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대도(無上大道)는 삼학도(三學道)의 완성
여러 가지 말씀이 많이 있으나 부처님한테 가는 길은 역시 간단명료(簡單明瞭)합니다.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계(戒), 정(定), 혜(慧) 삼학도(三學道)입니다. 계율(戒律)지키고, 선정(禪定)닦고, 참다운 지혜(智慧)로 해서 부처님의 길인, 그런 성상을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말이 있고 팔만장경(八萬藏經)이 있어 가지가지의 법문(法門)이 많이 있습니다만, 간추리면 역시 귀결점(歸結點)은 누구나가 흔히 알 수 있는 계(戒)와 정(定)과 혜(慧)의 삼학도(三學道)입니다.
이같이 간단명료한 법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애쓰고 계행(戒行)을 지키려 않고 또는, 삼매(三昧) 선정(禪定)을 안 통하면은 성불(成佛)이 없는데도 선정을 할려고 않으며 또, 부처님의 지혜(智慧)는 천지우주 만유(萬有)를, 모두를 다 부처님으로 볼 수 있는 평등무차별의 지혜인데도, 무차별(無差別)로 볼려고 않습니다.
삼학도가 오로지 성불의 길로 가는 탄탄대로요 무상대도(無上大道)인데도, 그런 큰 길로 안 가고서 자꾸만 좁은 길로 갈려고 합니다. 계율을 지키지 않고, 삼매, 선정을 안 닦고, 또는 우주만유를 하나로 볼 수 있는 그런 안목도 갖지 않고서는 성불의 길은 없습니다.
계율은 불성(佛性)에 따라서 곧, 부처님의 성품 따라서 행동하는 우리말이요 우리 행위입니다. 억지로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성자의 성품, 불성의 성품 따라서 행동하는 말, 행동하는 우리 행위가 계율입니다.
따라서, 불성(佛性)의 표현양상이 계율인지라, 계율을 지키면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부처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또는, 그와 역으로 우리 마음이 청정히 되어서 청정한 마음을 가지고 청정한 마음대로 행동하면, 그 행동 자체가 계율에 그냥 계합(契合)되는 것입니다.
불교에는 ‘인계생정(因戒生定)하고 인정생혜(因定生慧)라, 계율로 말미암아 삼매(三昧)라 하는 고요가 깃들고, 그런 고요로 말미암아 참다운 지혜(智慧)가 나온다’ 는 말씀이 있습니다.
계율이 없이 고요한 삼매를 구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입니다. 나무 위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이나 똑같습니다.
특히, 근래에 와서는 서방사회(西方社會)의 풍조(風潮)가 만연(曼延) 함에 따라서, 계율을 무시하고서 삼매에 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는, 도인이라 자처(自處)하는 사람도 역시 계율을 무시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부처님의 탄탄대로, 무상대도를 옆길로 빗나가는 행위입니다.
계율 지키고 선정을 닦는 참다운 지혜는 무엇인가?
이것은, 중생과 부처와 일체 만유를 둘이 아니고 하나로 보는 평등무차별의 지혜가 참다운 부처님의 지혜입니다. 이와 같은 지혜로 비추어 보면서 계율 지키고 참선, 염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참선, 염불의 방법을 며칠 동안 공부해 왔습니다.
오늘 다시 한번 돌이켜 보고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참선의 방법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염불의 방법인가? 이런것을 몇 말씀하고서 오늘 부처님의 성도절(成道節)에 있어서 기념의 말씀으로 할까 합니다.
참선은 무엇인가?
‘선시불심(禪是佛心)이요 교시불어(敎是佛語)라, 선(禪)은 바로 부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의 말이라’
따라서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부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하는, 그 마음을 변치않고서 닦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비록 우리가 화두(話頭)를 들고서 의심을 백날 천날 한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이 불심(佛心)을 여의면은 그때는 참선이 못되는 것이요, 비록 우리가, 말로는 하나님을 부른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이 불심을 안 여의면은 그것은 참선입니다.
그러면 불심을 안 여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이것은 내 자성(自性), 내 본바탕이 부처임을 분명히 느낀다는 말입니다. 또한 동시에 천지우주 일체만유가 모두 부처임을 분명히 느끼는 것이 불심을 안 여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아직은 범부의 자리에 있는지라 여실(如實)히는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래 부처인지라, 그와 같이 느끼려고 애쓰면 애쓴마치, 그러한 인상 이 우리 마음에 심어져서 드디어 느끼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선이라 하는 것은, 우리 입으로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르든 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르든 또는 어떤 것을 부르든, 참구를 하든,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라 다만, 우리 마음자세가 불심을 안 여의면 됩니다.
‘내 본바탕이 부처구나!’ ‘천지우주가 부처 아님이 없구나!’ ‘천지우주는 모두가 다 청정미묘(淸淨微妙)한 일체 공덕을 갖춘 부처구나!’ 이같이 딱 느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공부하면은 화두를 드나 또는 염불을 하나, 주문을 외우나, 무엇을 하나, 다 참선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데 있어서, 계행(戒行)이 수반(隨伴)되지 않으면 마음이 청정히 안됩니다. 나쁜 행동 하나 하면 나쁜 행동 하나 한만치, 우리 마음이 오염(汚染)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계율이 기본이 되어서, 죽이지 말라, 훔치지 말라, 삿된 음행 말라, 거짓말, 욕설, 이간질하는 말, 꾸미는 말하지 말라, 술로 우리 마음을 흐리게 하지 말라, 이런 정도의 계율은 지켜야만 불자입니다.
불자가 기본적인 오계(五戒), 누구나 알 수 있는 오계도 못 지켜서는 불자는 못됩니다. 따라서, 그때는 참선도 안됩니다.
우리, 반드시 기본적인 계율을 지키고, 그 위에서 참선하는 공부, 불심(佛心)을 여의지 않는 공부, 그런 공부로 해서, 하루 빨리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成就)해서 부처님 은혜(佛恩)에 보답합시다.
淸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