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란 무엇인가?
반야는 지혜이다. 잘 사는 지혜를 뜻하는 것이다.
이 반야의 산스크리트 원어는 프라즈나(prajna)이다. 프라즈나는 진실한 생명을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근원적인 예지’이다. 즉, 잘 사는 지혜, 가장 잘 살 수 있게끔 하는 지혜가 반야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같은 지혜는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앞에서 잠깐 살펴보았듯이 마하의 능력은 집중하는 데서 반야가 생겨나는 것이요 반야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흩어버리면 아무런 힘이 없는 마하의 능력을 한군데로 집중하여 모으게 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거기에서 빛이 나게 된다. 이것이 대적광삼매의 경지요 마하프라즈나이다.
마하프라즈나! 이것은 곧 선이다. 밖으로 부산하게 흩어지는 마음을 화두 하나로써 집중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차츰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빛이 나기 마련인 것이다.
마하의 힘은 없는 데가 없다. 그 어느 곳에나 미치지 않는 바가 없는 무한의 능력이요 어디에나 두루하고 있는 우리의 마음자리이지만, 이 무한 능력을 모아서 사용하지 않는다면 결코 슬기로운 삶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반야가 있으면 잘 살아갈 수가 있다. 마음이 반야로 밝혀져 있으면 자유로운 삶, 해탈의 길을 걸어갈 수가 있다. 번뇌를 좇아 마음을 흩고 사는 삶을 원하는 이가 없다.
화두로써 염불로써 마음을 모아서, 삼매를 향해 나아가는 가운데 반야는 반드시 그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잠시 이 반야를 현대과학의 라디오 원리로써 설명해보자.
우리가 방송국에서 음파(소리)를 축음하면 그 음파가 전파로 녹화가 되고, 그 전파가 모든 공간으로 퍼져나가면 라디오에서 공간 속의 전파를 받아 다시 음파(소리)로 내어놓게 된다. 이것이 라디오의 원리이다.
이와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마음의 전파로 가득 채워져 있다. ‘무한능력, 영원생명’의 전파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라디오의 사이클을 맞추지 않으면 적절한 방송, 가장 좋은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아무리 마하의 전파가 가득 차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 모으지 않으면, 그것을 집중하여 나의 것으로 받아 쓰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되고 마는 것이다.
집중하여 받아 모아 쓰는 것! 이것이 마하반야신이다.
무한능력을 집중시켜 한없는 지혜의 힘을 이루는 것! 그것이 마하프라즈나인 것이다.
마하반야와 관자재보살
이 반야를 지극히 훌륭하게 활용하신 분은 관자재보살이다.
불자들이 자수 암송하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첫머리는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모두 공함을 비추어 보시고 일체 고액을 건너가게 되었다.’는 구절로 시작된다.
관하는 것이 자재한 보살, 즉 마하반야 그 자체가 되신 분이 관자재보살이며, 반야의 활용이 자유자재한 분이 관자재보살인 것이다.
관자재의 ‘관’은 곧 반야이다. 관자재보살의 관은 ‘볼 관’자이지만, 눈으로 보는 관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관’이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 자재한 분을 관자재보살이라 하는 것이다.
그분은 중생의 고통을 귀로써 듣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중생들이 호소하는 모든 고통의 소리를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듣는 분이다.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중생의 고통을 관하여 무한 자비를 베풀고 중생의 영원생명을 일깨우는 분이다.
이렇게 마음을 관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모든 중생들을 보살피는 대자대비의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지 아니할 수 없게 된다.
그 사람의 입속에는 언제나 향기가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그 말은 온통 향기로 가득하여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주고,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푸근해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입가에는 언제나 미소를 띄우는 사람이요 가슴에는 태양을 안고 사는 사람이며, 언제나 희망과 용기가 가득 차 있으니 기쁘구나! 즐겁구나! 편안하구나! 좋고 좋은 것뿐이다.
그야말로 아주 꼬들꼬들하게 된 고부밥을 드려도,
“아, 구슬구슬한 것이 좋습니다.”
“죽밥이 되었습니다.”
“아, 물성해서 먹기 좋습니다.”
“짜서 어떻게 잡수실까?”
“짭짤하니 좋습니다.”
“싱겁습니다.”
“삼삼한 게 좋습니다.”
