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마음을 모으자.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 있다.
깨달음을 이루느냐 이루지 못하느냐, 그것은 오직 나에게 달려 있다. 나의 신심에 달려 있다. 결코 물러서지 않는 불퇴전의 신심으로 나아가면 틀림없이 견성성불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사 전체를 통하여 볼 때 금광불괴의 신심으로 정진하여 도를 이룬 분은 너무나 많다. 그중 많은 수행자의 귀감이 되고 있는 송나라 법원선사의 구도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젊은 시절, 법원스님은 의회스님 등 70여 명의 수행자와 함께 전국 선원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하다가, 귀성화상을 찾아갔다. 이들 일행이 절에 들어서자마자 귀성화상은 대뜸 고함을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 땡추 중놈들아! 여기가 어디라고 몰려왔느냐?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처먹고 지랄하는 너희 놈들에게 줄 쌀은 단 한 톨도 없다. 꺼져라, 꺼져.”
상면의 인사도 드리기 전에 욕부터 잔뜩 얻어먹었지만 70여 명의 수좌들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귀성화상 앞에 앉았다. 선방의 입방을 허락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라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자세였다. 이를 본 귀성화상은 더욱 노발대발하면서 물통을 들고와 수좌들의 머리 위에 퍼부었다.
그러나 물 세례에도 자세를 흩뜨리는 수좌가 없자 이번에는 부엌으로 달려가 아궁이에서 재를 퍼다가 미친 사람처럼 수좌들의 머리위에 퍼부었다. 물에 빠진 생쥐가 잿더미 위를 딩군 꼴이 되어버린 수좌들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에잇! 우리가 눈이 삐었지. 저런 미친 늙은이를 도인스님으로 알고 찾아왔으니! 돌아가자, 돌아가!”
모두들 성을 불끈 내면서 돌아가고, 마침내 법원스님과 의회스님만이 남았다. 귀성화상은 다시 발을 구르며 호령을 했다.
“저놈들은 다 도망을 쳤는데, 너희 두 놈은 무얼 얻어먹겠다고 아직까지 버티고 있느냐?”
“저희는 오래전부터 노스님의 도력을 흠모하였사온데, 오늘에야 겨우 스님을 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찌 한 동이의 물과 한 삼태기의 재에 귀중한 법을 버리고 가오리까?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는 결단코 이 자리에서 물러가지 않겠습니다.”
“너희 두 놈은 조금 쓸 만한 것 같다. 마침 우리 절에 대중의 음식이나 침구를 관리하는 전좌 소임이 비었으니 그것이나 맡아 보아라.”
“분부대로 행하여 법은에 보답하겠습니다.”
법원과 의회스님은 그 순간부터 고달프게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그 절은 고담하기 짝이 없었다. 수좌들의 식사는 가축의 먹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좌의 직책을 감당하가란 실로 눈물겨웠으며, 공부하는 수좌들에게도 여간 미안하지 않았다.
어느날, 귀성화상이 출타한 틈을 타서 수좌들이 전좌인 법원스님에게 몰려와 특별공양을 청하였다.
“날마다 사람으로는 차마 먹지 못할 것을 음식이라고 먹으니 힘이 하나도 없고, 힘이 없으니 도를 닦기도 힘듭니다. ‘도깨비 몰래 빨래한다.’고, 노스님 안 계실 때 횐죽이나 한번 쑤어 먹읍시다.”
도원스님은 전부터 늘 딱한 마음을 갖고 있던 참이라 선뜻 응하여 부랴부랴 죽을 쑤었고, 대중들은 배가 잔뜩 부르게 실컷 먹었다.
얼마 후 귀성화상이 절에 돌아오자 한 승려가 이를 일러 바쳤고, 노발대발한 화상은 당장 죽을 쑨 장본인을 불러오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법원스님은 모든 것으 각오하고 화상 앞으로 나아가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귀성화상은 용서를 몰랐다.
“네 이놈! 누구 허락을 받고 죽을 쑤어 주었느냐? 그런 호의는 나중에 네놈이 주지가 될 때나 베풀어라. 건방진 놈! 이 산의 법규를 네 멋대로 어지럽혀? 너 같은 놈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단 한줌의 먼지라도 삼보의 재산에 함부로 손을 대어서는 안되는 법이야!”
귀성화상은 추상같이 꾸짖더니 즉석에서 감찰업무를 맡아 보는 지사승을 부렀다.
“법원의 모든 소유물을 빼앗아라. 그것을 모조리 팔아 절의 재산으로 납부토록 하라.”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법원, 너는 즉시 이 절을 떠나라.”
법원스님이 절에서 쫓겨나게 되자 산중의 노장스님과 유력한 신도들이 귀성화상을 찾아가 누누이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귀성화상의 노여움은 타는 불에 기름을 부은 듯 더욱더 충천하였다.
하는 수 없이 빈손으로 쫓겨난 법원스님은 거리를 방황하다가, 귀성화상 몰래 절로 돌아가 마루 밑에 숨었다. 오직 귀성화상의 법문을 듣겠다는 일념으로 먼지와 습기가 가득찬 마루 밑에서 주먹밥 한 덩이씩을 얻어먹으며 목숨을 부지하다 보니, 스님의 몰골은 산송장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마루 밑에서의 변함없는 정진은 스님을 진흙 속의 연꽃과 같은 경지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어느날 귀성화상은 외출을 하려고 막 방장실을 나오다가 문득 법원스님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귀성화상은 큰 봉변이나 당한 듯이 소리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이놈! 대관절 그 꼬락서니를 하고 여기 얼마나 있었느냐?”
“예, 한 반 년은 있었습니다.”
“뭐? 반 년이나 있었다고? 그래 그럼, 그동한 숙박료는 얼마나 내었느냐?”
“아직 한푼도 안냈습니다.”
“야, 이 도둑놈아! 당장 숙박비를 전부 따져서 냉큼 내 놓아라. 만약 한푼이라도 덜 내었다가는 관에 고발하여 감옥에 집어넣으리라.”
법원스님은 마루 밑에서 쫓겨나면서도 귀성화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동묘지, 다리 밑, 굴, 남의 집 헛간 등으로 옮겨다니며 부지런히 탁발하여 귀성화상이 요구했던 숙박료를 깨끗이 갚았다. 그리고 탁발 중에도 멀리 귀성화상의 모습이 보이면 그 자리에 엎드려 지극정성으로 절을 하였다.
이렇게 몇 달이 지난 후, 귀성화상은 돌연히 산중의 대중 모두를 법당으로 집합시켜 법문을 시작했다.
“이 산의 고불, 그리고 대중들은 들으라.”
그러자 대중들이 모두 의아해 하면서 여쭈었다.
“노스님, 이 산중에 스님 외에 또 다른 고불이 있습니까?”
“그렇다. 법원스님이야말로 진인이니라. 대중들은 즉시 거리로 나가 법답게 법원스님을 맞아들일지어다.”
이렇게 귀성화상은 법원스님을 영접하여 대중들 앞에서 불조정전의 대법을 전하는 건당식을 거행하였다.
법원선사의 이와같은 구도자세, 이러한 신심이라면 견성성불도 어렵지 않다. 견성성불이 피해가고 싶다 할지라도 결코 피해갈 수가 없다. 이에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깨달음은 스스로 다가온다.
日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