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누구도 그분의 생사여부를 알지 못하지만, 이 시대의 고승 중 제선스님이란 분이 계신다.
스님은 출가하기 전, 일본에 유학하여 대학을 다니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는데, 졸업 후 제주도로 돌아와서 하는 일없이 지내자 일본경찰들이 요시찰인물로 지목하여 감시를 늦추지 않았다. 때마침 집안 어른들은 적당한 규수가 있다며 결혼을 시켰고, 얼마 후 잘생긴 아들을 품에 안을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나무랄 데 없는 놈이야. 이 아이를 나라의 재목으로 키워야지!’
아들에게 특별한 정을 느꼈던 그는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옷도 먹는 것도 제일 좋은 것들로만 사주면서 애지중지 키웠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며칠이 지났을 무렵,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아야!” 하더니 탁 쓰러져서 영영 깨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아이의 시체를 안고 몇 날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고 눈물로 지새웠다. 날이 갈수록 그의 우울증은 커졌고 집안은 엉망이 되어갔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분위기를 바꾸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돈을 주며 여행할 것을 권하였다.
“금강산 구경이나 다녀오너라.”
그러나 금강산을 가기는커녕 서울에서 내기 바둑을 두다가 받은 돈 모두를 날려버렸다. 어차피 특별한 의욕이 없었던 그는 노동판에서 일도 하고 구걸도 하며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녔다. 그럭저럭 그의 발길은 묘향산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넓은 감자밭을 일구며 토굴살이 하는 노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토굴에서 며칠을 붙어 살다가 스님과 가까워지자 그는 아들을 잃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스님, 그 아이가 왜 그렇게 죽어버린 것일까요? 그 까닭은 알지 못하고는 제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 알아보는 것이야 간단하지. 7일만 잠 안자고 기도하면 금방 알 수 있어.”
“정말입니까?”
“만일 그렇게 해서 기도성취 못하면 내 목을 베어라. 아니, 부처님의 목도 떼어버려라.”
“좋습니다.”
그날부터 기도는 시작되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평소 아들 생각에만 빠지면 잠자지 않고 며칠을 지새던 그였는데, 이상하게도 기도를 시작하자 잠이 마구 퍼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님은 그의 졸음을 허용하지 않았다. 조금만 졸면 언제 나타났는지 주장자로 머리를 탁 때리면서 호통을 치곤 하셨다.
“때려 치위라. 벌써 졸았으니 소용없어. 기도성취 보러거든 다시 시작해.”
며칠 동안 졸고 혼나고 졸고 혼나기를 거듭한 그는 ‘먼저 잠 안자는 연습부터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깡통을 두드리며 감자밭 주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렇지만 졸음을 이기기는 쉽지가 않았다. 어떤 때는 밭두렁에서 떨어져 거꾸로 쳐박힌 채 잠에 골아 떨어지기도 하였다. 깨고 나면 목이 퉁퉁 부어 있고… 이렇게 갖은 고생을 하며 잠과 싸운 지 42일째 되는 날, 물건들이 커 보이기도 하고 작아 보이기도 하는 등 시야를 흐렸지만 잠은 오지 않게 되었다.
“오늘부터 다시 기도를 시작해라.”
스님의 지시대로 그는 7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관세음보살을 끊임없이 불렀다. 하지만 아들이 죽은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속았구나. 부처도 관세음보살도 원래 없는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니 성이 나서 불상의 목을 떼겠다며 불단 앞으로 가다가 탁자에 소매가 걸려 앞으로 넘어졌다.
바로 그 찰나, 아들이 그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나 반가워 안으려 하자 아들은 ‘히-‘ 웃으며 저만치 물러서는 것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겨우 다가서면 또 도망가 버리고 도망가버리고… 마침내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저런 놈은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 저놈을 어떻게 할까? 돌멩이로 머리를 쳐버릴까보다!’
