해를 몽땅 다 놓아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할때 우리 마음은 생각 이전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생각 이전」이란 깨끗한 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깨끗한 마음에는 안과 밖이 따로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일 뿐입니다. 「여여한 경지」가 참 진리인 것입니다.

어떤 조사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일 이 문을 들어서거든,
일체 생각을 내지 마라.

이 말은 여러분이 생각을 내게 되면 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생각 이전의 상태로 지킨다면, 바로 그것이 선을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또 다른 조사께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것은 모두 다 옳게 생각하라는 것뿐이다.

만일 이미 생각을 끊어 버렸다면 부처님 말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반야심경》에 이르길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하였다. 이 말의 뜻은 「무색무공(無色無空)」이다. 그러나 「무색무공」의 참뜻은 색은 색이고, 공은 공인 도리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생각을 하면, 여러분은 이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생각을 내지 않는다면 「있는 그대로」가 불성입니다.

무엇이 불성입니까?

깊은 산 속, 산사로부터 울려 퍼지는 범종소리,

참 진리는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淸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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