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해탈(三界解脫) III

해탈(解脫)의 과정(過程)

그 해탈 과정의 처음이 사가행(四加行) 또는 사선근(四善根)이라 합니다.

물론, 이러한데 있어서 그냥 비약적(飛躍的)으로 한 걸음 두걸음 안밟고서 마구 올라가는 분도 있고,(그 분은 업장도 가볍고, 영리하고 총명하겠지요) 또는 점차로, 단계적(段階的)으로 밟아가는 분도 있고, 또는 전(前)의 단계를 무시하고서 뜀뛰기로 마구 뛰어가는 분도 있고, 그와 같이 구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뭐라해도 말세(末世)에 와 있습니다. 말세라는 것은 오탁악세(五濁惡世)라는 말입니다. 여러 가지 혼탁(混濁)으로 굉장히 오염(汚染)된 현세(現世)에 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냥 비약적으로 성불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역시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불로 올라가는데 있어서 맨 시초의 올라가는 단계가 사가행(四加行), 다른 말로는 사선근(四善根)으로 착한 뿌리를 많이 심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알지 못하면 참선할 때에 가사, 혼자 토굴에서 백일 동안이나 얼마동안이나 하는 경우에, 어떤 경계(境界)가 나오면 그냥 헤매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파뜩 마음만 개운하면 ‘다 되었구나’ 하고 아만심(我慢心)을 내어서 함부로 그냥 도인으로 행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애써서 공부하다 보면 그냥 맑아와서 마음도 개운하고 몸도 가볍게 됩니다. 등골도 시원하고 눈도 시원하고 그리고, 오래 앉아도 별로 피로도 못 느끼고서 잘 나갈 때에, 불교말로 성성적적(惺惺寂寂)할 때에, 혼침(昏沈)도 안 오고 어떠한 분별망상(分別妄想)도 줄어지고 말입니다. 분별망상이나 혼침은 다 개운하지 않으니까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운하고, 쾌적(快適)하고, 상쾌할 때는 그게 줄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찌뿌드드하고 그야말로 빡빡할 때는 자꾸만 망상이 나오고 혼침이 꾸벅꾸벅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떨어지고서, 물론 다는 안 떨어졌다하더라도, 우선 개운해 가지고서 마치 자기 몸이 전류에 감전(感電)된 기분으로 짜르르해올 때가 있습니다. 눈도 깜박거려지고 말 입니다. 이런 때가, 이런 것이 맨 처음 난법(煖法)입니다.

난법이란 그런 법상(法相)만 나와도 그때는 별로 피로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염불을 하든 화두를 들든간에 애쓰고서 하다 보면 문득 이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이것이 명득정(明得定)이라, 마음지평이 열려서 훤하니 마음이 툭 트인다고 해서, 이것이 밝음을 얻은 참선이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것은 지금 물리학적인 술어로 배대(配對)를 한다면 전자(電子) 정도로나 맑아있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물질에 딱 얽매인 것인데 공부를 하다보면 우리 마음은 이와 같이 훤히 맑아오고 우리 몸을 구성한, 구성요소인 물질 역시 전자 정도로나 정화되어 온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더 공부를 하다보면 정법(頂法)이라, 우리 마음의 욕심이 줄어져서 욕계정천(欲界頂天) 즉, 욕계를 거의 벗어날 단계에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는 명증정(明增定)이라, 시원하고 밝은 마음이 더 증가되어 옵니다. 물리적인 말로 하면 양핵(陽核)이라 즉, 양자나 그런 정도로 우리가 정화되어 온다는 말입니다. 이런것은 우리가 공부할 때에 알아두면 헤매지 않고 혼동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 다음은 인법(忍法)이라, 이런 때는 심월(心月)이라, 우리 앞에 마음 달이 부옇게 비쳐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부할 때에 나오는 것은 허상(虛像)과 법상(法相)이 있습니다. 괜히 헛된 망상이 나올 때가 있는 것이지마는, 법상은 허망한 것이 아닙니다. 법상(法相)은 몸도 마음도 시원스런 때에 나오는 심월(心月) 곧, 마음 달같은 것입니다. 법상이 한번 나오면 그때는 공부에 후퇴가 전혀 없지는 않지마는 별로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환희심과 행복감이 자기 마음에 충만해오는 것입니다. 몸도 개운하니 시원하고 웬만한 병은 다 물러나고, 말입니다.

원래, 병이란 것은 우리 마음이 정화가 안 되어서 피가 맑지 않으니까 생기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닌지라 피가 맑아지고 마음이 정화되면 따라서, 병도 물러가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은 절대로 둘이 아닌 것입니다.

그 다음은 세제일법(世第一法)이라, 이것은 욕계에서는 가장 제일인법이라는 말입니다. 비록 아직 도인은 미처 못되엇다 하더라도 세간에서는 제일 수승(殊勝)한 자리에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하면 무간정(無間定)이라 합니다. 우리 공부하는 분들은 비록 도통(道通)은 미처 못해서 무간정까지는 못갈 망정 그래도 사람 몸으로 태어났으니까 꼭가야 하는 것입니다.

