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참된 ‘나’를 위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의 앞길에는 행복과 사랑과 자유가 가득한 세계가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참된 ‘나’를 찾고 올바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없이 많다. 중생의 그릇에 따라, 병에 따라 약을 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가르침 속에서도 하나의 핵심은 한결같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 핵심은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고 마음을 허공처럼 맑게 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명제가 숨어 있다. 하나는 그 어떤 것보다 나의 주인공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끊임없이 찾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비우라’는 것이다. 먼저 첫번째 명제부터 살펴보자.
중국 송나라 초기, 단구의 서암에 살았던 서암 사언 스님은 날마다 판도방(큰 방) 앞마루에 걸터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서 자문자답하였다.
“주인공아!”
“예.”
“정신차려라.”
“예.”
“뒷날에도 남에게 속지 말아라.”
“예.”
서암스님이 매일같이 부르고 답한 주인고. 이 주인공은 우리가 본래부터 지니고 있었던 근본자리이며, 부모 대중에 들어가기 전의 참된 모습이다.
우리는 이 주인공과 함께 살아왔고 지금도 이 주인공과 함께 살아 가고 있다. 이 주인공은 우리를 잠시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주인공을 잊으며 살아가고 있다.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아니 조그마한 간격도 없기 때문에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 주인공을 잊지 말고 점검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참선, 기도, 간경, 주력 등의 방법이 있고 그중에서도 참선을 으뜸가는 수행법으로 보고 있다. (수행법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례로 살펴보고자 하며, 여기서는 생략한다.)
물론 지금 당장은 주인공을 돌아보는 것도, 참선 수행도 잘 안될지 모른다. 그러나 부처님의 법과 인연이 주어진 이 때 힘써 닦으면, 지금은 닦기 어려운 행일지라도 비롯하여 이전에 도를 이룬 분들 중 범부 아니었던 이가 어디 있었던가?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주인공을 돌아보며 꾸준히 정진해보라. 좋은 날은 반드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아니, 수행하는 그날 그날이 모두 좋은 날로 바뀔 수 있다.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 있다. 용기를 잃지 말고 정진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