뜨거우면 따뜻해서 좋고 차가우면 시원해서 좋고… 좋다. 좋은 것뿐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반야의 빛이요 관자재의 묘한 작용인 것이다.
나아가 이 자재로운 마음이 밖으로 밖으로 퍼져나갈 때, ‘세계는 하나의 꽃’이 된다. 자재롭고 기쁘고 즐거운 내 마음을 따라 온세계는 밝고 맑고 깨끗한 한 송이 연꽃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관자재보살은 바로 온세계의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 분이다.
세계를 한 송이 꽃으로 삼고, 세계를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꽃으로 피어나게 하려는 것이 마하반야를 체득한 관자재보살의 서원이요 진면목인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참된 반야는 곧바로 자비로 통한다는 것을.
깊은 삼매는 반야를 길러내고, 반야의 대광명은 마하의 대자대비를 발현하는 것이다.
삼매와 반야와 대자대비!
옛날, 지혜는 없지만 도 닦기를 갈구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그는 깊은 산속으로 도인스님을 찾아갔다.
“저는 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제발 도인으로 만들어 주십시요. 스님께서 하라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10년 동안 내 시봉을 하겠느냐?”
“예”
“10년 동안 시봉을 하면서 내가 시키는대로 하겠느냐?”
“예.”
“오늘부터 물 길러오고 밥하고 나무하고 불도 때고 빨래도 모두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예, 무엇이든지 할테니 도인이 되는 법만 가르쳐주십시요.”
“너의 결심이 그러하다면 좋다. 10년을 기한으로 삼아 한번 해보자. 내가 도인되는 화두를 하나 가르쳐줄테니, 그 화두를 밤이고 낮이고 외우되 밤과 낮이 하나가 되도록 외워라.”
“밤과 낮이 하나가 되도록…”
고요히 앉아 있는 시간에 외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무를 하거나 밥을 먹거나 똥오줌을 누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가거나 오거나 앉거나 서거나 이것을 해야 하며, 잠을 자면서도 외울 수 있고 꿈을 꿀 때도 그 화두를 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겠느냐?”
“노력해보겠습니다.”
“10년만 노력하면 오매일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번 해보아라.”
그러나 도인스님이 막상 가르쳐준 화두는 좀 이상스러운 화두였다.
“살짝 살짝 하는구나. 암만 그래도 나는 안다.”
이것이 화두였다.
“그것만 하면 됩니까?”
“그래, 그것만 하면 된다.”
그 사람은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그것만을 외웠다.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꿈에도 생시에도 ‘살짝 살짝 하는구나…’가 놓쳐지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스님께 밤도 낮도 꿈에도 생시에도 하나같이 ‘살짝 살짝…’이 이루어진다고 하자 스님은 하산을 명령하였다.
“됐어. 이제 다 된거야. 이제 더 가르쳐줄 것도 배울 것도 없으니 하산하도록 하여라.”
따로이 크게 깨친 것도 없이 10년만에 하산하여 집으로 돌아오자 마을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무개가 산에 가서 10년 동안 도를 닦고 왔단다.”
그러나 10년 동안 도를 닦았다는 그에게서는 특별한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멍텅구리처럼 앉아서 간간히 ‘살짝 살짝 하는구나.’를 내뱉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실망한 사람들은 “10년 허송세월도 아까운데 바보까지 도어 돌아왔다.”고 하면서 모두 돌아가버렸다.
그날밤, 홀로 앉아 ‘살짝’ 화두를 들고 있는데, 도둑이 와서 문의 빗장을 살며시 열고 있었다. 그때 방안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문틈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니 10년 동안 도를 닦고 왔다는 이가 앉아서 “살짝 살짝 하는구나. 아무리 그래도 나는 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도둑은 제 발이 저렸다.
“아이구, 큰일 났구나. 내가 온 줄을 벌써 알고 있었구나.”
줄행랑을 친 도둑의 이야기가 온마을 사람들에게 소문이 났다.
“알더라, 진짜 알더라. 진짜 도인이더라.”
그때부터 문제를 지닌 사람들이 살짝도인을 찾기 시작했다.
남에게 돈을 빌려주고 돈을 받지 못해 속이 타 죽을 지경에 이른 사람이 있었다. 돈을 받기 위해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통하지 않자,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살짝도인을 찾아온 것이었다.