무간정(無間定)이란, 우리 마음이 딱 모아져서 잡념이 사이에 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무간정 밑의 단계에서는 조금 시원스럽기도 하고 기분은 좋으나, 그때그때 잡념 때문에 방해를 받지만, 무간정은 마음이 일심(一心)으로 딱 모아지니까 잡념이 사이에 낄 틈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 마음 참, 기묘한 것입니다. 닦으면 부처가 되는 것이고 못 닦으면 결국은 밑에 가서 별 몸을 다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길목이 다 있는 것이니까 우리는 부처님 법을 만났을 적에 길목 따라서 행하지 않으면 사람된 본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한사코 참선, 염불로 해서 명득정(明得定)이라, 밝음을 통해서 훤히 트이는 그 정도 또는, 명증정(明增定)이라, 밝음이 더 증가 되어서 천지우주 광명이 나한테 비추어 오는 그런 기분으로 있는 상괘한때, 조금 더 올라가 인순정(印順定)이라, 마음에서 달이 비추는 그런때, 더 올라가서 일체 잡념은 사이에 안 끼고서 오직 청정한 생각만 이어가는 무간정(無間定)으로 가야하는 것입니다. 이런 때의 행복이란 무엇에도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물리학적인 술어로 말하면 원자핵(原子核)의 본질(本質)이라 곧, 물질의 가장 근원(根源)이 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해가지고서, 마음이 열려서 심월(心月)이, 부옇게 보인 마음 달이 훤히 트인 금색광명의 해로 변화하는 단계가 초선천(初禪天)입니다.

이렇게 되면 범부성(凡夫性)은 차근차근 초월(超越)해 가는 셈이지요. 아까 말씀드린대로, 색계(色界)에 태어나는 셈입니다. 몸은 비록 사람 몸일망정 자기 마음은 벌써 하늘에 있는 천상인간 곧, 색계에 태어난 셈 입니다.

이때는 희락지(喜樂地) 곧, 리생희락지(離生喜樂地)라, 욕계의 더러운 생을 떠나서 참다운 기쁨과 안락을 맛본다는 경계입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재미나 그런 욕계 행복은 너무나 찰나 무상(無常)한 것이고, 참다운 행복은 욕계의 오욕락(五欲樂)을 떠나서 영원적인 희락(喜樂)을 맛볼 때가 참다운 행복인 것입니다.

마하가섭(摩訶迦葉 Mahakasyapa)은 두타제일(頭陀第一)이고, 부처님의제일가는 제자 아닙니까, 이 분은 굉장히 근엄한 분으로 평생 동안에 잘 웃지도 않는 분인데, 이런 분도 역시 희락지가 나올 때 그냥, 너울너울 춤을 추고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기쁨이 얼마나한가를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같이, 이런 데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우리 행복은 더 증장됩니다. 어찌 그런고 하면은, 원래 불성, 자성은 행복의 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부처라는 것은 행복과 지혜와 모든 공덕을 다 갖춘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 경지에 접근될수록 우리 행복은 더욱 더 증가되어 온다는 말입니다.

리생희락지(離生喜樂地)라, 욕계의 생을 떠나서 그야말로 희락을 맛본다는 경계인데, 그 기쁨이나 즐거움이 더하기도 하고 덜하기도 하는 것 입니다.

따라서, 그 다음은 정생희락지(定生喜樂地)라, 선정으로서 잠잠한 행복이 온다는 말입니다. 그때는 기쁨이 정착(定着)되어서 후퇴없는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선천(二禪天)입니다.

그 다음, 삼선천(三禪天)이란 리희묘락지(離喜妙樂地)라, 우리 마음의 거치러운 기쁨을 떠나서, 묘락(妙樂) 곧, 신묘한 안락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사선정(四禪定)인 사선천(四禪天)은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라, 기쁘고 무엇이고 다 떠납니다. 기쁨도 역시 한가지 번뇌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비록 우리 중생경계(衆生境界)에 비해서는 좋다 하더라도 역시 기쁨이나 그런 것은 상(相)이니까 하나의 번뇌입니다. 따라서, 이때는 벌써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라, 생각을 다 떠나서 오직 청정한 자리에만 머문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이제, 선정(禪定)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셈입니다. 여기까지 올라오면 그때는 신통(神通)을 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래에 신통하는 분들이 안 나오는 것은 무엇인고 하면, 여기까지 공부가 미처 미달해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역시 오랫동안 염불삼매(念佛三昧)나, 또는 화두삼매(話頭三昧)의 공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여기까지 올라왔다 하더라도, 선정에는 비록 높은 지위에 올라왔지만 아직은 당하(當下) 도인은 못됩니다. 어찌 못되는고 하면, 여기까지 올라와서 선정은 깊다 하더라도 나라는 아상(我相) 뿌리를 미처 뽑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제아무리 공부가 되고, 학식이 많고, 또는 참선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나라는 아상(我相)을 미처 못 뽑으면 도인은 못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은 아상의 뿌리를 뽑는 멸진정(滅盡定)이라, 우리 번뇌의 종자를 마저 다 뽑아버린다는 말입니다. 일체 번뇌 습기(習氣)를 다 멸진(滅盡)한 삼매라는 말입니다. 멸진정에서 ‘나’ 라 하는 아의 뿌리, 범부의 뿌리를 뽑아야 비로소 성자(聖者)입니다.

여기에서, 앞에 있는 사선정(四禪定)은 정도(正道)와 외도(外道)가 같이 닦는(共修) 것이나 멸진정(滅盡定)은 오직 정도(正道), 성자(聖者)에 만 한(限) 합니다.

근기(根機)가 수승하고 전생에 여러 가지로 선근(善根)이 아주 많은 분들은 그냥, 범부에서 막 뛰어넘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보통은 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상생활로 가정에 계시는 분들은 이렇게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만, 이러한 사선정(四禪定)은 미처 어렵다 하더라도 사가행(四加行)의 무간정(無間定)까지는 꼭 올라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욕계(欲界)를 조금 넘어설까 말까 하는데에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에 태어난 보람이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밤으로 해서 이번에 용맹정진 법문은 마무리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조금 지리하지만 더 말씀을 하겠습니다.

淸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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