이렇게 못된 생각까지 하다가 아이의 엉덩이를 발로 차자, 아이는 ‘아야!’ 소리를 지르며 뒤로 돌아서는데, 순식간에 개로 변하는 것이었다. 순간 그의 뇌리에 일본에서의 유학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대학을 다닐 때 머물렀던 친척 아저씨 집에는 개가 한 마리 있었다. 개는 그를 열심히 따랐을 뿐 아니라 말귀도 매우 밝았다. 산책을 갈 때도 극장 구경을 갈 때도 개는 열심히 쫓아왔다.
“너는 극장에 못들어간다. 집에 가 있다가 나중에 오너라.”
그러면 개는 집으로 갔다가 그가 극장에서 나올 시간에 맞추어 다시 와서 좋다고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영리하던 개가 어느날 갑자기 병이 들어 통 먹지를 않았다. 얼마 더 지나 뼈만 앙상하게 남아 곧 죽을 것처럼 되자, 친척 아저씨는 개를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도시 한복판에서 개가 죽으면 재수없다. 상자에 실어서 교외로 가지고 나가 버려라.”
할 수 없이 개를 담은 상자를 자전거에 싣고 교외로 나간 그는 숲속에 상자를 내려놓고 개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를 버리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구나. 네가 죽을 병이 들어 밥도 먹지 않으니… 여기 있다가 편안하게 죽어라.”
순간, 개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가슴이 아팠지만 일어서서 자전거를 끌고 돌아서는데, 개가 ‘왕’ 소리를 지르며 쫓아오는 것이었다. 비실비실 쫓아오다가 쓰러지고, 쫓아오다 쓰러지고… 어느덧 날도 저물고 교외의 어떤 집에 들어가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하였는데, 거기까지 쫓아온 개는 그의 곁에 바싹 붙어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마치 ‘나를 버리고는 못간다’는 듯이. 마침 바짝 마른 개를 측은하게 여긴 그 집 주인은 장국에 밥을 말아주었고, 이제까지 먹지 않던 개가 기운을 차려야겠다고 결심한듯 그릇까지 싹싹 핥아먹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도 장국 한 그릇을 말끔히 먹어치우고는 병이 나은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시작하자 개는 죽을 힘을 다하여 뒤를 따랐다. 천천히 달리면 천천히, 빨리 달리면 빨리 쫓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개가 포플러나무에 오줌을 누는 틈을 타서 그는 힘껏 자전거를 몰았다. 최대 속력을 낸 결과 개를 따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세 달이 지난 후, 그 개가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학교가 파하고 돌아와보니 개가 와 있었고, 개는 섬뜩한 눈빛으로 그를 계속 쏘아볼 뿐 만지는 것도 옆에 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주일 정도 집에 있다가 개는 다시 사라져버렸다.
“아하, 그 개가 나의 아들로 태어나서 제 찢어진 마음의 앙갚음을 하였구나!”
이렇게 인과의 법칙을 깨닫고 가야산 해인사 백련암으로 출가하여 승려가 된 제선스님은 열심히 참선 수행하여 높은 경지를 이루었고, 나이 60이 조금 못되었을 때 천축산 무문관으로 들어가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6년 동안 정진하였다. 그런데 6년을 며칠 앞두고 행방불명이 되었다. 한 거사가 스님의 수행을 자랑한답시고 TV인터뷰를 강요하자 자취를 감춘 것이었다.
현재까지 그 누구도 생사여부를 알지 못하는 제선스님. 이 제선스님의 인연 이야기처럼 세상의 모든 일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또한 윤회와 인과응보에 대한 실증은 옛부터 무수히 전하여지고 있으며, 오늘의 우리 주위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나의 주변에서 전생과 인과를 체험한 사례들도 많이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함께 엮어 이미 <시작도 끝도 없는 길>이란 제목으로 책을 내었으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의 예를 들지 않기로 한다.
불교의 첫걸음은 인과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된다. 확실히 인과를 믿고 좋은 인연을 맺으며 살아보라. 세상은 새롭게 전개되고, 활기찬 인생이 우리 앞에 전개될 것이다.
이제 장을 달리하여 인생을 새롭게 바꾸는 비결에 대해 논하여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