“도인님, 도인님. 이만저만해서 아무 때 제가 돈을 빌려 주었더니 그 사람이 이 핑게 저 핑게를 대면서 돈을 주지 않습니다. 나는 이 돈이 없으면 죽습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도인이 말소리가 들린다.
“살짝 살짝 하는구나. 암만 그래도 나는 안다.”
“옳거니!”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돈을 받아낼 수 있는 술책이 떠올랐고 그 길로 달려가 돈을 받게 되었다.
또 하루는 사소한 말다툼 끝에 서로 원수가 된 사람이 찾아왔다. 그들은 만나면 멱살잡이를 하고 싸웠고, 서로의 미움은 점점 깊어만 갔다. 마침내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살짝도인을 찾아오기는 했지만 그곳에서도 싸움은 계속되었다.
두 사람이 멱살을 잡고 싸우고 있는데 살짝도인이 “살짝 살짝 하는구나..” 하자, 두 사람은 순간 ‘아!’ 하고 소리치며 악수를 하며 화해하는 것이었다.
“정말 미안하네. 우리가 이렇게 싸울 것이 아니었는데…”
이와같이 살짝도인은 누구에게나, 어떠한 애로사항이 있는 사람에게나 딴소리를 하는 일이 없었다. 오직, “살짝 살짝 하는구나. 암만 그래도 나는 안다.”는 그 한마디 뿐이었다. 그런데도 모든 매듭이 풀리고 일이 해결되는 것이었다.
살짝도인의 신통함이 점점 소문이 나서 마침내 임금님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욕심 많기로 유명한 임금님은 살짝도인을 불러 그날부터 자기의 옆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였다. 수라상도 겸상으로 차려 같이 먹고 옷도 임금님과 같은 옷을 입는 등 임금으로부터 지극한 대접을 받으면서 지냈다.
그런데 마침 대신들 가운데 역모를 꾀하는 사람이 있었다.
대신은 임금의 이발사를 꾀어 이발을 할 때 임금님의 목을 면도칼로 찔러 죽일 것을 사주하였다. ‘고관대작의 벼슬에 백만금을 주겠다.’는 말에 현혹되어 죽이겠다고는 하였지만, 이튿날 아침에 면도를 하면서 막상 임금님을 죽이려고 하니 가슴이 심하게 뛰고 손은 벌벌 떨리기만 할 뿐이었다. 마침내 칼이 임금님의 목에 이르렀는데 옆에 앉아 있던 도인이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살짝 살짝 하는구나. 암만 그래도 나는 안다.”
이발사는 황급히 칼을 던져버리고 석고대죄를 하였다.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아무개 대신이 시켜서 그랬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옛부터 전해오는 이 이야기가 매우 허황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 속에 깊은 도리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꿈속에서도 생시에도 한결같이 염할 수 있는 삼매의 경지에 이르면, 그 삼매로부터 무한의 능력은 저절로 샘솟게 되는 것이다.
살짝도인이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살짝 살짝 하는구나.”를 말한 것이 아니다. 24시간 중에 단 1초도 ‘살짝’ 화두가 떨어지는 때가 없이 언제나 ‘살짝’ 화두를 속으로 염하고 있기 때문에 가끔 입으로 나오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도 가끔 튀어나오는 그 말이 모든 문제를 해결짓는다.
왜?
내 이름을 듣는 이는 삼악도를 면하고
내 얼굴 보는 이는 해탈을 얻네
살짝도인은 그 깊은 삼매 속에서 이와같은 경지를 얻었던 것이다. 내 얼굴을 보는 사람이나 내 이름을 듣는 사람이 모두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동체대비의 경지. 바로 관자재한 관세음보살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우리가 염불을 하든 참선을 하든 주력을 하든, 꿈속에서도 생시에도 한결같이 염할 수 있는 삼매의 경지에 이르면, 그 삼매로부터 무한의 능력은 저절로 샘솟게 되고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원래부터 갖추고 있는 본연의 자리에서 우러나오게 된다. ‘영원생명, 무한능력’의 마음을 바깥세계로 흩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마하의 마음을 집중하고 한 곳으로 모아 삼매를 이룰 때 반야의 지혜는 용솟음치게 되며, 그 반야는 모든 중생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관세음보살의 동체대비로 이어지는 것이다.
구도자는 거듭거듭 이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수행하여야 한다.
오매일여의 삼매야말로 자타일시성불도로 나아가는 참 해탈의 길임을 불자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日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