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계이야기] 2. 불투도(不偸盜) – 왜 불투도를 제2계로 삼았는가

불투도(不偸盜)는 남의 재물을 훔치지 않는 것이다.

그럼 재물이란 무엇인가? 재(財)는 금·은·돈·귀중품 등을 말하고, 물(物)은 의복 및 음식, 구리·쇠·나무 등으로 만든 기구 등을 가리킨다. 불교에서는 이 불투도를 근본계율 중 두 번째에 두고 있다. 왜 생명과 관련된 제 1불살생계 다음의 자리에 불투도를 둔 것일까? 여기에는 중생의 생존과 관련된 까닭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형상을 지닌 중생들은 어떤 중생이든 음식을 먹고 영양을 섭취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최소한의 생활을 함에 있어서는 먹는 것 이외에 의복과 주택에 있어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의식주(衣食住)’라는 한 단어로 간단히 요약하고 있다. 그런데 ‘의식주’라는 이 한 단어 속에 담겨진 내용을 꿰뚫어보면 매우 복잡한 인연의 고리들이 얽혀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조금 더 심도있게 살펴보자.

예컨대 우리가 매일 먹는 밥 한 그릇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심층적으로 추구해 보면, 밥그릇 속의 쌀 한톨에 50억 인류의 피와 땀이 응집되어 있다.

한 알의 쌀을 얻기 위해서는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거두어들이는 농부가 있어야 한다. 또한 농부를 도와줄 소와 농기계도 있어야 하고, 농부가 입을 의복등 온갖 생활 필수품이 공급되어야 한다. 그리고 농부의 자녀를 교육시킬 학교와 교과서와 참고서도 제공 되어야 하고, 병이 나면 진찰도 하고 약을 먹을 수 있는 의료시설과 의료인과 각종 약품 등이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제공되지 않으면 안된다.

냉장고·TV·라디오·전기 등 각종 전자제품을 비롯한 생활도구와 문화시설도 수반되어야 한다. 또 농부들이 안심하고 일하기 위해서는 치안유지가 요구되고 적대국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되지 않으면 안되므로 경찰이나 군인이 있어야 하며, 나아가 유엔군과 같은 국제적인 규모의 협동이 필요하게 된다.

생활필수품을 공급하는 상점이나 시장이 적정거리안에 있어야 하고, 농수산·상공·재무·체신·교통·건설·문교부 등 국가 행정 각 부서의 시책이 시의 적절하게 연계되어야 하며, 각계 각 분야에서 생산하는 농약·화장품·섬유·석유화학제품 등 각종 공산품이 쉬지 않고 생산 공급되어야 한다.

이와같은 일들을 생각할 때 우리가 하루 세 끼 날마다 먹는 밥 한 그릇이 얼마나 귀중하고 엄청난 연기(緣起)관계 아래에서 제공되고 있는 것인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밥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주와 관련된 모든 물건들은 부사의한 인과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소중한 것들이다. 더욱이 중생들은 바로 이러한 의식주를 의지하며 살고 있다. 중생들에게 있어 의식주는 제 2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남의 제물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그것이 큰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가끔 접하게 된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강력범죄가 날로 증폭됨에 따라 양심이 무감각해진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의 재물을 도둑질한다는 것은 생의 의지처를 빼앗는 것이고, 남의 생명을 간접적으로 빼앗는 것이며, 생활수단을 제거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와같은 까닭으로 남의 것을 훔치는 투도계를 살생계 다음의 중계(重戒)로 제지하게 된 것이다.

중생의 생명 그 자체는 내명(內命)이여, 재물은 외명(外命)이다. 그러므로 중생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끊는 살생계를 제1계로 삼았고, 그것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을 빼앗는 투도는 외명을 끊는 것이기 때문에 제2의 자리에 놓은 것이다. 정녕 우리 불자들은 투도계가 살생계의 연속이요 제 2의 살생계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지난 달 ‘불살생’을 이야기할 때, 남방불교에서는 ‘남을 겉으로도 상해하지 않고 속으로도 상해하지 않는 것’을 불살생의 정의로 삼고 있음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이 남방불교의 살생계에서만 강조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계에는 나와 남의 겉과 속, 마음과 육체, 정신과 물질의 그 무엇도 상해하지 않고 살려간다는 근본정신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상해는 일종의 살생이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도둑질이 나와 남을 상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기 때문에 ‘하지 말라’과 한 것임을 명심하고, 남의 재물을 고의로 취하는 투도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우리들이 구체적으로 알아야 할 투도의 유형을 살펴보자.

日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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