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떠한 일을 책임지고 행해야 할 것인가.
부모에게는 효도하며 남편에게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도록 도와주고,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가는 일 이러한 일들이 나의 책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즉, 내가 있는 위치와 환경 그리고 어떻게 매사를 수용해야 하는가 하는 이 세 가지를 분명히 할 때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 떳떳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내 책임을 다할 때 내 갈 길이 환하게 열립니다. 지구상의 인구가 폭발할 지경에 있는 변화하는 격동기의 시기에 어떻게 해야만 여성으로서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겠는가?
항상 나 자신이 무엇인가 하는 것부터 찾아야 합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인가하고 나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어디서 왔으며 죽어서는 어디로 갈 것인가. 도대체 우리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이 지구를 창조했다는 것이 맞는 것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 유심조, 즉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이 맞는 것인가.
또 유물론에서 말하는 물질이 맞는 것인가.
이러한 것들이 각 종파마다 끊임없이 논쟁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생각으로써 본체를 찾고 우주의 근본을 찾으려 하면 안 됩니다. 내 자신을 찾아들어가는 참선을 해야 합니다.
지금 서양에서는 신부, 수녀 그리고 목사들이 참선을 하고 있습니다.
옛날 대혜선사가 황벽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제가 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누가 법을 배우러 와?”
“제가요.”
“이놈의 자식 어째서 송장을 끌고 다니느냐?”
옛날 서암선사께서는 매일같이 “주인공아”라고 묻고 “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정신 바짝 차려라” “네” 또는 “언제나 남한테 속지 말아라” “네” 하였습니다. “주인공아” 하고 ‘나’라는 사람이 대답하셨는데 어떤 것이 진짜 주인공입니까?
옛날 보리달마께서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 양무제를 만났습니다.
양무제는 달마대사에게 예의를 갖추고 물었습니다.
“대사님, 나는 수천의 절을 짓고 수많은 스님들에게 가사 장삼을 비롯하여 많은 공덕을 지었는데 내 공덕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 공덕이 없소. 거울같이 텅 빈자리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모를 뿐입니다.”
달마대사께서 아무 미련 없이 양무제 곁을 떠나 양자강을 건너 위나라로 갔습니다. 소림사의 조그마한 굴에서 9년 동안 면벽참선을 하였습니다.
‘아직도 중국 땅은 불교를 펼 시기가 못 되는구나’하고 안타까워하였습니다. 당시 위나라에 국사가 혜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혜가대사는 문무백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실에서 매월 설법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혜가스님이 방안에서 경전을 보고 있는데 밖에서 어린아이의 메아리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문을 열고 살펴보니 허공에서 오색광명이 비추면서, “네가 옳은 불법을 알고자 하면 소림굴로 찾아가라”고 하였습니다. 그 길로 혜가스님은 소림굴로 찾아갔습니다.
달마가 혜가를 보고,
“무엇하러 여기에 왔느냐?”
“네, 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법을 구하러 왔느냐. 그러면 나를 믿느냐?”
“네 믿습니다.”
“믿는 표시를 해 보아라.”
그 때 혜가스님은 팔뚝을 잘랐습니다. 팔뚝이 끊어지니 혜가스님은 몹시 아팠습니다.
“스님, 법은 고사하고 내 마음은 너무 아픕니다. 아픈 마음부터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그래, 그 편안한 마음을 내게 가져오너라.”
“편안한 마음을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여 살게 되면 내 본래 마음을 모릅니다. 모양과 이름에 집착하지 아니 하였을 때 내 본래 성품으로 돌아갑니다. 본 성품으로 돌아갔을 때 내가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을 해야 될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내 마음을 찾는 공부를 합시다. 그렇게 되면 올바른 어머니, 부인, 국민이 되고 올바른 한 사람이 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인류의 행복을 줄 수 있는 마음의 광명을 찾게 됩니다.
열심히 나를 찾아서 모든 사람들에게 광명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崇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